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육아 업데이트』(홍석준)

by 진아
자신이 얼마나 좋은 아빠인지 등급으로 나눌 수 있다면 당신은 어디쯤 위치한다고 생각하는가?


책의 첫 문장을 읽자마자 남편의 대답이 환청처럼 들렸다.


“나 정도면 진짜 좋은 아빠지! 나 같은 아빠 없다. 진짜.”


너무 자주 들어서 익숙하기까지 한 말이다. 남편은 실제로 육아에 많이 참여하고 상당히 많은 시간을 아이들에게 할애한다. 회식이 거의 없고 정시 퇴근이 일반적인 직장 분위기와, 본인 스스로도 회사에서 높은 자리에 오르고자 하는 뜻이 없는 관계로 근무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 아이들의 등원은 못 시키더라도 하원은 일주일에 한두 번씩 꼭 하고, 하원 후에는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함께 노는 동네 유일한 아빠이다. 주말이라고 개인 약속을 잡는 일도 없고, 대부분의 시간을 아이들과 이번 주에는 무엇을 하며 보낼까 고민하는 사람이다.

이쯤 되면 남편은 스스로를 정말 ‘좋은 아빠’라고 말할 만한 것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동네 엄마들에게 나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아이들의 친구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우리 애들이 사랑이 아빠는 사랑이랑 맨날 놀아준다고 부럽대요.”, “사랑이 엄마는 좋겠다. 아빠가 저렇게 애들하고 잘 놀아주어서.”라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듣는다. (가끔, 아빠가 아이들과 놀이터에 노는 이 당연한 현상이 왜 부러움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씁쓸한 기분이 들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이렇게 육아가 외로운지. 내가 진 육아의 부담은 왜 이토록 무겁게 느껴지는지. 『아빠 육아 업데이트』를 보며 알았다. 남편은 여전히 육아의 언저리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을.



남편이 육아에서 스스로 하는 일은 ‘밖에서 아이들과 놀아주기’이다. 남편의 머릿속에 있는 좋은 아빠란, 아이들과 시간을 (양적으로) 많이 보내고, 함께 공을 차거나 킥보드 대결을 하는 등 엄마인 내가 충족해주지 못하는 신체 활동을 많이 해주는 사람인 것 같다. (‘좋은 아빠란 어떤 아빠일까’ 이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지만, 남편은 이런 이야기 자체를 낯 간지러워한다.)


안타까운 점은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 신체활동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과 보내는 시간이 양적으로는 차고 넘칠지언정 질적으로는 현저히 부족하다는 것이다.(실제로 아이들과 함께 하는 동안 남편의 눈은 상당 시간 휴대전화를 보고 있다.) 그렇다 보니 남편이 육아에 쏟는 시간에 비해 아이들과의 애착이 끈끈하지 않다. 또한 아이들을 키우는 일에 ‘밖에서 놀아주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그리 크지 않다 보니, 엄마이자 공동 양육자인 나에게는 큰 힘이 되지 않는다.

아이들과 남편이 바깥에서 신나게 놀다가 들어오면 두 아이를 씻기는 일, 어수선한 욕실을 정돈하는 일, 식사를 준비하고 먹이는 일, 새 옷을 입히는 일, 입고 놀았던 옷을 세탁해서 말끔히 개어두는 일, 책을 읽어주는 일, 재우는 일, 각종 영양제를 챙겨 먹이는 일, 어질러진 집안을 정리하는 일, 아픈 날에는 병원을 데려가고 처방된 약을 먹이는 일, 아이들의 어린이집 준비물을 확인하고, 보내달라는 것들을 보내주고 각종 서류를 작성하는 일, 때마다 아이들의 옷과 신발 사이즈를 하나씩 올려서 새로 구입하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장을 정리하는 일, 매일 아이들의 어린이집 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선생님들과 나누고, 아이들과 그날 있었던 일을 공유하는 , 그 외 보이지 않는 집안일까지. 그 모두가 내 몫이다. (쓰는 데도 숨이 찬다.) 물론 남편에게 무엇을 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하고 그러면 또 잘 들어주기도 하지만, 매번 부탁을 해야 한다는 게 지쳐서 그냥 내가 하고 말지 한 것이 여기까지 와버렸다.


이토록 많은 순간에 남편은 어디 있을까. 늘 집안에 있긴 하다. 앞서 말했듯이 양적으로는 충분한 시간을 공유하기 때문에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일을 하고 있기도 하다. 남편은 지금의 직장을 평생직장이라고 생각하지 않기에 여러 방면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중이다. 남편의 논리를 빌리자면, ‘게임을 하거나 놀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지척에 남편이 있고, 누군가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아이가 둘이나 있는데 육아의 대부분이 내 몫이라니. 가끔 화가 나다 못해 억울했다. 나열한 일이 육아의 전부도 아니지만, 어쨌든 그중에서 몇 개쯤은 내가 일일이 말하지 않더라도 척척 해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아무 말 하지 않는 것은 나는 육아휴직 중이고 남편은 직장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나 스스로도 내가 휴직자이고, 엄마이니 내가 온전히 육아를 다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을 해온 것이다. 어쩌면 빈틈없이 해내는 내 곁에서 남편은 설자리를 잃은 것일지도 몰랐다. 도와주는 일에 익숙해지면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필요가 없어졌는지도.


