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결혼생활』(임경선)

책 리뷰라기엔, 나의 이야기

by 진아
대체 누가 결혼생활을 ‘안정’의 상징처럼 묘사하는가.
결혼이란 오히려 ‘불안정’의 상징이어야 마땅하다. (첫 페이지, 첫 문장)


정말이다. 결혼은 ‘불안정’의 상징이다. 나와 완전히 다른,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수십 년을 따로 산, 두 사람이 한 공간과 시간을 온전히 공유하는 것이 ‘안정’적일 리 없다. ‘안정감을 느끼기 위해서 결혼하고 싶다’는 것만큼 허황된 소망은 없다.


다만 숱한 ‘불안정’의 순간 속에서도 빛나는 순간은 있다. 나와 완전히 다른,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수십 년을 따로 산, 두 사람이 서로에게 하나뿐인 ‘보호자’가 된다는 것이다. 외부적인 시련 앞에서 두 사람은 마치 한 사람처럼 똘똘 뭉쳐 ‘한 팀’이 된다. 오롯이 내 편이라 여겨지는 완벽한 타인. 부부 관계에서 ‘안정’을 논할 수 있다면 그 지점이 아닐까 싶다.


언젠가는 남편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죽기 전에 꼭 한 번쯤은, 남편과의 결혼 생활에 대한 글을 쓰리라 다짐했다. 너무도 다른 우리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고, 함께 살기로 결정하고, 그러다 미워하고 원망하고, 그럼에도 함께 살아낸 세월에 대해서. 『평범한 결혼 생활』은 꼭 나와 같은 마음으로 쓰인 책이었다. (나의 아이템을 너무나 유명한 작가님께 빼앗긴(?) 듯한 기분에 한동안 이 책을 읽지 않았다. 결국 페이지마다 주옥같은 문장을 만나 고개를 끄덕거리며 읽고야 말았지만.)


나만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님을. 어떤 부부도 서로의 차이를 확인하고 그것을 보듬든, 포기하든, 저마다의 방법을 찾아내서 살아가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지극히 ‘평범한’ 결혼 생활임을.




서른둘이 되던 해, 11월 28일. 남편과 나는 꽃잎이 뿌려진 버진로드를 함께 걸었다. 아빠가 없던 나에게는 동반 입장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남편의 팔짱을 끼고 치렁거리는 드레스 단을 밟을까 식은땀을 흘리며 어설픈 걸음을 옮기던 그 길을 잊을 수가 없다.


남편과는 연수 프로그램에서 만나 석 달쯤 연애를 한 뒤 각자의 부모님께 인사를 드렸고, 연애 7개월쯤 결혼 날짜를 잡았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정신없이 진행된 일이었다. 그 중심에는 ‘나의 나이’가 있었다. 두 살 연하인 남편은 겨우 서른이었다. 결코 결혼을 서두를 필요가 없던 때였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지금 생각하면 결코 늦은 나이가 아닌데, 그때는 왜 그렇게도 마음이 급했는지. 주변에서 들려오던 결혼 소식과 내 나이를 들은 어른들이 건넨 “이제 시집가야지?” “아이고, 결혼할 때 됐네!” 등의 말들이 큰 몫을 했을 것이다.

남편과의 연애도 연애만으로 끝난다면, 금방 삼십 대 중반이 될 것만 같았다. (삼십 대 중반이 또 어때서!)

당시는 집에서 독립해서 혼자 산 지 5년쯤 되던 때였다. 혼자만의 공간에 대한 낭만은 식을 대로 식었고, 직사각형의 네모반듯한 원룸이 슬슬 지겨워지던 참이었다. 인적이 드물어 한낮에도 등골이 서늘해지던 골목길을 내려가, 내 방(집이 아니라 ‘방’)을 찾아가는 발걸음에도 점점 진저리가 났다. 그때의 내게는 ‘안정’이 필요했다. 안정된 공간, 안정된 시간, 안정된 사랑, 안정된 사람.


