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망하지 않고, 자책하지 않고, 허무해 말고.

by 진아

아이가 코로나에 감염되었다는 사실을 전해 들은 지인들이 전화로 혹은 메시지로, 가장 많이 해준 말은 ‘원망하지 말라는 것’과 ‘자책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어린이집에서 감염이 되었지만, 감염 아이는 봄이 딱 한 명이었다. 상황을 원망하기에 이만큼 좋은 구실이 있을까.


‘왜 하필 내 아이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봄이가 등원을 하지 않은 이틀 동안에도 그 아이(먼저 확진 판정을 받은 아이)는 등원을 했었다. 그 이틀 동안에 모든 활동을 함께 한 아이들은 아무도 감염되지 않았다. 그런데 생뚱맞게도 봄이는 감염이 되었다.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럴수록 분명해졌다. ‘하필’이라는 단어는 이 상황과 어울리지 않았다. 바이러스가 내 아이를 알아보고 내 아이에게만 침투했을 리 없었다. 그저 불가항력적인 일이었다. 마치 전혀 예상할 수 없던 천재지변 같은 거였다. 그래서였을까. 지인들의 걱정 어린 목소리를 듣기 전에 이미 '원망하지 않겠다' 다짐한 터였다. 대상 없는 원망에 쏟을 에너지도 없었다.



‘내 잘못으로 아이가 코로나에 걸린 건 아닐까?’


그동안 아이를 위험한 곳에 데려가지 않았다. 사람이 많은 곳은 어떻게든 피했고, 부득이 외식을 하더라도 구석 자리, 창가 자리를 고집했으며 식사가 끝나면 바로 마스크를 쓰게 했다. 버스 타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버스에 타겠다는 남편과 언쟁을 벌일 만큼 나름의 최선을 다해왔다. 그런데도 아이는 매일 가는 어린이집에서 감염이 되었다. 생각의 여지가 없었다. 자책하기엔 최선을 다해온 시간이 너무나 선명했다.


오히려 나를 가장 자주 괴롭힌 감정은 '허무함'이었다.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해 노력한 시간들이 허사가 된 게 못 견디게 괴로웠다.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여행다운 여행 한 번 가지 못했고, 마음 편히 외식 한 번 하지 못했다. 아이들의 바깥활동에 민감할 만큼 많은 제약을 가했고, 친정에도 거의 가지 못했다. 날씨가 더워져 아이들의 친구들이 덴탈 마스크를 쓰고 놀이터에 나와도 내 아이들만큼은 굳이 K94 마스크를 쓰게 했고, 아무도 없는 공원에서도 아이들이 행여 마스크를 벗을까 전정 긍긍했다. 그렇게 유난스러워 보일 만큼 조심, 또 조심해왔다.


그 시간이 말 그대로 도루묵이 되었다. 내 아이는 코로나에 걸렸다. 결국 그 바이러스를 막지 못했다. 거기서 오는 허무함은 생각보다 타격이 컸다. 때로는 무엇을 잃었는지도 알 수 없으면서 '상실감' 비슷한 감정까지 밀려왔다.


여전히, 드문드문 허무함을 느낀다. 그러나 시간을 되돌린다 해도 똑같은 판단과 행동을 할 것을 알기에 털어버리려 애쓰는 중이다. 지난 시간이 부질없었다고 해서 앞으로는 그러지 않을 것인가. 장담컨대 아닐 것이다. 어쩌면 더 예민하게 조심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지금 허무해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그저, 뜻하지 않은 벼락을 맞았구나 여길 수밖에.




그래도 곧 마흔이 되는 지금에 와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면,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을 땐 일단 ‘수습’하는 게 우선이라는 사실이었다. 원망하고 자책하는 건 뒤의 문제였다. 허무해하고 허탈해하는 것도 부수적인 일이었다. 벌어진 일을 잘 매듭짓는 데 모든 에너지를 쏟는 게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더 나았다.


이미 아이는 확진 판정을 받았다. 천재지변과도 같은 이 일을 누군가를 원망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없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온 나를 자책하는 것으로도 해결할 수 없었다. 허무하다고 해서 나자빠져 있을 여유도 없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 해야 하는 것에 몰입하기로 굳게 마음을 먹었다.


둘째의 건강을 면밀하게 살피는 일

첫째의 마음을 다독이는 일

남편과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빠짐없이 주고받는 일, 그리고 남편에게 기대는 일

나의 마음을 살피고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하는 일, 그리고 지금의 상황에 감사하는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딱 그만큼이었다. 더 이상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오늘도 원망하지 않았고 자책하지 않았다. 허무함에 휘청거리지 않았다. 아니, 그러려고 노력했다. 애쓰고 또 다잡았다. 그 대신 둘째의 열을 시간 맞춰 체크했고, 아이의 컨디션을 살폈다. 보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는 첫째의 마음을 읽어주고, 남편에게도 첫째의 마음을 읽어주라며 멘트까지 정리해서 메시지로 보내주었다. 부쩍 불안한 내 마음을 살폈고, 남편에게 불안하다고 겁이 난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남편은 괜찮을 거라고 말해주었고, 그 말에 힘을 얻었다.


어쩌면 이 정도의 중심을 잡고 서있을 수 있는 것은 아이가 별다른 증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가 고열에 시달리고 통증에 고통받았다면, 상상하고 싶지도 않지만 만약에 그랬다면, 벌써 무너져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그렇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두려움이다.


그러니 원망하지 않고, 자책하지 않고, 허무해 말고.

지금의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이 시간을 현명하게 흘려보내고 싶다.

꼭 그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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