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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단어』(박웅현)

by 진아

이미 오래전에 읽었던 책을 우연한 계기로 다시 읽게 되었다. 이 책이 출판된 지 벌써 십 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고, 당시 이십 대였던 나는 삼십 대 후반이 되었다. 저자의 강연록이기도 한 이 책은, 처음 읽었던 당시에는 별다른 울림을 남기지 못했었다. 그때는 오래 준비한 시험에 무사히 통과하여 목표하던 바를 이룬 때였다. 사회초년생으로서의 어려움이 있기는 했지만, 제 밥벌이를 하는 인간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때기도 했다. 삶에 대한 고민이 치열하지 않았고, 오히려 묘한 자부심에 차있기까지 했던 때라 책의 목소리가 와닿지 않았다.

다시 읽은 『여덟 단어』는 마치 처음 읽는 것처럼 새로웠다. 이런 문장이 있었나 싶었고, 왜 당시에는 별다른 느낌을 받지 못했는지 이해할 수 없기도 했다. 아마도 이제야 삶에 대한 고민을 제대로 하기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서른여덟이 되어서야.

비로소.




‘자존, 본질, 고전, 견, 현재, 권위, 소통, 인생’, 저자가 말하는 인생의 키워드, 여덟 단어이다. 이 여덟 단어는 분리되어 있지 않다. 결국 여덟 단어가 조화롭게 연결되면서 하나의 방향으로 나아간다. 바로 ‘좋은 삶’이다.


자존 : 나를 중히(귀하게) 여기는 것. 중심점을 내 안에 찍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것. 자신의 길을 무시하지 않는 것

본질 : 시간의 세월을 견뎌낸 것. 복잡한 사물의 핵심이자 변하지 않는 것. 본질을 발견하려고 노력하면서 동시에 본질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포기할 줄 아는 용기를 갖는 것.

고전 :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사라지지 않고 살아남은 것. 고전에 대한 관심을 놓지 말 것. 진정한 명품을 알아보는 눈을 가질 것.

견 : 흘려보고 듣는 것이 아니라, 깊이 보고 듣는 것. 많이 보려고 애쓰기보다 제대로 보려고 애쓸 것, 개별적인 것들의 본질을 깊이 들여다볼 것.

현재 : 개처럼 살 것(개는 밥을 먹으면서 어제의 공놀이를 후회하지 않고 잠을 자면서 내일의 꼬리 치기를 미리 걱정하지 않는다.) 옳은 선택을 고민하지 말고, 선택할 것. 그리고 그 선택을 옳게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

권위 : 권위에 무비판적으로 굴복하지 않을 것. 윗것이 되었을 때 권위를 부리지 않을 것. 권위는 우러나오는 것. 껍데기뿐인 직업과 직함에 저항할 것. 존경할 만한 사람에게는 그 권위를 인정하고 권위에 굴복할 것. 하루하루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 사회의 약자들을 무서워하고 무조건 존중할 것.

소통 : 상대의 입장에서 어떻게 생각할지 헤아리는 마음을 지닐 것. 내 생각을 잘 정리해서 말할 것. 지혜롭게 생각을 디자인해서 말할 것.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소통을 할 것.

인생 : 전인미답(이제까지 누구도 발을 들여놓거나 도달한 사람이 없음)의 길 앞에서 망설이거나 두려워하기보다 설렘과 기대를 품고 걸어볼 것. 인생에는 공짜가 없고, 정답이 없으며, 인생은 긴 마라톤임을 잊지 말 것.


여덟 단어에서 저마다 울림을 받았지만, 가장 큰 울림으로 다가온 것은 ‘견’이었다. 언젠가부터 세상의 모든 것들이 조금 시시하게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매일 먹는 밥에, 그저 그런 일상, 앞으로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은 주변 환경까지, 새롭게 보이는 무언가가 없었다. 그래서 맨날 먹는 밥은 지겨웠고, 일상은 지루했으며, 주변은 따분했다. 그때 내게 가장 부족했던 것이자, 그래서 반드시 필요했던 것이 바로 ‘견’이었다.


대충 보고 넘기지 않는 것, 흘려보고 듣지 않는 것.

깊이 보고 듣는 것, 제대로 보고 본질을 꿰뚫어 보는 것.


그나마 2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전보다는 ‘견’에 기울이는 노력이 많아졌다. 무언가를 써내기 위해서는 달리 보는 시선이 필요했고, 본 것을 다시 보는 감각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저자의 ‘견’에 대한 글을 읽으며 내게 그토록 필요했던 일이자, 그래서 애써온 일이 바로 이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견', 살아가는 내내 마음에 새기고 싶은 단어를 찾았다.


‘견’만 제대로 되어도 많은 것이 달라진다. 비슷한 일상이 특별한 순간이 되고, 매일 만나는 사람이 반가운 사람이 된다. 사소한 변화가 엄청난 성장으로 느껴지고, 별 것 아닌 일이 대단한 일처럼 느껴진다. 삶의 생기가 돈다. 확실히 글을 쓰기 전(‘견’에 마음을 쏟기 전)보다 글을 쓴 후(‘견’에 마음을 쏟은 후)로 삶의 곡선은 자주 굽어 들었고, 그러다 보면 예기치 못한 곳에서 새로운 길을 만나기도 했다.



삶의 방향키를 잃고 생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순간을 만날 때면, 손 뻗는 책이 될 것 같다. 자존, 본질, 고전, 견, 현재, 권위, 소통, 인생, 여덟 단어를 곱씹으며 조금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고자 애쓰게 될 것 같다.


여덟 단어에 나만의 인생 키워드를 덧붙여가면서, 당당하게 그리고 단단하게, 잘 살아가고 싶다.


묵묵히 자기를 존중하면서, 클래식을 궁금해하면서, 본질을 추구하고 권위에 도전하고, 현재를 가치 있게 여기고, 깊이 봐가면서, 지혜롭게 소통하면서 각자의 전인미답의 길을 가자.(2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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