글을 쓰는 게 두려웠다

삶을 쓰는 글, 글을 쓰는 삶

by 진아

요 며칠,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글을 쓰는 것이 두려웠다. 책을 준비하면서부터 계속되던 생각이 일상을 완전히 덮쳤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글의 첫 번째 조건이자, 가장 중요한 조건은 ‘진심’이다. 정치인이나 기업인들이 쓴 책을 잘 읽지 않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삶과 글이 다른 사람의 글은 읽는 것 자체가 불편하다. 누군가의 뻔한 거짓말을 나의 소중한 시간을 들여 읽는 행위 자체가 엄청난 ‘낭비’이니까.


브런치에 올라오는 글들이 웬만한 책보다 좋은 이유도 바로 이 ‘진심’ 때문이다. 적어도 내가 자주 들여다보는 작가님들의 글은, 단어 하나하나에서 진심이 묻어난다. 그때그때 겪으신 일, 누군가와 나눈 대화, 진실된 감정들이 고스란히 표현되어 있는 글을 읽으며 때론 웃고, 때론 운다. 비록 오픈 플랫폼이라 어떤 경제적 대가를 치르고 읽는 글은 아니지만, 나의 시간을 지불하고 읽는 만큼 좋은 글들을 골라 읽고자 노력하는 편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심이 가득한 브런치의 글들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글일 수밖에 없다.

다시 나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갑자기 글을 쓰기가 두려워졌다. 특히나 브런치에! 지금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육아’를 소재로 글을 쓰다 보면, 아이들과 겪었던 소소한 일상의 모퉁이를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모퉁이는 대체로 아름답고 귀한 순간들이다. 특히 자주 쓰는 글의 형태가 ‘시’이다 보니, 한 폭의 그림처럼, 한 장의 사진처럼 소중한 한 장면을 포착해서 쓰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더더욱 따스하고 아름답게 표현하게 된다.

문제는, 내 일상이 전혀 아름답지 못하다는 것이다. 5년째 이어진 육아휴직(복직하면, 복직이 아니라 신규 발령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으로 인한 경력 단절, 매일 같이 물어뜯고(?) 싸우는 두 살 터울의 남매 육아(진짜 물어뜯는다. 전생에 육식 공룡들이었을까.), 기댈 곳이라고는 남편뿐인데 모든 집안일은 휴직 중인 내 몫이 되는 현실, 어쩌면 변명이고 핑계일 수도 있지만, 솔직히 많이 지친 것 같다. 아니, 지쳤다.

그렇다 보니 내 말대로 따라주지 않는 아이들에게 수시로 날을 세운다. 남편과는 아이들과 관련된 몇 마디를 제외하고는 대화를 하지 않은 지 꽤 되었다. 집에는 종종 냉기가 흐르고, 아이들은 내 눈치를 살핀다. 전에 없이 자주 화가 나고, 어떤 때는 이유 없이 억울하기까지 하다.(이유가 없을 리는 없지만 별 이유가 아니기도 하다.)

이런 내가, 그토록 따스한 시를 쓴다니!


시의 소재를 발견하는 순간만큼은, 그리고 그것을 단어로 엮어 써 내려가는 시간만큼은 정말로 아름답고 따뜻하다. 그러나 그 외의 순간들이 전혀 그렇지 못하다면, 내가 쓰는 글은 ‘진심’이 가득한 글이라고 할 수 있는 걸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매일 쓰던 글을 단 한 줄도 쓸 수가 없었다.

내 글을 빠짐없이 읽어주시는 분들이, 내 일상의 실체(?)를 알게 되어 내 글이 ‘거짓’이라고 비난하면 어쩌지. 나중에 아이들이 자라서 내가 쓴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엄마, 엄마는 맨날 화냈잖아.”라고 말하면 어쩌지. 너무 두려웠다.


하루 종일, 글을 쓰기 시작한 첫 마음을 되짚어보았다. ‘삶’을 쓰고 싶었다. 삶의 순간들을 그저 흘려보내지 않고, 차곡차곡 기록하고 싶었다. 그러면서 궁극적으로는 나의 매일을 소중하게 살아내고 싶었다. 그러길 일 년, 돌아보니 언젠가부터 삶 속에서 글의 소재를 찾기 위해 애썼을 뿐, 삶을 제대로 살아내기 위해 애쓰지 못했다.

이제는 삶을 살기 위해 글을 쓰는 건지, 글을 쓰기 위해 삶을 사는 건지 그 경계조차 모호해졌다. 삶과 글을 분리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단 하나였다. 글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 내가 쓰는 글처럼, 따뜻하고 아름다운 일상을 살아내야 한다는 것.


좋은 글을 써야지. 그러기 위해서 먼저 좋은 삶을 살아야지.
끝내는,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진짜 글'을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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