서른둘이라는 내 나이를 차치하고라도, 남편이 그런 사람일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내게 ‘안정’을 줄 사람. 공식적으로 만난 자리에서 남편의 첫인상은 까칠하고 예민했지만, 연인으로 발전하면서부터 남편은 한없이 다정한 사람이 되었다. 그것도 딱 나에게만 다정하고 친절했다. 사소하게 다른 점들도 있었지만, 연애 시절에는 ‘사소하게’에 방점이 찍혔으므로 ‘다른 점’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결혼 준비를 하면서부터는 ‘다른 점’이 눈에 도드라지기 시작했다.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에 대한 불안이었는지, 사람에 대한 불안이었는지는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언젠가부터 남편과의 결혼이 불안해졌다. 결혼식을 두 달쯤 앞두고 결혼을 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결심이 진지한 것이었는지, 그 순간의 감정이었는지, 6년쯤 지난 지금으로선 잘 모르겠다. 다만 그때는 꽤 심각했던 것 같다. 웨딩플래너에게 전화를 걸어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까지 했으니.


모든 결혼 준비를 멈추고 한동안 냉전을 겪었다. 그러나 우리 두 사람은 이미 너무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었다. 신혼집과 가전, 가구 하며, 결혼식장 예약부터 신혼여행까지. 무슨 준비를 그렇게 착착해두었는지. 모든 것들을 무를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끝내 남편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마음이 조금 가라앉은 어느 날, 그가 다른 사람과 이 모든 준비를 마치고 한 집에서 알콩달콩 살 상상을 해보았다. 상상만으로도 머리끝이 쭈뼛 섰다.


남편도 그랬던 모양이었다. 남편은 며칠 만에 반쪽이 된 얼굴로 나타나 내 손을 잡았다. 우리는 그렇게 ‘다름’을 끌어안고 살아보기로 했다. 버진로드를 걸으며, 이제 모든 일을 되돌릴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분명히 기뻤고, 꿈속을 거닐 듯 몽롱하게 행복했으나, 아주 조금 정말 아주 약간, 두려움을 느꼈다.


우리의 다름은 사소하지 않았다. 모든 생활방식이 어쩜 이렇게 다를 수 있나 싶을 만큼 달랐다. 결혼 전부터도 서로가 너무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결혼 후 서로의 차이를 확인할 때마다 뜨악한 감정을 숨길 길이 없었다. 집안 곳곳에서 우리의 다름은 충돌했다. 싸우기도 하고, 윽박지르기도 하고, 무시하기도 하며 우리는 한 공간과 시간을 공유했다.


너무도 달랐던 우리 두 사람에게도 꼭 같은 지점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갈등을 오래 두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집안의 냉기를 오래 견디질 못하니 싸움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연인이었다면 며칠을 보지 않고 살면 그뿐이었겠지만, 부부가 된 이상 그럴 수 없었다. 얼굴을 맞대고 살을 부대끼며 우리의 차이를 때론 인정, 때론 포기하게 되었다.




겨우 6년을 함께 살았다. 아니, 벌써 6년이 된 건가.


여전히 우리는 식기세척기에 그릇 넣는 방향 때문에 눈을 흘기고, 젖은 수건을 바로 세탁기에 넣지 않아서 싸운다. 그러나 대체로는 (지극히 각자의 기준에서 생각했을 때) 비효율적으로 넣은 그릇들을 꺼내 말없이 다시 넣고, 각자가 쓴 수건과 함께 상대의 수건을 세탁기에 말없이 던져 넣는다. 그리고 아이들이 일찍 잠이 든 주말 저녁, 텔레비전을 보며 회 한 접시에 소주 한 병을 나눠 마신다.


나는 술을 좋아하고 즐기지만 남편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오직 나를 위해,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술잔을 함께 기울여주는 것이다. 나 역시 텔레비전 채널을 한 군데 고정하고 진득하게 보는 것을 좋아하지만, 수시로 채널을 바꿔야 하는 남편에게 맞추어 쉼 없이 돌아가는 텔레비전 화면에 눈을 맞춘다.


