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는 정말로 씩씩하다. 세 살짜리 아가한테 이런 표현은 어딘지 어색하지만, 의젓하기까지 하다.
환기를 위해 창문을 약간 여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 이곳에서.
벌써 6일째 이 작은 방 바깥으로는 발가락 하나 내어놓지 못한 긴 시간 동안.
평소 잘 갖고 놀던 블록과 클레이 몇 개, 책 몇 권, 색연필과 색종이 정도의 놀잇감만으로.
밥 먹는 잠깐, 양치질을 하고 세수를 하는 순간을 제외하고는 내내 마스크를 쓰고 있어야 하는 상황에서.
너무나 씩씩하고 의젓하게 지내주고 있다. 가끔 그 모습이 애처로워 보일 만큼.
삼시세끼 도시락을 먹다 보니 가끔 바깥 음식이 그립다. 첫 이틀 정도는 정신이 없어서 그럴 틈도 없었는데, 사흘 나흘 흘러가니 매콤한 비빔국수도 먹고 싶고 달달한 디저트도 먹고 싶다. 매일 한두 잔씩 마시던 아이스라테도 그립고, 시원한 맥주 한 캔도 생각난다. 격리 하루 전날 사다가 냉장고 서랍에 넣어둔 복숭아도 먹고 싶고, 사각거리는 사과도 한 입 베어 물고 싶다.
체구는 작아도 먹는 걸 좋아해서 집에 있으면 종일 입안에 뭔가를 오물거리던 우리 봄이. 빵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우리 빵순이 봄이. 1일 1 요구르트는 기본이었던 우리 봄이. 그런 봄이가 먹고 싶은 게 없을 리 없다. 클레이로 요리 놀이를 하다가도, 책을 보다가도 "엄마, 나 케이크 먹고 싶어. 나 피자 먹고 싶어. 복숭아 없어? 요구르트는 언제 나와(도시락에 한 번 요구르트가 나왔었다.)?"라며 먹고 싶은 음식 얘길 한다. 때마다 해줄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다.
"봄아, 여기서 나가서 집에 가면 엄마가 다 사줄게! 다 먹자 우리!"
울고 조르고 보챌 법도 하다. 사실 그게 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실망한 표정을 보이긴 했어도, 단 한 번도 내가 난감할 만큼 떼를 쓴 적이 없다. 오히려 어른용으로 나오는 도시락 반찬을 나보다 더 잘 먹는다. (이곳에는 어린이용 도시락이 따로 제공되지 않는다. 그냥 어른용 도시락이 두 개 나와서 봄이가 먹을 수 있는 반찬을 골라서 먹이고 있다. ) 제 몫을 다 먹고도 더 먹겠다고 해서 놀랄 때도 많다. 가리지 않고 잘 먹어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비슷한 놀잇감으로 이런저런 놀이를 구상해서 하는 것도 놀랍다. 6일째쯤 되니 좀 지루하고 심심하기도 한지 핑크퐁, 콩순이, 로보카 폴리 등을 전보다 자주 찾기는 한다. 그래도 하루 두세 번 정해진 시간에 만화를 보는 거 외에는, 같은 놀잇감으로 이래저래 잘도 논다. 클레이만 하더라도 처음엔 요리놀이만 하더니, 이내 자르고 담는 놀이를, 색깔별 분류 놀이를, 가게놀이를, 던지고 받는 공놀이까지 한다. 노는 내내 내가 놀이 상대가 되어야 하지만, 아이가 안 아픈 것만으로도 감사해서 성실하게 놀이 상대가 돼주는 중이다.
마스크 생활도 큰 투정 없이 잘한다. 내가 음성이다 보니 이곳에서도 마스크를 벗을 수가 없는데, 그걸 세 살짜리 아이가 받아들인다니! (혼자 격리된 사람들-성인-은 완벽히 밀폐된 공간이므로 방안에서는 당연히 마스크를 쓰지 않을 것이다.) 나와 봄이는 당연히 밥을 따로 먹지만, 각자 밥을 먹을 때도 마스크를 쓰고 먹는다. (밥을 입에 넣을 때만 살짝 내리고 씹을 때는 쓴다.) 잠을 잘 때도 밤새 쓰고 잔다. 머리를 감거나 샤워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거의 마스크와 혼연일체다. 나도 너무 숨이 막히고 갑갑할 때가 있는데, 봄이는 별로 투정하지 않는다. 가끔 불편하다고 할 때도 있지만 "엄마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리면 봄이를 곁에서 돌봐줄 수 없어. 그럼 엄마랑 떨어져서 지내야 해."라고 말하면 금세 수긍한다. 정말로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이다.
오늘은 아이도 조금 갑갑했는지 평소와 달리 떼를 썼다. 마스크도 불편하다며 썼다 벗었다를 반복했고, 티비도 더 자주 찾았다. 어쩌면 그게 훨씬 더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세 살 다운, 아이다운 일이라고 생각했었으면서도 보채고 떼쓰는 아이를 달래는 게 쉽지 않았다. 엄마도 힘들다고, 답답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때 깨달았다.
여태껏 나는 봄이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봄이의 의젓함과 씩씩함에 기대고 있었다. 그 모습에 위안받고 위로받고 있었다. 24시간 동안 마스크 두세 개를 겹쳐 쓰고 헉헉거리면서도, 혹여나 나까지 감염되어 모든 상황이 엉망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끼면서도, 씩씩한 아이 덕에 버티고 견딜 수 있었다. 아이가 무너지자, 아이를 끌어안고 버텨야 할 나도 온전치 못했다.
이 얼마나 모자란 엄마인지. 부족하기 짝이 없는 엄마인지.
그러고 보면 입소 첫날부터도 잠들기 전 꼭 봄이의 등을 쓸어야 잠들 수 있었던 건 나였다. 잠결에 둘러보면 작은 아이의 손을 잡고 있던 것도 나였다. 이제껏 아이만 내게 기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나와 아이만 존재하는 이곳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의지하고 있다. 그렇게 기약 없는 시간과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는 불안을 함께 견디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