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처음으로 "엄마는 꿈이 뭐야?"라고 물었다.

by 진아

“엄마, 엄마는 꿈이 뭐야?”

“엄마는 꿈을 이뤘는데? 엄마 선생님이 됐잖아.”

“아니, 그건 지금이고. 나중에 더 어른되면 뭐가 되고 싶냐구.”

“아.. 음..”


드디어 아이가 ‘꿈’이라는 단어를 인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에게 ‘꿈’을 묻는다.



얼마 전 처음으로 아이에게 ‘꿈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던 날, 금세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아이는 나의 대답을 반드시 듣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동그란 눈망울에 가득 담아 나를 바라보았다. 일단 뭐라도 대답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 엄마는, 엄마는 있잖아. 아! 엄마는 서점 사장님이 되고 싶어.”

“아, 엄마는 책 좋아하니까?”

“응, 서점 사장님이 되어서 읽고 싶은 책도 마음껏 읽고 사람들한테 엄마가 읽은 책도 소개해주고 그러고 싶어. 그럼 사랑이는 꿈이 뭔데?”

“나는 구급대원이 될 거야. 경찰관도 될 거고. 소방관도 될 거야. 아, 사육사도 될 거야.”

“우와, 사랑이는 꿈이 많네. 세상을 지키는 일은 사랑이가 다 하겠는데?”



아이는 내 대답이 썩 마음에 들었는지 씩 웃더니 아빠에게도 꿈을 물어보겠다며 서재로 달려갔다. 아이와 꿈 이야기를 나눈 이후로, 한동안 잊고 있던 ‘꿈’이라는 단어가 자주 떠올랐다. 학창 시절 내내, 때론 ‘꿈’으로, 때론 ‘장래희망’으로, 때론 ‘희망 전공’으로 나를 울고 웃게 하던 그 단어가.



어린 시절 나는 꿈 많은 소녀였다. 아주 어렸을 때는 기억나지 않지만 초등학교 고학년쯤부터는 변호사, 외교관, 라디오 작가, 선생님 등 해마다 새로운 꿈을 꾸었다. 일관성이라고는 없는 직업들 사이를 오가며 꿈을 이룬 내 모습을 어떤 ‘직업인’의 모습으로 떠올리곤 했다.


수능 시험을 치고 대입원서를 쓸 때, 대학을 결정하는 것은 너무도 쉬웠다. 수능 공부의 목표 자체가 ‘국립대학’ 진학이었기 때문이다. (국립대학의 학비가 사립대학의 절반도 되지 않았을뿐더러, 장학금 제도도 사립대학보다 훨씬 많았다.) 다행히 수능 성적이 나쁘지 않아 국립대학에는 입학할 수 있게 되었는데 문제는 전공을 결정하는 것이었다. 그토록 많던 꿈은 어디로 사라지고, 내 앞에 놓인 것은 성적표에 선명히 새겨진 세 자리 숫자뿐이었다. 그 숫자에 맞추어 전공을 선택했다. 그나마도 국어 공부에는 자신이 있었고, 학창 시절 내내 국어 성적은 그리 나쁘지 않았기에 국어국문과를 갔다.


취업이 안 되는 과라고 했고, 비인기 학과라고 했다. 그럼에도 전공 공부가 즐거웠고 덕분에 공부의 참맛을 깨치며 즐거운 대학 생활을 했다. 국문과를 졸업하고는 할 일이 없다고 해서 학자금 대출을 받아 교육대학원에 갔고, 거기서 국어교육을 전공한 뒤 임용 시험을 쳤다.


꿈을 이루기 위한 시간이었다기보다는 목표에 다다르기 위한 시간이었다. 꿈과 목표, 두 단어는 비슷한 듯했지만 분명히 달랐다. 목표는 꿈보다 덜 낭만적이었고, 더 현실적이었다.


다행히 선생님이 되었고, 목표에 도달했다. 꿈을 이루었다는 낭만적인 기쁨은 없었지만, 목표에 도달했다는 현실적인 뿌듯함은 차고 넘쳤다. 감사하게도 나와 선생님이라는 직업은 꽤 잘 맞았다. 아이들과의 관계도 괜찮았고 수업도 즐거웠다. 어떤 해에는 조금 힘든 아이들과 힘든 수업을 하기도 했으나, 대체로는 좋은 날들이었다.