『아빠 육아 업데이트』의 저자이자 브런치 작가님이신 초록Joon님과 남편의 차이점은 아이의 ‘주양육자’가 되어 보았느냐 아니냐의 차이였다. 남편도 육아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하고 있기는 하지만, 지금껏 단 한 번도 ‘주’가 되어본 적은 없었다. 언제나 내가 ‘주’였고, 자동으로 남편은 ‘부’였다. 지난 5년간 철저히 그랬다. 어쩌다 내가 자리를 비우더라도. 그건 '임시' 양육자의 느낌이었지 결코 ‘주’ 양육자의 느낌까지 가닿지는 못했다.


초록Joon 작가님 역시 그랬다고 한다. 이전까지는 그저 보통의 아빠(여기에서 ‘보통’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씁쓸할 따름이다)들처럼 육아에서 한 발쯤 물러서 있었다. 나름대로 한다고 했지만 그것은 철저히 ‘도와주는’ 입장이었다. 아주 우연한 계기로 아이를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보내게 되면서 ‘공동육아’에 대해 인식하게 되었고, 육아휴직을 감행하며 ‘주양육자’가 되어보고서야 진짜 ‘아빠’가 되는 길을 조금씩 찾아가고 있었다.

아이와 24시간을 함께 하면서 아이의 성장을 마주하는 일, 이전에는 몰랐던 아내의 ‘엄마로서의 삶’을 이해하는 일, 아내와 동등한 관계에서 아이와 가족의 미래를 고민하는 일. 그 모든 것은 작가님이 ‘주양육자’가 되어 본 이후에 일어난 변화였다.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육아휴직을 하고, 아이를 경쟁적이지 않은 환경에서 키우고자 호주로 떠나면서 작가님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변화의 방향은 밝고 건강했으며, 변화의 결실은 단단하고 행복해 보였다.


읽는 내내, 가장 자주 느낀 감정은 ‘부러움’이었다. 아마도 현재의 내가 철저히 ‘주양육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전업주부이자, 머지않은 미래에 워킹맘이 될 엄마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빠가 이런 역할을 해준다면, 이런 고민을 해준다면, 이렇게 함께 대화할 수 있다면.’ 그런 생각이 자꾸 들어서 처음 얼마간은 책을 읽기가 쉽지 않았다. (자꾸만 남편이 못마땅해지는 부작용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의 목적을 그곳에 두지는 않으셨을 터. 페이지를 넘길수록 작가님의 마음이 느껴졌다. 작가님 스스로도 이 책을 읽는 이들의 대부분은 아마도 ‘엄마’ 일 것이라고 짐작하셨다. 그럼에도 이 책을 쓴 이유는 엄마들이 아빠들을 이 책 앞으로 불러오기를 바라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함께 하는 육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좋은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며. 최선을 다해 아빠를 설득해보자고.


남편을 이 책 앞으로 불러오는 데 성공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노력은 해볼 것이다.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고민하고, 한 발 먼저 움직인 아빠가 이 책 안에 있다고. 만약 당신이 이 책을 통해 ‘아빠’라는 존재와 역할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면, 끝내 가장 행복해질 사람은 당신 자신이 될 것이라고. 나는 좋은 아빠, 진짜 아빠, 그리고 나의 육아 동지로 한 걸음 나아갈 당신을 진심으로 응원한다고.



‘워킹맘’이라는 말이 있다. 초록색 창에 검색하면 바로 그 뜻을 명확하게 알려준다. 워킹맘,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여성. 더할 나위 없이 깔끔한 설명이다. 검색 후에는 연관 검색어에 상대되는 말 ‘워킹대드’가 나타나면 클릭 한 번으로 뜻을 찾으려 했으나 나오지 않는다. 이상하다. 아주 귀찮지만 다시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려 본다. <워킹데드:좀비로 가득한 세상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사투를 드린 드라마>. 눈을 의심하게 된다. 오탈자를 자동으로 인식하여 적절하게 고쳐서 찾아주는 기능에 의해 ‘워킹데드’를 검색한 결과가 나왔다. 이게 워킹대드의 적나라한 현주소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남성의 존재가 좀비의 존재보다도 더 비현실적이라는 게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35쪽)

사람이 변하는 지점은 위기를 느꼈을 때다. 위기를 느끼기 위해서는 때론 자극적인 방식이 필요하다. 난 의식의 변화 없이 절대 이 편함을 놓치고 싶지 않을 대부분의 아빠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싶다. 그들이 여러 이유는 대며 피해왔던 질문들을 던지며 아빠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하고 싶다. 아빠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그런 마음속 깊이 있는 이야기 말이다. (157쪽)

아빠가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아빠가 되고 싶은가?
아이가 어떻게 자라길 바라는가?
아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아이와 어떤 관계를 맺기 원하는가?
나와 내 아이가 지금 이대로 지내도 괜찮은가?
우리는 자신에게 이런 질문들을 건네며 시작해야 한다. (159쪽)

더 이상 원망만 하지 말자. 더 이상 미루지 말자. 그리고 더 이상 모른 척하지 말자. 우리부터 변해야 우리 다음도 변한다. 여기서 우리는 이곳에 있는 모든 ‘우리’다. 결국 이 사회의 변화는 우리 모두가 해야 한다. 모두의 관심과 행동이 필요하다. 우리가 아이에게서 아빠의 자리를 되찾아 줄 수 있다. 이 책은 ‘부모만을 위한 육아서’에 그치지 않고 ‘우리 모두를 위한 교양서’를 꿈꾼다. 사회를 바꾸는데 필요한 모두를 위한 책이 되길 바란다. 많이 읽히고 많이 불편하게 만들어야 한다. 변화는 그렇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194쪽)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