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지하가 추천하는 이반지하.
공연할 때마다 나는 관객이 모두 퀴어라고 상정하고 퍼포먼스를 한다. 왜냐면 내가 그렇게 느끼기 때문이다. 물론 세상에는 성정체성에 관한 여러 가지 구분과 분류가 있고, 그것이 인권운동적인 측면에서나 사회 담론의 측면에서는 엄청나게 유효할 수 있지만, '사람 간의 개별적 관계'의 맥락으로 들어왔을 때는 그게 그렇게 확고한 경계를 지을 수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오히려 나는 개개인의 개별성과 저마다의 다양한 관계 맺음을 훨씬 더 피부에 와닿게 경험한다. 나는 그런 면에서 퀴어와 헤테로를 대립 구도로 보지 않는다. 그냥 우리는 다 '퀴어'라고, 실상은 헤테로가 퀴어의 하위 범주라고 인지한다. 우리는 모두 개별적으로 이상한 변태들일 뿐이고, 그것은 헤테로 역시 마찬가지다.(53쪽, 정상이라 미안한 친구들에게)
저는 지금 이 사회에서는 패배주의를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사람이 이상한 것 같아요. 경쟁에서 뽑히는 사람이 적을수록 떨어지는 사람은 그만큼 많은 거잖아요. 뭐, 그렇게 대단해서 패배하는 게 아닐 수도 있다는 거예요. 거절이란 게,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대단한 이유로 행해지는 게 아니라 되게 흔하고 평범한 경험이니, 그걸 너무 한계라고 견고하게 느끼지 않길 바라요. 그리고 그 거절과 패배를 겪어내는 과정에서 어떤 것이 결정타가 될지 모른다는 거?(99쪽, <월간 이반지하> 10호)
물론 세상 당신, 당신도 나를 견디고 있다. 세상 역시 거대한 젠더 추격전이라는 세계관의 무대인 동시에 집단적 관념의 뭉치로서 젠더 역할을 맡아, 나와 나의 젠더를 견뎌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아, 너는 나와의 관계에서 꽤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고 있음을 부디 쪼끔은 인정하길 바란다. (180쪽, 젠더 쫓김이)
무기력감을 호소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죽고 싶고, 부모한테도 미안하고……. 그런데 무기력감은 미안한 게 아닙니다. 내가 무기력해서 뭐가 안 풀리는 게 아니라, 뭔가가 힘들기 때문에 무기력감이 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무기력감은 어떻게 보면 골절 같은 거죠. 난 지금 조금 다친 상태인 거예요. 그 상태를 받아들이고, 나를 돌보는 걸 우선순위에 두어야지. 나 왜 이렇게 무기력하지. 난 무기력해서 문제야 이런 식으로 몰아붙이면 너무 힘들 것 같아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211쪽, <월간 이반지하> 8호)
처음엔 기가 막히지만, 너무나 당당하고 아무렇지 않게 멋대로 다 깨부수면서 자라나는 것을 보면, 그들의 삶에서 나는 그냥 '보는 자'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나는 애초에 그 생에 관여할 자격이 없었으며 그저 보는 것 정도나 겨우 껴들 듯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나에게 어떤 예고도 빚지지 않은 채, 어떤 껄끄러움도 없이 순정하게 지 할 일만 하고 사는 거다. (336쪽, 짐승 같은 식물적인)
죽을 때까지 해야 되는 일은 없어요. 죽을 것 같으면 안 해야 돼요. 한 사람의 창작 과정이나 삶에 대해서 이래라저래라 판단할 순 없어요. 그런데 저는 기본적으로 다 해도 된다는 얘기를 꼭 하고 싶어요. 그게 이 사회가 우리에게 안 주는 메시지인 거 같거든요.(343쪽, <월간 이반 지하> 2호)
당신의 삶은 나와 얼마나 같고 다를 것인가. 어찌 됐든 부디 평범하고 정상적인 일상에 감사하며 범사에 범사하길 바란다. 근데 사실은 안 바란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나대로 살아가기 바쁘다. 당신도 바쁠 것 같다. 그러니까 가끔만 만나자. 다음에 또 만나자.(359쪽, 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