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트(티앤씨 재단)

by 진아

지금을 혐오의 시대라고 한다면, 과한 표현일까. 가끔 인터넷을 보다가 입에 담기도 끔찍한 '혐오'표현을 마주할 때면 내 이야기가 아닌데도 등골이 오싹할 때가 있다. 문제는 그런 표현들을 너무도 자주 마주하게 된다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혐오'라는 단어를 일상적으로 쓰고 듣게 되었다. 30대 후반인 나의 학창 시절까지만 해도 일상에서 혐오라는 단어를 사용할 일은 거의 없었다. 여중생 혹은 여고생에게 혐오스러운 대상이라고 해봐야, 길 가다 마주치던 바바리맨이나 다리가 여럿 달린 낯선 벌레 정도가 전부였다.


지금은 혐오스러운 것을 넘어 '극혐'이라는 표현도 서슴없이 사용하는 시대가 되었다. 자신과 조금 다른 이에게도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대상에도, 이도 저도 아니고 그저 조금 싫은 누구 혹은 무언가에도 너무나 쉽게 '극혐'이라는 표현을 쓴다.


이 책은 혐오가 만연한 세상에서 성찰과 반성, 극복을 꿈꾸는 이들의 목소리다. 심리학, 법학, 문화인류학, 미디어학, 역사학, 철학 등 여러 분야의 학자들이 들려주는 '혐오'의 역사와 배경 그리고 현실에 관한 이야기이다. 홀로코스트, 십자군, 마녀사냥, 이슬람포비아, 인종주의, 악성 댓글과 가짜 뉴스까지. 혐오의 역사를 고찰하고, 혐오를 넘어 공감과 화해의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을 모색한다.


강연을 그대로 옮긴 글이라 이해가 쉽고 읽기에 부담이 없었다. 무엇보다 일상적으로 만나는 혐오현상에 대해 보다 깊은 성찰을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혐오는 나쁘다, 혐오 표현을 해서는 안된다 등의 당위적인 메시지보다 혐오가 생산되고 반복되는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혐오'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볼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특히 의미 있었던 깨달음은 '공감'과 '혐오'에 대한 것이었다. 이제껏 공감의 반대편에 혐오가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내집단에 대한 과잉 공감이 외집단에 대한 혐오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강연에서 언급되는 예들을 읽으며 그동안 나의 공감이 얼마나 편협했는지, 공감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이들을 혐오해왔는지 깨달았다. 섬뜩할 만큼 부끄러웠다.


오래 기억할 문장들을 남기며, 혐오를 생각한다. 부디 이러한 노력들로 혐오라는 단어가 익숙한 세대가 막을 내리기를. 혐오라는 단어가 어색하고 낯선 세대에서 내 아이들이 살아갈 수 있기를.


우리 모두는 타인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려고 하고 또 그걸 위해서 공감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 공감이 자기 집단에게만 편향되게 되면 그것의 부작용으로 혐오가 나타날 수 있다는, 조금은 역설적인 가능성을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45쪽)

'내가 속한 집단', 또는 '우리'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질적인 다른 집단을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는 논리로 연결됩니다. 이질적인 집단이나 편견을 가지고 있던 집단에 대한 거부감, 적대심을 이용하여 그들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현상이 확산됩니다. 동료 시민이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겁니다.(59쪽)

이렇게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여러 개의 정체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고 그러한 속성이 때로는 주류에 속하고 때로는 비주류에 속한다는 점을 인지한다면, 내가 알지 못하고 만나본 적 없는 사람이 특정 집단에 속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에 대해서 편견을 갖고 그 편견에 기반해 혐오표현을 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되고 위험한 일인지 기억하는 것이 좀 더 쉽지 않을까요?(86쪽)

역사 속의 이런 혐오들을 통해 우리는 '혐오는 유통기한이 없으며, 과거에 일어났던 문제를 제대로 반성하고 돌아보지 않으면 반복될 수 있다'라는 점을 함께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2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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