우리의 결혼 생활은 지극히 평범하다. 이 평범한 결혼 생활이 가끔은 기적 같기도 하다. 이토록 다른 두 사람이 이만큼 웃으며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나도 『평범한 결혼 생활』의 작가님처럼 20년쯤 남편과 함께 살고 난 뒤, 『기적 같은 결혼 생활』이라는 책을 써봐야겠다.


애당초 결혼이라는 제도는 평범한 것이지만, 수많은 사람 중에 하필 이 사람을 만나,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결혼 생활을 유지한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니까.


어쨌든 20년씩이나 한 남자와 결혼생활을 했으니, 이제는 그에 대해 한두 마디쯤은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7쪽)

그렇다 하더라도 지난 20년간 각자 인격 수양이 얼마나 되었는지를 객관적으로 가늠하기는 어렵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참 변하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지만 그래도 하나 분명한 것은 ‘아내’나 ‘남편’이라는 역할을 연기하다 보면 나날이 요령이 생긴다는 것이다. 연기를 하는 것이 거짓된 행동이라고 비방하고 싶진 않다. 그라마나 소설을 보면 무거운 문제에 대해 솔직하게 고백하면서 서로의 사랑이 더 깊어지는 전개가 간혹 나오던데, 현실에서는 반대인 경우가 더 많다. 말을 아끼는 어른스러움이 때로는 관계를 유지시켜주고, 상대를 위한 섬세한 거짓 안에 정성 어린 마음 씀씀이가 존재하기도 한다. (12쪽)

그 모습이 나는 못마땅해도, ‘자연인’ 상태는 그를 행복하게 하는 것 같다. 집은 그 집에 사는 모든 구성원들에게 편해야 하는 곳이고 상대가 행복한 것이 우선이기에 놔두는 것이 옳다. 내가 보기 싫다고 억지로 옷을 입으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다. (28쪽)

하지만 결혼한 상태에서 이별은 훨씬 더 어렵다. 이따금 결혼 후 몇 년이 지난 여자들에게서 ‘남편을 봐도 더 이상 설레지 않아요’ 같은 이야기를 듣는다. 서로 매일 얼굴 보며 사는 부부 사이에 설렘이 없어지는 건 아마도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네가 설레지 않는 것처럼, 남편도 너를 보며 설레는 일은 없을 것 같다’고 나는 다정하게 알려준다.(77쪽)

아무 생각조차 나지 않을 만큼 결혼이 나를 압도한 이유는, 그것이 내가 누군가로부터 격하게 사랑받고 있다는 증명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한 순간의 착각이라 해도, 나중에 오판으로 결론 난다 해도 말이다. 100가지 합리적인 이유를 들어서 결혼의 불리함과 비합리성을 설득시킨다 해도, 망할 줄 알면서도 뛰어드는 어떤 맹목적인 마음에, 나는 인생에서 누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귀한 찰나를 본다. (108쪽)

나는 속으로 툴툴거리며 몸을 돌려 요요처럼 남편을 향해 다시 달려간다. 남편에게 가 닿으면 또 한동안 보조를 맞추며 걷지만 이내 또 달리고 싶은 욕구를 참지 못한다. 이제 말을 하지 않아도 남편은 눈짓으로 '어서 가'라고 한다. 그렇게 그의 곁을 벗어났다가 도중에 잘 있는지 확인 후 '하는 수 없지'라며 돌아오고, 잠시 나란히 걷다가 또다시 그를 혼자 두고 나 혼자 스프링처럼 튕겨나가기를 반복한다. 내가 이렇게 오락가락 혼자 분주한 사이, 남편은 제 보폭으로 묵묵히 걸음을 옮기고 있을 뿐이다. 이것은 마치 우리 결혼생활의 은유 같다. (106쪽)

결혼은 참으로 복잡하게 행복하고 복잡하게 불행하다.(1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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