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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워서 과학 먹기』(신지은)

by 진아

‘비전공자도 아는 척할 수 있는 과학 상식’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저자는 과학 전공자가 아니다. 오히려 ‘수학과 과학을 정말 싫어하는 타고난 문과생(4쪽)’이었다. 학창 시절 내내 과학을 왜 배워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어 볼멘소리를 하던 그가 과학을 다시 만난 것은 과학 방송을 진행하게 되면서였다. ‘2시간 동안 한 가지 과학 이슈를 풀어나가는 ‘생방송’에서 젊은 ‘과학자들’ 사이에 앉아 문과 대표로 과학 이야기를 ‘듣고’, 동시에 ‘진행’까지 해야 했던(5쪽)’ 저자는 울며 겨자 먹기로 과학과 조우해야 했다.


비록 시작은 완벽한 ‘타의’였을지라도, 현재 저자는 완벽한 ‘자의’로 과학책을 집필할 만큼 과학에 푹 빠져있었다. (저자는 현재 네이버 오디오 클립에서 '문과녀 신지은 과학과 썸 타다'라는 채널도 운영 중이다.) 과학이 자신의 삶을 바꾸었다고 당당히 말할 만큼,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난 과학은 새로웠다고 했다. 그 이유는 바로, ‘과학이 삶의 지평을 넓혀주었기 때문’이라고.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문과생도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네 개의 과학 과목을 배워야 했다. 물론 수능에서도 ‘과학탐구’ 영역이 필수였다. (지금 문과생들은 과학 탐구영역의 수능 시험을 치르지 않는다. 반대로 이과생들은 사회탐구 영역의 시험이 없다.) 뼛속까지 문과생이었던 나는 과학탐구 영역의 시험 성적을 잘 받기 위해서 시중에 판매되는 과학 문제집을 거의 다 풀었다. 이론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생각했고, 시간 낭비라는 생각도 들었기에 비슷한 유형의 문제를 반복적으로 푸는 것으로 공부를 대신한 것이다. 미친 듯이 문제를 풀어대던 공부법은 만족할 만한 결과를 안겨주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과학탐구 영역에서 아주 좋은 성적을 받았지만, 과학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문제 풀이의 기억은 이내 잊혔고, 대학 진학 이후에는 과학 관련 쪽으로 몸과 마음을 전혀 돌리지 않았다. 더 이상 과학은 내 삶에서 필요 없는 존재였고, 그러니 굳이 관심 둘 이유가 없었다.


국어교사가 된 이후, 비문학 지문 독해 수업을 할 때 과학 관련 내용이 나오면 겁부터 났다. 분명히 한글로 쓰인 글인데 읽고 또 읽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해하려 하면 할수록 더 복잡하기만 했다. 정답과 해설을 보고 대충의 내용을 짜 맞춰 임기응변으로 수업을 했다. 임기응변도 통하지 않을 때에는 주변 과학 교사들에게 도움을 구했다. 가끔은 이과 학생들이 나보다 더 지문 이해도가 높아 아이들에게 도리어 배우는 때도 있었다. 그래도 과학을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굳이?”라는 생각이 발목을 잡았다.


재작년 우연한 계기로 과학 도서를 주제로 하는 독서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과학적 배경지식이 부족한 상태로 과학 관련 책을 읽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누워서 과학 먹기』의 저자처럼 과학이 열어준 새로운 세계는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이제 와 다시 만난 ‘과학’은 시험을 치르기 위해서 억지로 공부해야 하는 ‘학문’이 아니었다. 세상을 보는 또 다른 눈, 완전히 새로운 시각이었다.




『누워서 과학 먹기』는 쉽지 않은 과학적 지식을 최대한 쉽게 설명하는 책이다. 물론 아무리 쉽게 설명한다 해도 낯선 과학 용어들 때문에 마냥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저자는 어려운 과학 지식을 최대한 이해하기 쉬운 예로 설명하면서, 독자들이 과학에서 ‘도망치지’ 않도록 애쓰고 있다. 저자 역시 비전공자로 과학을 멀리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다정한 말로 독자 앞에 과학을 놓아주려 했을 것이다. 그 애씀이 느껴져 조금 어려운 내용이 나와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읽어낼 수 있었다.


