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사고와 죽음을 보아도 무뎌지지 않는 마음이 있을 텐데요. 그래서 퇴근 후에 글을 쓰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추측해봅니다. 새살처럼 약한 마음 때문에 시작된 글들이 있을 거라고.(느끼하지만 고마운 남궁인 선생님께, 36쪽)
글쓰기란 늘 누군가에게 간파당하고 어딘가에서 나를 지켜보고 따라다니면서 죄책감도 남겨주는 신기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털어놓고 보면 왜 쓰는지 의문이 들지만, 쓰지 않았다면 작가님에게 이렇게 무엇인가를 털어놓는 일도 없겠지요. 우리는 글을 주고받기로 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글로 이루어지는 무궁한 세계를 생각합니다.(여러모로 징그러운 이슬아 작가님께, 29쪽)
글을 쓰는 사람은 자신의 세계를 확장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다음에는 무엇을 말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조금 더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의 입장에 설 수밖에 없습니다. 반성하고 주위를 되돌아보고 읽고 이해하는 것이 글쓰기를 계속하는 행위니까요. 작가님이 비건-에코-페미니스트를 언급하셨던 것처럼, 저 또한 꾸준히 폭력-학대-재난-슬픔 등을 언급해왔습니다. 비유하자면, 자신이 디디고 있는 디딤돌에 간신히 다른 디딤돌 하나를 올려놓고 그 달라진 광경을 묘사하는 일이 글쓰기의 갱신이겠지요.(고백하고 싶어지는 이슬아 작가님께, 75쪽)
아무래도 자신의 사연이 소진될 때가 글쓰기의 진정한 시작일 거라고 선생님은 말씀하셨지요. 자신의 세계를 확장할 의무가 작가들에겐 있다고도 하셨고요. 물론입니다. 저는 저를 잘 궁금해해서 겨우 데뷔를 한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저 아닌 것을 진심으로 궁금해하게 되어서 작가 생활이 이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에 대한 궁금함만으로는 100편 이상의 글을 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고통을 공부하느라 고통스러운 남궁인 선생님께, 85쪽)
그러고 보니 이 서간문은 2인조 계주 팀 같기도 합니다. 서로의 일상에서 시간을 덜어내 서로의 일상으로 도착하는 일이네요. 이 일은 왠지 이인삼각 같기도 합니다. 우리는 같이 발걸음을 옮겨 어딘가로 나아가고 있기도 하니까요.(발목이 묶여도 끝내 넘어지지 않는 이슬아 작가님께, 91쪽)
백화점 화장실은 쾌적해서 울 맛이 난다고, 더러운 화장실에서라면 결코 울지 않았을 거라고, 스물두 살의 제가 적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무렵엔 글쓰기로 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글쓰기가 저의 중요한 부분을 수호해줬던 것만은 분명했어요. 이런 이야기를 그날의 독자님들 앞에서 회상하면서 고난을 고난으로만 두지 않게 하는 속성이 글쓰기에 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경험은 글로 쓰면 견딜 만해지니까요.(이래저래 궁상스러운 남궁인 선생님께, 180쪽)
우리 사이엔 늘 오해가 있고 앞으로도 그럴 테죠. 언젠가 선생님이 쓰셨듯 “우리는 대체로 패배하고 가끔 승리했다고 생각하겠지만 다시 패배로 돌아올 것입니다”. 서로를 모르니까요. 오해는 흔하고 이해는 희귀하니까요.(남궁인밖에 모르는 남궁인 선생님께, 21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