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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질문 앞에 우리는 마주앉아』(정한샘,조요엘)

by 진아

브런치 작가님이신 '이해니' 작가님의 추천으로 『세상의 질문 앞에 우리는 마주 앉아』를 읽었다. (작가님, 너무 감사합니다!) 다른 책들에 밀리고 밀려, 추천받은 지 한참이 지난 이제야 읽게 되었는데. 프롤로그를 읽으면서 바로 후회했다. 하루라도 더 빨리, 만났어야 했는데.


읽는 내내, 바깥이 여름인 것을 잠시 잊었다. 따스한 봄볕 아래 가만히 앉은 것처럼 마음에 온기가 가득 찼다. 이토록 따스한 책이라니.




이 책은 ‘Part1. 책에 관한 엄마의 작은 기록’, ‘Part 2 엄마와 딸이 나눈 책 편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Part2가 핵심이고, Part1은 Part2로 가기 위한 가교 역할을 한달까.


Part1은 책을 좋아하는 아이에서 책을 좋아하는 엄마가 되었고, 이제는 딸과 책 친구가 되어가고 있는 저자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린 시절부터 책 읽기를 사랑했던 저자는 현재 작은 책방을 운영하는 책방지기가 되었다. 학교에 다녔다면 6학년이 되었을 딸은 5년째 홈스쿨링을 하고 있다. 마음껏 읽고 쓰며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아이와 그런 아이를 묵묵히 바라보는 엄마의 이야기는 낯설지만 감동적이었다.


가끔 생각한다. 만약에 내 아이가 학교에 적응을 하지 못하거나, 학교생활에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은 상황에 놓일 때, 혹은 자신의 의사로 학교를 그만두고 싶어 할 때, 나는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남들은 의심조차 하지 않고 가는 길에서 내 아이가 돌아서고 싶다고 할 때, 전혀 다른 길로 가고 싶다고 할 때, 나는 과연 그 길을 마냥 응원하고 바라봐줄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일이었다. 쉽지 않아서 더 가치 있을 수도 있지만 그래서 더 막막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저자는 달랐다. 쉽지 않았고, 여전히 흔들리기도 하지만 믿어주었다. 아이를, 아이가 가고자 하는 길을.


그 마음이 너무 부러워서 문장 문장을 마음에 새기며 읽었다. 아이를 믿어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불쑥불쑥 믿지 못하는 마음이 튀어나왔다. 그 마음은 ‘너를 위해서’, ‘너를 걱정하는 마음에’라는 말로 교묘하게 포장되었고, 나 자신조차도 진짜 그래서라고 믿었다.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내가 두려웠던 건 정말 무엇이었을까. ‘너’를 위해서라고 했지만, 혹시 남들이 정해둔 기준에서 흔들릴까 봐, 그래서 ‘너’만 유난스럽게 보일까 봐 그랬던 건 아니었을까.

저자의 단단한 마음을 닮고 싶었다. 엄마의 단단한 마음에 뿌리내린 아이의 편지가 자주 마음을 울렸다. ‘책을 읽을 수 없게 된다면 글을 쓰겠다’는 열세 살 아이에게 감동했다. 책을 읽고 마음에 남은 감정과 머리를 떠도는 생각을 편지로 담아내는 아이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리고 그 마음에 고운 답장을 쓰는 엄마의 모습도 떠올렸다. 그 이상 아름다운 모녀의 모습이 있을까.


육아서는 많다. 홈스쿨링 교육법을 담은 책도, 엄마표 영어교육을 지향하는 책도 넘쳐난다. 그러나 엄마와 아이가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고 마음을 전하는 책은 드물다. 그래서 너무 좋았다.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한다’는 당위적 메시지가 아니라, ‘나와 아이는 이렇게 함께 자라고 있어요’라는 따뜻한 귓속말을 전해 들어서인지 책을 내려놓은 지금까지 마음이 몽글거린다.




아이를 임신하기 전부터도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좋은 엄마’가 어떤 엄마인지도 모르면서, 그냥 그랬다. 막연하게 생각만 했다. 친구 같은 엄마, 잘 들어주는 엄마, 믿어주는 엄마, 언제나 곁에 머무는 엄마, 방향을 제시해주는 엄마 등등 많고 많은 ‘좋은 엄마’의 이미지가 둥둥 떠다녔다. 이 책을 읽고, 더 이상의 방황은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좋은 엄마의 이미지를 선명한 무지갯빛으로 그린 문장을 만났다.


