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라기엔, 나의 이야기
대체 누가 결혼생활을 ‘안정’의 상징처럼 묘사하는가.
결혼이란 오히려 ‘불안정’의 상징이어야 마땅하다. (첫 페이지, 첫 문장)
어쨌든 20년씩이나 한 남자와 결혼생활을 했으니, 이제는 그에 대해 한두 마디쯤은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7쪽)
그렇다 하더라도 지난 20년간 각자 인격 수양이 얼마나 되었는지를 객관적으로 가늠하기는 어렵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참 변하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지만 그래도 하나 분명한 것은 ‘아내’나 ‘남편’이라는 역할을 연기하다 보면 나날이 요령이 생긴다는 것이다. 연기를 하는 것이 거짓된 행동이라고 비방하고 싶진 않다. 그라마나 소설을 보면 무거운 문제에 대해 솔직하게 고백하면서 서로의 사랑이 더 깊어지는 전개가 간혹 나오던데, 현실에서는 반대인 경우가 더 많다. 말을 아끼는 어른스러움이 때로는 관계를 유지시켜주고, 상대를 위한 섬세한 거짓 안에 정성 어린 마음 씀씀이가 존재하기도 한다. (12쪽)
그 모습이 나는 못마땅해도, ‘자연인’ 상태는 그를 행복하게 하는 것 같다. 집은 그 집에 사는 모든 구성원들에게 편해야 하는 곳이고 상대가 행복한 것이 우선이기에 놔두는 것이 옳다. 내가 보기 싫다고 억지로 옷을 입으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다. (28쪽)
하지만 결혼한 상태에서 이별은 훨씬 더 어렵다. 이따금 결혼 후 몇 년이 지난 여자들에게서 ‘남편을 봐도 더 이상 설레지 않아요’ 같은 이야기를 듣는다. 서로 매일 얼굴 보며 사는 부부 사이에 설렘이 없어지는 건 아마도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네가 설레지 않는 것처럼, 남편도 너를 보며 설레는 일은 없을 것 같다’고 나는 다정하게 알려준다.(77쪽)
아무 생각조차 나지 않을 만큼 결혼이 나를 압도한 이유는, 그것이 내가 누군가로부터 격하게 사랑받고 있다는 증명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한 순간의 착각이라 해도, 나중에 오판으로 결론 난다 해도 말이다. 100가지 합리적인 이유를 들어서 결혼의 불리함과 비합리성을 설득시킨다 해도, 망할 줄 알면서도 뛰어드는 어떤 맹목적인 마음에, 나는 인생에서 누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귀한 찰나를 본다. (108쪽)
나는 속으로 툴툴거리며 몸을 돌려 요요처럼 남편을 향해 다시 달려간다. 남편에게 가 닿으면 또 한동안 보조를 맞추며 걷지만 이내 또 달리고 싶은 욕구를 참지 못한다. 이제 말을 하지 않아도 남편은 눈짓으로 '어서 가'라고 한다. 그렇게 그의 곁을 벗어났다가 도중에 잘 있는지 확인 후 '하는 수 없지'라며 돌아오고, 잠시 나란히 걷다가 또다시 그를 혼자 두고 나 혼자 스프링처럼 튕겨나가기를 반복한다. 내가 이렇게 오락가락 혼자 분주한 사이, 남편은 제 보폭으로 묵묵히 걸음을 옮기고 있을 뿐이다. 이것은 마치 우리 결혼생활의 은유 같다. (106쪽)
결혼은 참으로 복잡하게 행복하고 복잡하게 불행하다.(12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