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의 끝, 소란스러움이 잦아든 자리

by 진아

5일간의 긴 연휴가 끝이 났다. 남편은 출근을, 아이들은 등원을 했다. 꽤 오랜만에 소란스러움이 잦아들었다. 집안은 지나치리만큼 고요하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엄마, 나, 동생까지 다섯 식구가 살던 집이 ‘고요’한 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작은 구식 텔레비전은 할아버지가 잠에서 깨어나셨던 새벽녘부터 잠드시던 늦은 밤까지 왕왕거리며 안방의 공기를 소란함으로 채웠다. 부지런하시던 할머니는 깨어있는 모든 순간에 몸을 움직여 무언가를 하셨기에 할머니가 머무르는 자리에는 고요가 싹 틀 틈이 없었다. 엄마는 출근에 바빴고, 나와 동생은 등교에 바빴기에 이른 아침이면 하나뿐인 화장실을 번갈아 사용하느라 화장실의 물소리가 그칠 틈이 없었다.


집에서 ‘고요’를 느낀 순간은, 일 년에 두 번 명절 연휴의 마지막 날이었다. 명절 내내 북적거리던 식구들이 모두 떠나고 나면 일상적인 집안의 소음조차 ‘고요’하게 느껴졌다. 큰 외삼촌네 네 식구, 작은 외삼촌네 네 식구, 작은할아버지 댁 네 식구, 가끔 이모네 네 식구까지 다녀가고 나면 열네 평 작은 집이 마치 대궐 같은 큰 집이 된 것처럼 허하기 그지없었다.


명절 내내 기름 냄새를 비롯한 각종 음식 냄새가 가득하던 부엌

화투패 마주치는 소리, 텔레비전에서 울리던 트로트 가수의 구성진 노랫소리까지 빈틈없이 소란스럽던 안방

앉을 틈이 없어, 무릎을 세운 채 감싸 안아야 겨우 엉덩이를 붙일 수 있던 좁은 방

모두의 신발을 품지 못해 몇 켤레쯤은 문밖으로 밀어내 버렸던 작은 현관까지.


명절 며칠 간은 작은집의 구석구석까지 사람들의 흔적이 가득했다. 그러다 식구들이 모두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고 나면, 한동안은 고요하다 못해 적막하기까지 했다. 지나간 소란이 남은 곳은 냉장고뿐이었다. 냉장실과 냉동실에 그득히 남아 있던 기름진 명절 음식만이, 지난 소란을 고요히 품고 있었다.

나는 명절을 기다렸다. 다섯 식구만으로도 고요할 틈 없던 작은 집이, 더 거대한 소란으로 가득 차기를 기대했다. 일 년에 두 번 만나는 식구들이 좋았다. 삼촌과 숙모들, 이모와 이모부, 사촌 동생들이 함께 하는 순간순간이 그저 즐거웠다. 함께 음식을 준비하고 나누어 먹는 것도, 어른들은 술잔을 애들은 마른안주와 과자를 집어 먹으며 도란도란 삶을 나누는 것도 좋았다.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소란스러움이, 마냥 행복했다.


결혼을 하고 명절 풍경이 많이 바뀌었다. 시댁에는 식구들이 많지 않았다. 소란스러운 사람도 없었다. 친정에 가면 삼촌과 숙모들, 사촌동생들은 모두 떠난 후였다. 남아 있는 식구들은 할머니와 할아버지, 엄마, 그리고 동생 내외뿐이었다. 엄마는 딸과 사위가 왔다고 새 음식을 장만해서 내어놓았고, 그곳에는 명절의 기름 냄새가 남아 있지 않았다. 나의 명절은 이전보다 고요해졌고, 조금 덜 웃게 되었다.




시댁과 친정에 아이들이 생겼다. 나에게도 두 아이가 생겼지만, 동생과 손위 시누이에게서도 아이들이 태어났다. 그동안 코로나 상황 때문에 전혀 만나지 못하다가, 이번에는 딱 들어맞게 인원 제한 규정이 풀려서 정말 오랜만에 만나 밥 한 끼를 함께 먹었다. 아이들이 모이자 고요는 발 붙일 틈이 없었다. 아이들이 빚어낸 소란은, 실로 대단했다. 잠시도 가만있지 않았다. 춤을 추고 계단을 오르내리고, 노래를 부르고, 각종 캐릭터를 흉내 내고, 이유 없이 달리고 뛰어내리고 그러다 웃고 울고.


정말 오랜만에 맞는 소란한 명절이었다. 후각을 자극하는 기름 냄새는 사라졌지만, 아주 오래전 어느 명절을 떠올리게 할 만큼, 청각을 자극하는 사람 소리로 가득한 그런 날이었다. 소란함이 소음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순간 느낀 감정은 그리움에 가까웠다. 내가 떠들던 자리, 내가 떠들던 순간, 내가 울고 웃던 그 순간과 맞닿아 이미 지나간 날들이 왈칵 밀려왔다.


나의 아이들이 기억할 명절은 어떤 감각일까.

욕심내 보자면, 내 아이들에게도 명절이 평소보다 더 소란스러운 날들로 기억되면 싶다. 오래 만나지 못하던 누군가를 만나고, 어색할 틈도 없이 이내 함께 웃고 울며 마음을 나누는, 그런 날들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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