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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걸리면 진짜 안 돼?』(서주현)

by 진아

아이의 코로나 확진, 생활치료센터 입소, 퇴소 후 이어진 나의 자가격리까지.

거의 한 달 가까운 시간 동안 코로나 확진자의 보호자로, 밀접접촉자로 지내며 ‘코로나 사태’를 전과 다른 눈으로 보게 되었다. 팬데믹이라 부를 만큼, 엄청난 바이러스의 유행이었으나 사실 이전까지는 코로나에 대해 방관자적 태도로 지내왔다. 마스크를 철저히 쓰고 전보다 개인위생에 더 신경을 쓰긴 했지만,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은 피하고 실내 활동이나 외식은 최대한 자제했지만, 혹시라도 감염될까 봐 겁이 나고 두려웠지만, 그래도 나는 이 코로나 사태에서 한 발쯤 떨어진 곳에 있었다.


아이의 어린이집에 확진자가 나오고, 어린이집 원생과 교직원 전원이 코로나 선재 검사의 대상이 되는 순간에도 ‘내 아이는 아닐 것이다’라며 한 발 빼고 있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내 아이는 감염이 되었고, 그 순간부터는 더 이상 방관자일 수 없었다. 그렇게 온몸으로 코로나를 겪으며, 수많은 일을 겪었다. 그중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았다.


아이가 확진되고 생활치료센터에 입소하기까지 치료센터라는 곳에 대한 어떠한 사전 설명도 듣지 못했다.

나와 아이가 치료센터에 입소하고, 집에 남은 첫째와 남편에게 자가격리 통지가 온 것은 4일 정도가 흐른 뒤였다.

생활치료센터에서는 어떠한 ‘치료’ 행위도 일어나지 않았고, 하루 세 번씩 도시락 배달 이후에 방역 작업을 했다. (바이러스에 걸릴 확률보다 독한 소독약에 중독될 확률이 더 높게 느껴졌다.)

아이는 가벼운 감기보다도 증상이 없었다. (코로나가 정말로 무서운 바이러스인 것은 맞는 걸까.)

치료센터 퇴소가 가까워질 때까지 누구도 퇴소 이후 보호자인 내가 자가격리에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아이가 집에 돌아온 후에야 아이 이름의 격리 통지서가 날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아이에게서 며칠 동안 미열이 났고,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겠다고 하자 담당자마다 다른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누구는 그냥 다녀와라, 누구는 무조건 안된다…….)

아파트 단지 바로 길 건너편에 있는 소아과에 가는 건데, 구급차를 불러서 가라고 했다.(구급차가 ‘응급’ 상황이 아닌 환자를 왜 이송해야 하는가.)

자가격리 중에 인후통이 발생해서 자가격리 어플에 ‘인후통’이 있다고 표시를 했음에도 아무런 조치나 연락이 없다.(그럼 이 어플은 왜 쓰는 걸까.)


이것뿐만일까. 의문스러운 점은 차고 넘쳤다. 이해할 수 없는 지침은 너무 많았고, 관리 또한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연일 코로나 확진자는 이천 명에 가까워졌다. 백신을 맞은 사람에게 인센티브를 줄 만큼 백신 접종을 강조하고 있지만, 그 상황을 비웃듯이 변이 바이러스는 활개를 쳤다. (나는 2차 접종까지 마쳤지만, 아이가 감염된 바이러스가 델타 변이 바이러스이므로 자가격리 면제도 받지 못했다.)




『코로나19, 걸리면 진짜 안 돼?』는 ‘응급의학과 의사의 선별진료소 1년 이야기’라는 부제대로, 선별진료소에서 근무하는 의사의 경험담이다. 코로나의 최전방이라고 할 수 있는 선별진료소에 근무하며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한 ‘코로나’에 대한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코로나에 대한 의학적 지식이라고는 전혀 없는 나조차도, 코로나를 경험하며 의문스러운 게 한두 개가 아니었으니, 선별진료소 의사의 눈에 비친 이 사태는 도대체 어떻게 이해되고 있을지 궁금했다.


다만, 학생들이 학교를 가지 못하고, 젊은이들이 취업을 못하고, 생계에 위협을 느끼고, 많은 보건의료인이 코로나 검사에 동원되느라 진짜 환자를 돌보지 못하고, 교통사고 환자가 열이 난다는 이유로 치료를 못 받고, 자가격리자라는 이유로 죽어가도 어쩔 수 없고,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사용했던 일회용품이 쌓이고, 락스와 알코올을 손을 비롯한 모든 물건들에 뿌리고 발라야 할 정도로 그 일이 옳은 일인지 모르겠다. 내 생각이 무조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 그저 코로나19 사태의 실상을 정확히 알고, 정보의 치우침이 없는 상태에서 판단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 (207쪽)


이 책 전체에서 결국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이 문단에 모두 압축되어 있다. 지금의 사태가 과연 ‘옳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지. 한 번쯤 브레이크를 걸고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


거리두기 단계를 높이고 낮추어가며 버텨온 시간이 벌써 2년이 가까워지고 있다. 그 사이 계절은 벌써 7번째 바뀌는 중이다. 수많은 자영업자가 영업을 포기했고, 수많은 엄마 아빠들은 아이들의 양육을 위해 일을 그만두어야 했다. 학생들은 여전히 등교를 하다 말다 반복하고 있고 군인들을 한동안 모든 휴가를 반납해야 했다. 백신 도입 이야기가 나올 때만 하더라도 백신 접종자에 한해서 올해 7월부터는 실외 공간에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었는데, 변이 바이러스의 등장으로 없던 말이 되었다. 여전히 하루에 이천 명 가까운 확진자가 나오고 있고, 그 말은 관련 자가격리자는 만 명을 훌쩍 뛰어넘을 것이라는 말과 같다.

