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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범의 파워클래식』 (조윤범)

by 진아

"낯설고 어렵다. 때론 사치스럽고 대체로 지루하다."


초중고 12년의 음악 수업으로만 클래식을 만난 나에게 ‘클래식’ 하면 떠오르는 반사적인 이미지는 이렇다. 지금은 대중음악, 심지어 인디음악까지 교과서에 등장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내가 학교에 다닐 때만 하더라도 음악 교과서에는 클래식과 가곡, 민요, 동요가 전부였다. 당시 음악 교과서에 한 장 걸러 하나씩 등장하던 클래식은 그야말로 ‘지루한’ 음악이자, 한 학기에 한 번 치러지는 지필시험을 위해 작곡가와 시대를 달달 외워야 하는 ‘재미없는’ 음악이었다.


클래식에 특별한 애정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나와 비슷한 이미지로 클래식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 『조윤범의 파워클래식』은 나와 같은 대중을 위해, 보다 쉽고 재미있게 클래식을 소개하고자 하는 저자의 열정이 가득한 책이다.




이 책은 출간 전 이미 예당아트 TV에서 <조윤범의 파워클래식>이라는 프로그램으로 방영된 ‘TV쇼’의 내용이었다. TV 프로그램에 대한 폭발적인 반응에 힘입어 출간된 책이라, 서술 방식이 마치 저자의 강연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저자의 강연을 유튜브로 보았는데, 강연을 무척 맛깔나게 잘하는 분이다.) 그만큼 읽기에 편안한 문체였다.


다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이 ‘클래식’이다 보니, 읽기에 쉬운 책은 아니었다. 가장 큰 어려움은 저자의 열정적인 설명이 즉각적으로 와닿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미술 관련 책은 풍부한 시각 자료 덕분에 처음 보는 작품이나 예술 사조에 대한 설명도 이해가 쉬웠다. 그러나 음악, 심지어 클래식을 소재로 한 책이다 보니 계속해서 등장하는 작품들을 일일이 찾아 들으며 읽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책에서 다루는 작품을 모두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감동에 젖은 저자의 서술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 넘어가야 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면에서 의미 있는 책이었다. 먼저 익숙한 음악가들(하이든, 멘델스존, 모차르트, 베토벤, 슈만, 클라라, 차이코프스키 등)의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들을 알 수 있었다. 4살에 작곡을 시작한 모차르트의 천재적 일화와 피아노를 배우러 가서 스승의 딸(클라라)을 사랑하게 된 슈만의 이야기, 차이코프스키가 동성애자였고 그로써 사랑 없는 결혼을 했었다는 사실, 부유한 천재로 구김살 없는 음악을 했던 멘델스존의 이야기 등. 사적인 이야기를 알게 되면 그와 한 발 가까운 느낌이 들기 마련이다. 이름만 익숙하던 거장들의 삶을 따라 읽으며 어딘지 모르게 그들과 꽤 친숙해진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난 후 다시 들어본 그들의 음악은 애써 외우려 하지 않아도 머릿속에 각인되듯 기억되었다. (물론 한두 곡 정도가 전부지만.)


두 번째로 파편처럼 흩어져 있던 작곡가들 사이에 연결고리가 생겼다. 음악의 어머니 헨델과 음악의 아버지 바흐는 같은 해에 태어난 음악가였고 만남을 고대했지만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다든가, 베토벤의 장례식에 슈베르트가 조문을 왔었다든가(그리고 일 년 후 슈베르트도 죽었다든가), 모차르트의 죽음에 관한 소문(영화 아마데우스가 창작된 계기로, 살리에르가 모차르트를 죽였다더라~ 하는 가짜 뉴스)이 퍼지고 그 소문에 힘이 실린 것은 귀가 들리지 않던 베토벤의 메모 때문이었다든가. 바그너와 브람스의 음악적 견해 차이가 음악사의 백년전쟁의 시작이었다든가, 슈만과 클라라 그리고 브람스가 묘한 삼각관계 속에서 오래 함께 했으며 슈만의 죽음 이후 브람스는 클라라 곁을 지키며 단 한 번도 결혼을 하지 않았다든가. 전혀 연결되지 않던 많은 작곡가가 음악적 혹은 개인적으로 교류하며 인연을 맺었다는 흥미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세 번째로 수백 년 전의 음악 경향인 ‘바로크, 고전파, 낭만파’보다 더 배경지식이 없었던 근대와 현대의 음악을 아주 가볍게나마 맛볼 수 있었다.(책의 내용이 가벼웠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해한 수준이 가벼웠다는 것이다.) 특히, 근대음악가에 속하면서 음악교육의 개혁자로 불리는 ‘코다이’라는 음악가와 우리나라 작곡가이지만 서양에서 더 유명하다는 ‘윤이상’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코다이’가 지녔던 음악교육에 대한 철학과 ‘윤이상’이 외로이 타국에서 음악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알게 된 것은 이 책이 내게 준 큰 선물이었다.


