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공부 때문에 나를 야단친 적은 한 번도 없어. 대신 우리는 마주 앉아 좋은 책을 함께 읽었지. (19쪽)
우리 그냥 이렇게 지내도 괜찮은 것 아닐까? 받아쓰기 틀린 개수에 따라 똑똑한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가 나누어지는 생활, 수학 단원 평가를 한다고 긴장하는 생활 대신 좋아하는 책을 마음껏 읽고 결석 일수에 상관없이 긴 여행을 하며 많이 뛰고 많이 놀고 많이 자고 많이 생각하는, 무엇보다도 서로가 많이 대화할 수 있는 몇 년을 보내어도 괜찮지 않을까?(28쪽)
나는 이제 순수한 즐거움에 머물지 않고 책을 통해 세상을 보려 한다. 알지 못했던 것을 알려고 하며 분노도 하고 연대도 한다. 책 안에서 만난 새로운 세상을 내 일상으로 끌어당겨 적용해 보려는 노력도 한다. 사는 방식이 있을 책을 결정해 주기도 하고, 읽은 책에 따라 살아가기도 한다. 이렇게 영역이 확장되는 독서에 단점이 있다면 콰르텟 북지수가 계속해서 가파르게 상승한다는 것, 그것뿐이다.(35쪽)
“그래, 넌 요즘 누구의 책을 읽고 있니?”
밥은 먹었니, 뭘 먹었니, 오늘 일은 어땠니 같은 질문이 아니라 요즘 누구의 책을 읽고 있냐는 질문이 칠십의 어머니와 중년의 아들 사이에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던 탓일까. 나는 꽤 충격받았고 매우 부러웠다.(44쪽)
자신만의 속도로 걷고 있는 이 아이의 보물 같은 순간들을 지켜주고 싶다. 모든 아이들이 같은 과정을 거쳐야 하고, 누구나 같은 빠르기 걸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서 자꾸만 벗어나고 싶다. 그들이 보기에 느긋한 아이는 어딘가 느리고 부족해 보일 것이며, 기다려주는 나는 천하태평으로 보일 것이다.
가끔은 나도 세상의 속도와, 가까운 이들의 불안에 영향을 받아 흔들리고 두려워진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아이의 책 읽는 모습을 보고 배우며, 아이의 글에 감동받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의 마로가 글을 통해 나를 다시 본다. 그러니 내가 해야 할 일은 조급해하거나 불안해하지 않고 지켜보는 것일 테다.(45쪽~46쪽)
이제 나는 아이와 어떻게 이별할까를 생각한다. 조금 이른 생각일지 몰라도 잘 이별하고 싶다. 때가 되었을 때 질척대지 않고 엄마의 자리를 훌훌 털어버리는 것이 나의 새로운 목표이다. 아이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응원하며 바라보리라 다짐했던 것처럼 지금부터 조금씩 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듯하다.
엄마의 손길이 필요했던 존재로서의 아이를 잘 떠나보내고, 나보다 조금 어릴 뿐인 새로운 친구로서의 아이를 맞이할 마음의 준비를.(51쪽)
우리 이번에 여러 가지 질문을 주고받았네. 대답을 할 수 있는 것도, 대답하기 어려운 것도 있었지만 그게 바로 책 읽기의 매력이라고 생각해. 서로 다른 질문을 하고 서로 다른 대답을 하는 것, 계속해서 읽어나갈 세계가 있기에 대답하지 못한다 해도 괜찮은 것. (65쪽)
모두가 엉뚱하고 용기 있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누군가는 모험을 통해 자신을 발견한다면,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의 자리에서 가만히 스스로를 마주할 수도 있는 거니까 말이야. 그러니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억지로 바꾸려 하지 말고, 우리의 마음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잠잠히 바라보자. (8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