저자는 선별진료소에서 1년 이상 근무하며 하루에도 몇십 명씩 코로나 검사를 진행했다. 응급환자임에도 열이 난다는 이유로 진료가 거부된 환자들의 응급처치를 하기도 했고, 가건물인 선별진료소에서 추위와 더위를 온몸으로 겪어내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저자는 이 사태 전반에 의문을 품었다.


코로나로 인해 중증 환자들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

열이 나는 데에는 수만 가지 이유가 있는데, 일단 열이 나면 무조건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하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어떤 조치도 받지 못한 채 대기해야만 하는 상황

수많은 인적, 물적 자원이 투입되는 데 비해 실제적 효과는 미비한 상황

선별진료소의 열악한 근무 상황

코로나로 인해 온 나라가(특히 교육 활동이) ‘멈춘’ 상황


저자는 이 모든 상황을 현장에서 보고 듣고 경험하며 묻고 또 묻는다. 과연 현재 시행 중인 ‘코로나 정책’이 성공 가능한 것인지.


저자는 그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판단한다. 무조건적인 ‘통제’와 안정성이 확보되지 않은 ‘백신’ 접종을 강요하는 방식으로는 결코 코로나 사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나 또한 이토록 친밀하게(?) 코로나를 경험하지 않았다면, 저자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코로나를 겪고 보니, 저자의 말에 일견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 정도 했기 때문에 사망자 수도 많지 않으며, 이 정도의 경제활동도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어떠한 의학적 지식도 없기 때문에 어떤 말도 할 수 없다. 다만, 벌써 2년째 이어지는 ‘코로나19’ 사태에다, 앞으로 코로나 22, 코로나 23이 오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보다 장기적이고 실효성 있는 정책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확진자의 동선을 공개하고, 접촉자를 모두 격리하고, 시설을 폐쇄하고.

코로나에 걸렸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해고되고, 학교에서 따돌림의 대상이 되고.

완치 이후에도 양성 반응이 나오는 코로나 검사 결과 때문에 취업이나 시험 응시의 기회가 막히고.


깊이 생각해보지도 않고, 무조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에 물음표를 던지게 된다. 이 모든 일들이 과연 정당한지. 왜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사회적 약자들의 삶은 더욱 곤궁해졌는지. 이 모든 책임의 무게를 고스란히 지고 있는 자들은 누구인지.


이런 상황을 반복해서 겪다 보면 정말로 안타까운 마음이 생긴다. 도대체 이 코로나19 정책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사망할 수도 있는 기저질환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백신도 맞고 거리두기도 하는 것인데 호흡곤란이 심한 기저질환자들이 응급실에서 빠른 진료를 받지 못하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건강한 사람은 건강한 사람대로 활동하기 어렵고 그렇다고 기저질환자들을 위한 최선의 정책도 아닌 이 생황을 누가 속 시원히 설명이나 해주면 좋겠다.(80쪽)

자가 격리도 마찬가지이다. 자가 격리의 목적이 방역 당국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감염의 고리를 끊기 위한 것이 되려면 음주운전이나 흉악범죄보다 더 확실하게 잡아내야 한다. 중한 범죄여서가 아니라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지켜야 하는 자가 격리 제도를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중략) 보건소 직원이 수십 배 늘어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다.(85쪽)

코로나19는 방역수칙을 완벽하게 지키며 살아도 100퍼센트 예방할 수 없다. 100퍼센트 예방을 해야 할 만큼 엄청나게 위험한 감염병도 아니다. 특히 학생들이나 젊은이들에게는 더 그렇다. 코로나 19 환자가 된다는 것, 격리자가 된다는 것, 개인정보다 공개되지 않아도 거주 지역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본인이 확진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것, 동료 직원들이 일을 떠맡아야 한다는 거만으로도 충분히 괴롭고 미안하고 슬픈 일인데, 징계까지 고려하고 범죄자 취급을 해서야 되는가.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다.(178쪽)

코로나19에 대해 가장 정확한 사실은 ‘누구도 정확히 모른다’는 것이다. 누구도 정확히 모르는 것 때문에 어린이와 청소년을 1년 이상 방치하는 일이 과연 용납될 일인지 묻고 싶다. 이보다 더 심각한 일은 코로나19로 확진된 학생이 나왔을 때 일이다. 그 학생이 받는 피해는 최악의 학대를 받는 것과 같다. 그런데도 방역을 핑계로 인권유린과 혐오가 정당화된다. (1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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