클래식의 대중화를 꿈꾸는 저자의 목소리를 책으로 만나며, 언젠가 그가 속한 현악4중주 팀인 ‘콰르텟엑스’의 공연을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험 치기 위해서 외우던 음악이 아닌, 괜히 교양 있는 ‘척’하려 졸음을 참으며 듣던 클래식이 아닌, 진짜 살아있는 클래식을 만나고 싶어졌다. 책 내용의 채 절반도 이해하지 못했을 테지만, 그래도 이정도의 마음이 생긴 걸 보면 완전히 이해한 것만큼이나 꽤 의미 있는 책이 될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재미있는 클래식 작품 하나 소개해드려요. 하이든의 교향곡 45번 ‘고별’이라는 곡인데, 관련 일화가 무척 흥미롭습니다.

한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초대를 받아 지방 연주를 와 있었다. 그런데 그들을 초대한 고용주는 단원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계속 머물게 했고, 그로 인해 단원들의 고통은 커져갔다. 아무리 추가급여를 받고 연주회를 계속해도, 가족이 있는 사람들이 집을 떠나 외지에 오래 머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단원들의 이런 고충을 알아챈 하이든은 공연 도중 한 사람씩 차례로 연주를 끝내는 곡을 작곡하게 된다. 마지막 악장이 연주되는 중에, 맨 뒤부터 연주자들이 연주를 끝낸 후 악기를 챙기고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고용주는 그 의미를 금방 알아차리고 단원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역시 음악의 힘은 위대하다! (48쪽~49쪽)

https://youtu.be/FtwmEMD5rs0



클래식 음악이 재미없다고 생각했거나, 다른 어떤 장르의 예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면 당신은 그 분야의 진짜 멋진 경험을 아직 못해본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편식을 하는 사람이 손해 보는 것은 건강만이 아니다. 다양한 음식을 즐길 수 있는 행복의 기회 또한 얻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클래식 음악은 더 이상 사치가 아닌,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생활필수품이다.(14쪽, 서주)


자, 그럼 이런 길고 지루한 공부를 하는 목적은 무엇일까요?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주위 사람들의 칭찬? 명성?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기 위해 자신의 재능을 최고 수준까지 갈고닦는 것이야말로 재능을 받은 사람들이 수행해야 할 책임입니다. 사람이 얼마나 가치 있는 존재인가는 그가 사람들, 자기 민족, 나라, 세상을 위해 얼마나 많은 도움을 주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진정한 예술은 그것을 이루는 강렬한 힘 가운데 하나이며, 가능한 많은 사람에게 예술을 접할 수 있도록 갚아주는 사람이 인류에 대한 예술가의 의무를 다하는 것입니다.
완벽한 음악가는 없습니다. 하지만 완벽을 목표로 계속 노력하면 그 거리를 좁힐 수 있고, 적어도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아직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슈만의 이 말은 우리에게 희망을 줍니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 (291쪽~292쪽, 음악교육의 개혁자, 코다이)

그는 살아생전에 4개의 오페라, 9개의 합창곡, 6개의 성악곡, 17개의 관현악곡, 5개의 교향곡, 10개의 협주곡, 9개의 실내 앙상블, 6개의 현악사중주곡 외에도 40여 개의 실내악곡, 14개의 독주곡을 남겼다. 플루트 독주곡 <소리>, 오보에 독주곡 <피리>처럼 한국의 음악과 서양의 음악을 완벽하게 조화시킨 작곡가가 바로 윤이상이었다.
2002년 윤이상을 기리기 위한 통영국제음악제가 시작되었다. 2006년 과거사 진실규명위원회에서 동백림 사건을 재조명했고, 2007년엔 윤이상의 미망인 이수자 여사가 남편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던 조국에 돌아오게 된다.(398쪽, 윤이상, 서양악기로 연주하는 동양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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