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말에서 선명히 살아있는 ‘나’를 발견한다

by 진아

“엄마, 엄마!!”

“응?”

“내가, 내가 언니 되면 맛있는 유부초밥 해줄게.”

“아, 진짜?”

“엄마, 감동! 고마워.”


요거트도 사준다던 너


리액션이 썩 마음에 들었는지, 씨익 웃으며 눈을 맞추는 봄이. 요즘 들어 봄이는 ‘엄마, 내가 언니 되면’으로 시작하는 말을 자주 한다.


(식사 준비 중인 내 곁에 서서) “엄마, 내가 언니 되면 새우요리 해줄게.”

(제 옷을 고르고 있는 내 곁에 서서) “엄마, 내가 언니 되면 엄마 예쁜 옷 사줄게.”

(외출을 준비하며 가방을 챙기는 내 곁에 서서) "엄마, 내가 나중에 분홍색 가방 사줄게."

(책을 읽고 있는 내 곁에 서서) “엄마, 내가 언니 되면 글자 써줄게.”

“엄마, 내가 언니 되면 …….”

“엄마, 내가 언니 되면 …….”


봄이가 언니가 되어 하고 싶은 일들은 대체로 나를 향해 있다. 나의 물건을 사주고, 나의 식사를 준비해주고,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함께 해주고…….

아이가 내게서 분리되어 독립할 날을 떠올리며, 많은 것을 원하지 말자고 다짐해왔다. 너와 나는 다른 사람이고, 우리는 끝내 저마다의 삶을 꾸릴 것이며, 그것에 대해 옳다 그르다 판단하지 말자고. 내가 네게 원하는 것은 오직, ‘너’의 삶을 잘 살아가는 것이라고. 나에 대한 짐을 지지 않고, 너는 다만 너로서 살아가길 바란다고.


그렇지만 아직은, (어쩌면 조금 더 오랫동안은) 아이에게 가장 큰 소망이 엄마인 나인가 보다. 아이의 모든 미래에는 내가 있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 제게 어떤 능력이 생기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들이 모두 나를 위한 일이라니.


그러지 말자 해놓고는, 아이의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아이가 나를 위해 마음을 쏟을 만큼 자란 어느 날, 그날을 떠올릴 때마다 일렁이는 마음을 주체할 길이 없다. 그때를 위해 내가 할 일은, 완벽한 리액션을 준비해두는 일이랄까.




그래서였다



언젠가부터 장바구니에 내가 없다
아이들이 먹을 것
아이들이 입을 것
아이들이 갖고 놀 것
온통 아이들로만 가득하다


애써 밀어낸 건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나는 저만치 밀려나 있고
아이들은 이만치 들어차 있다

참 이상하다
그래도 별 허전치가 않다


엄마, 나는 엄마가 우주의 우주만큼 좋아요
동그란 눈동자 검게 빛내며
네가 건넨 수줍은 고백
그래서였구나

내가 저만치 밀려난 게 아니라
온전히 네게로 밀려간 거였구나




예전에 써두었던 시를 다시 꺼내본다. 사랑이에게 "엄마가 우주의 우주만큼 좋아요"라는 고백을 듣고 썼던 시를. 봄이의 "엄마, 내가 언니 되면."으로 이어지는 말을 들으며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긴다.


엄마가 되어 잠시 나를 잃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아이의 말에는 너무나 선명히 살아 있는 내가 있다.


나를 잃은 것이 아니라, 너희들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고 있었구나.

너희 둘의 엄마로, 그리고 누구보다 소중한 나로.

사랑이가 '엄마 선물'이라며 건넨 꽃 한 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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