선생님이 된 이후로, 나의 다음 꿈(어쩌면 목표)은 화목하고 안정된 가정을 이루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결혼 6년 차이자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둘째를 임신했을 때, 둘째의 성별이 딸인 것을 확인하자마자 나는 나의 모든 꿈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다. 안정적인 직장, 가정적인 남편, 첫째 아들, 둘째 딸까지. 더는 바랄 것이 없다고 생각했고 그날 이후로 내게서 ‘꿈’은 수면 중에 떠오르는 무의식의 한 장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 되었다.


처음 아이에게 꿈이 뭐냐는 질문을 받고 급한 마음에 ‘서점 사장님’이 되고 싶다고 말했지만, 그 뒤로 계속 아이의 질문이 떠올랐다. 한 번도 서점을 운영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으면서 아이에게 거짓말을 했다. 더불어 언젠가부터 꿈을 떠올리지 않고 살아온 것이 못내 부끄러웠다. 하지만 이제와 새삼 ‘꿈’을 떠올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즉흥적이고 계산 없는 아이와 달리, 나는 꿈을 꾸면서도 계산기를 두드렸다. 현실적이지 않은 일을 꿈이라 말하는 것이 왠지 민망했고, 이왕이면 제대로 된 꿈을 꾸어야겠다는 허황한 생각도 했다.




어젯밤 자려고 누워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엄마, 엄마는 꿈이 뭐야?”

“엄마? 엄마 서점 사장님 되고 싶다고 했잖아.”(또 거짓말)

“아니, 아니, 서점 사장님 되고 나면 또 뭐가 되고 싶은데?”

(으악, 거기까지 또 생각 안 해봤는데……. 서점 사장님도 사실은 꿈이 아닌데…….)

“음... 음... 어... 어... 엄마는 멋지고 건강한 할머니가 되고 싶어.”

“잉? 할머니?”

“응, 엄마는 점점 나이가 될 거고 결국 할머니가 될 텐데, 멋지고 건강한 할머니가 되고 싶어.”(좋았어. 멋진 대답이었어!)

“아니, 말고! 할머니 말고 어떤 거 하고 싶냐고.”

(아, 진짜...)

“음... 어... 엄마는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 평생.”

“작가?”

“응, 작가”

“작가는 벌써 됐잖아. 그니까 작가 말고!”

(하... 이 녀석 정말...)

“그럼... 엄마는... 아!!! 그래!! 엄마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싶어!”

“그게 뭐야?”

“응, 엄마가 작가가 되긴 했는데, 엄마 책이 그렇게 많이 팔리지는 않았거든. 베스트셀러는 많은 사람들이 사서 읽은 책이야. 엄마는 엄마가 쓴 책을 많은 사람들이 읽고 좋아해 줬으면 좋겠어. 엄마 꿈은 베스트셀러 작가야.”

“아, 그렇구나.”



아이는 얼마쯤 뒤척이다 잠이 들었다. 너무 피곤한 밤이었는데,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말을 내뱉은 이후로 이상하게 잠이 달아난 기분이었다. 아이들 재울 때 같이 자려고 마음을 먹고 들어왔었는데, 묘하게 달라진 공기가 느껴졌다. 사실 그 말을 내뱉고 갑자기 너무 들떠서 아이에게 꿈을 되묻는 것도 잊어버렸다. 한 번도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아니 그렇다고 여겼는데 진심은 아니었던가 보다.


꿈을 묻고 또 묻는 아이 덕에 오랜만에 꿈을 생각했다. 여전히 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고 생각했는데, 대답을 듣기까지는 잠들지 않으려는 아이 덕분에 꿈을 답했다. 그러면서 나도 몰랐던 나의 꿈이 수면 위로 두둥실 떠올랐다.



많은 사람이 읽어주고 사랑해줄 글을 쓰고 싶다.

작가로 불리고 싶고, 작가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싶다.

오래도록 쓰고 또 쓰고 싶다.



서른여덟, 이토록 낭만적인 늦가을 밤에.

나는 다시, 아니 어쩌면 처음으로 진짜 ‘꿈’을 꾼다.

현실적인 ‘목표’가 아니라 오래 품고 살 낭만 가득한 ‘꿈’을.




더하기.


아들아, 멋지고 건강한 할머니도 꿈이 될 수 있단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엄마가 가장 궁극적으로 원하고 바라는 것일지도 모르는데... 이다음에 네가 다시 꿈을 물어보면 멋지고 건강한 할머니도 꿈이 될 수 있다고 말해줘야겠다. 그리고 이 엄마는 멋지고 건강한 할머니가 되어서도 열심히 쓰고 또 쓰는 삶을 살 거라는 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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