우리 엄마는 공부 때문에 나를 야단친 적은 한 번도 없어. 대신 우리는 마주 앉아 좋은 책을 함께 읽었지. (19쪽)


마주 앉아 좋은 책을 함께 읽는 엄마,

그런 엄마가 되고 싶다.

그렇게 ‘좋은 엄마’가.




우리 그냥 이렇게 지내도 괜찮은 것 아닐까? 받아쓰기 틀린 개수에 따라 똑똑한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가 나누어지는 생활, 수학 단원 평가를 한다고 긴장하는 생활 대신 좋아하는 책을 마음껏 읽고 결석 일수에 상관없이 긴 여행을 하며 많이 뛰고 많이 놀고 많이 자고 많이 생각하는, 무엇보다도 서로가 많이 대화할 수 있는 몇 년을 보내어도 괜찮지 않을까?(28쪽)

나는 이제 순수한 즐거움에 머물지 않고 책을 통해 세상을 보려 한다. 알지 못했던 것을 알려고 하며 분노도 하고 연대도 한다. 책 안에서 만난 새로운 세상을 내 일상으로 끌어당겨 적용해 보려는 노력도 한다. 사는 방식이 있을 책을 결정해 주기도 하고, 읽은 책에 따라 살아가기도 한다. 이렇게 영역이 확장되는 독서에 단점이 있다면 콰르텟 북지수가 계속해서 가파르게 상승한다는 것, 그것뿐이다.(35쪽)

“그래, 넌 요즘 누구의 책을 읽고 있니?”
밥은 먹었니, 뭘 먹었니, 오늘 일은 어땠니 같은 질문이 아니라 요즘 누구의 책을 읽고 있냐는 질문이 칠십의 어머니와 중년의 아들 사이에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던 탓일까. 나는 꽤 충격받았고 매우 부러웠다.(44쪽)

자신만의 속도로 걷고 있는 이 아이의 보물 같은 순간들을 지켜주고 싶다. 모든 아이들이 같은 과정을 거쳐야 하고, 누구나 같은 빠르기 걸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서 자꾸만 벗어나고 싶다. 그들이 보기에 느긋한 아이는 어딘가 느리고 부족해 보일 것이며, 기다려주는 나는 천하태평으로 보일 것이다.
가끔은 나도 세상의 속도와, 가까운 이들의 불안에 영향을 받아 흔들리고 두려워진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아이의 책 읽는 모습을 보고 배우며, 아이의 글에 감동받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의 마로가 글을 통해 나를 다시 본다. 그러니 내가 해야 할 일은 조급해하거나 불안해하지 않고 지켜보는 것일 테다.(45쪽~46쪽)

이제 나는 아이와 어떻게 이별할까를 생각한다. 조금 이른 생각일지 몰라도 잘 이별하고 싶다. 때가 되었을 때 질척대지 않고 엄마의 자리를 훌훌 털어버리는 것이 나의 새로운 목표이다. 아이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응원하며 바라보리라 다짐했던 것처럼 지금부터 조금씩 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듯하다.
엄마의 손길이 필요했던 존재로서의 아이를 잘 떠나보내고, 나보다 조금 어릴 뿐인 새로운 친구로서의 아이를 맞이할 마음의 준비를.(51쪽)

우리 이번에 여러 가지 질문을 주고받았네. 대답을 할 수 있는 것도, 대답하기 어려운 것도 있었지만 그게 바로 책 읽기의 매력이라고 생각해. 서로 다른 질문을 하고 서로 다른 대답을 하는 것, 계속해서 읽어나갈 세계가 있기에 대답하지 못한다 해도 괜찮은 것. (65쪽)

모두가 엉뚱하고 용기 있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누군가는 모험을 통해 자신을 발견한다면,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의 자리에서 가만히 스스로를 마주할 수도 있는 거니까 말이야. 그러니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억지로 바꾸려 하지 말고, 우리의 마음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잠잠히 바라보자. (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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