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강화길)

by 진아

근래에 읽은 책 중에 이토록 읽기 버거운 책은 없었다. 그러면서도 읽기를 멈추기 어려운 책도 없었다. 너무 현실적이어서, 제발 현실이 아니었으면 생각하면서도 바로 나의 학창 시절 이야기라서, 한 다리만 건너면 만나게 될 듯한 인물들의 이야기라서 읽는 내내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영페미의 최전선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강화길 작가님의 첫 장편. '다른 사람'에는 학교폭력, 따돌림, 빈부 차로 결정되는 서열화, 교내 성폭력, 데이트 폭력, 친족강간, 댓글 테러, 자살 등 한 편에 담아내기엔 너무나 어마어마한 소재들이 오롯이 담겨있다.

그 중심에는 '진아'라는 삼십 대 초반 여성이 있고, 서사가 진행면서 '유리'와 '수진'이라는 친구들이 등장한다. 진아는 직장상사이자 남자친구였던 진섭에게 데이트 폭력을 당하고, 이를 고발함으로써 직장을 잃고 두문불출하는 삶을 산다. 진아는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찾아 읽으며, 정말로 자신이 잘못해서 '맞은 것'일까, 왜 자신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확인하고 싶어 한다. 그러던 중 자신을 비난하는 댓글 하나에서 잊고 싶던 과거(이십 대 초반)를 소환하는 내용을 보게 된다. 진아는 그 댓글을 썼을 것이라 짐작되는 수진을 찾아간다.

진아는 댓글을 쓴 사람을 찾고자 했지만,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수진과 자신의 어긋난 관계, 유리의 죽음에 숨겨진 진실, 수진과 유리가 겪었던 고통들을 차례로 마주한다. 어린 시절 엄마에게 버림받고 허드렛일을 하는 할머니에게 양육된 수진, 수진과 친구가 되었으나 동네 유지의 딸이었던 보영과 친구가 되기 위해 수진의 손을 놓아버린 진아, 고아로 자라면서 극심한 외로움과 싸워야 했던 유리, 그랬기에 누구에게든 쉽게 자신의 것을 다 내어줬던 유리, 그런 유리를 함부로 대했던 수진과 진아, 그리고 그들의 삶을 짓밟은 남자들과 또 다른 여자들.

읽는 내내 불편함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 감정은 단순히 답답함도 아니고 분노도 아니었다. 욕지기와 구토가 동시에 올라오는 느낌, 복합적인 그 감정을 대체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단언하는 이유는, 그러지 않아야 한다 생각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성차별적인 발언에 동조하기도 하고 그런 발언을 내뱉기도 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여성의 문제에 민감하지 못하고 남성의 문제에 무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읽는 내내 못 견디게 부끄러웠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에서 나는 진아에게 지목당했다.


모든 것이 끝나버린 그 순간, 대답할 사람은 바로 너니까. 그렇다. 이제는 네 차례다.


그렇다. 내 차례다. 이제는 내가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예민해져야 한다. 민감하게 반응하고, 민감함을 비난하는 이들의 시선에는 둔감해져야 한다.

어쩌면 나의 일이었을지도, 내 동생의, 내 친구의 일이었을지도 모르는 진아와 수진, 유리의 이야기가 하필이면 가을비 오는 오늘과 만나 꽤 오래 마음을 두드릴 것 같다.


나는 석 달 동안 매일매일 트위터, 페이스북, 온갖 SNS와 포털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내 이름을 뒤적거렸다. 내 기사와 댓글을 읽고 또 읽었다. 나는 알고 싶었다. 대체 나는 어떻게 생겨먹은 걸까. 어떻게 보이는 걸까. 정말 나는 형편없는 인간일까.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폭행을 당하고, 죽여버리겠다는 말을 듣고, 그나마 친하다고 생각한 동료에게 뒤통수를 맞은 걸까. 나는 어떤 사람일까.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함부로 대해야 하는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런 일이 벌어진다. 함부로 건드려도 된다고 생각되는 대상들이 누군가에게는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이야기는 그렇게 마무리되지 않는다. 이야기를 끝낼 사람은 바로 너다. 모든 이야기를 시작한 사람, 오래된 미래를 다시 펼쳐놓은 사람.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진짜 이야기가 시작될 때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야기의 마지막 장. 모든 것이 끝나버린 그 순간, 대답할 사람은 바로 너니까. 그렇다. 이제는 네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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