또 과학적 내용을 ‘문과생’의 시선으로 다루어서인지, 끝에는 항상 인문학적 시선이 더해졌다.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니 딱딱하게만 느껴졌던 과학 지식이 말 그대로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이 되었다. 그 시선은 새롭기도 했고, 따뜻하기도 했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 자주 감동했고, 때론 뭉클하기도 했다.

이렇게 다정하고 따뜻한 과학책이 많이 나오면 좋겠다. 더불어 앞으로는 학교에서도 시험을 목적으로 한 과학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또 다른 시각’으로서의 과학을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 물리 공식을 외우고 원자 기호와 생명체의 세부 명칭을 암기하는 수업보다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볼 수 있게 하고 우주적 관점에서 ‘나’라는 개인을 인식할 수 있도록 시야를 넓혀주는 수업이 이루어지면 참 좋겠다.


삶이 무료한가? 그렇다면 우리 몸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포는 분열하고 있고 동시에 DNA는 복제되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세포 속 DNA는 단백질 만들기에 한창이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건 곧 끝없는 DNA의 복제와 끝없는 세포 분열의 과정이 반복되고 있다는 뜻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DNA 공장은 미칠 듯이 빠른 속도로 돌아가고 있다. 삶을 마음껏 즐기자. 무료하거나 슬플 틈이 없다. 세포 분열의 과정이 계속되는 한 우리 역시 그 값비싼 몸을 활용해 즐겁고 행복하게 현재를 살아내야 할 의무가 있다.(34쪽, 오늘도 DNA공장은 야근이다)

인간은, 우리 모두는 완벽하지 않다. 완벽하지 않다고 아름답지 않은 건 아니다. 나답게 사는 게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유전자 가위 기술을 손에 쥔 인간이 그 평범한 행복을 언제까지나 지킬 수 있기를 바란다.(52쪽, 인간의 손안에 들어온 유전자 조작)

셀 수 없을 정도로 얽혀 있는 신경세포의 연결, 그리고 그 속에 해마라는 기억의 별 제작소, 결국 기억의 한 조각에서 시작하는 모든 것이 우주의 먼지에 불과한 인간에게 우주로 나아가고 있는 힘을 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모든 기억은 축복이다.(76쪽, 우리 몸안에는 작은 우주가 있다.)

미국 UC버클리대 교수 리처드 뮬러는 우주가 계속 팽창하며 시간을 만든다고 했다. 그러니 사실 ‘지금 이 순간’이라는 말은 너무나 철저히 인간의 시각에서 바라본 말이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저 별빛은 4년 전의 별빛이고,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저 태양 또한 8분 전의 태양이기에. 우주에서는 ‘지금’이라는 단어도 쉽게 성립되지 않는다. 시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도 물음표다. 그럼에도 팽창하는 시간의 최전선, 그 끝 모서리가 바로 우리가 ‘지금’이라고 부르는 순간이기도 하다.

우주 엔트로피의 증가를 인간이 멈출 수는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통제할 순 있다. 지금 이 순간에 내리는 우리의 선택을 통해서 말이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은 어디로 향할 것인가?(117쪽, 시간은 왜 앞으로 흘러가는가)

누가 우리에게 그 존재를 상기시켜주지 않는 한 우리는 암흑물질이나 암흑에너지에 대해 평생 인지하지 못한 채 죽을 것이다. 사실 암흑물질들은 우리 곁에 널려 있는데 말이다. 정말 중요한 것들은 이처럼 실은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그 소중함을 알더라도 제쳐두고 잘 찾지 않게 되는 것들이다. 이 글을 계기로 나에게 암흑물질과 같은 존재는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조용히 내 삶의 95%를 채워주고 있는 무언가. 그 무언가에 대하여 잠시 골몰해보는 일이 이 우주를 이루는 95%의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를 떠올리는 일하고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188쪽,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95%의 우주)

바이러스는 지금 이 순간에도 변이를 계속하고 있다. 질병 X는 WHO가 경고한, 알려지지 않은 병원균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또 다른 세계적 전염병이다. 지난 2017년 빌 게이츠는 전염병이 핵폭탄이나 기후 변화보다 훨씬 더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결국 전염병으로 멸망을 하냐 마냐는 인간의 손에 달린 듯하다. (223쪽, 인류는 정말 전염병으로 멸망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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