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조금 더 아가였을 때 찍어둔 사진과 동영상을 보았다. 휴대전화의 저장공간이 가득 찼다고 해서 외장 하드로 옮기려고 사진첩을 열었다가 속절없이 쏟아지는 기억들을 마주하고야 말았다.
어쩜, 우리 사랑이가 이렇게 아가였구나.
어머, 봄이 속싸개 하고 꼬물거리고 있네.
사랑이가 봄이를 이렇게 예뻐했었구나.
둘이서 이런 춤도 췄었지.
아, 봄이가 떼 부리고 울 때 이렇게 했었지.
맞다! 사랑이가 좋아하던 놀이가 이거였었지.
우리가 여기도 같이 갔었구나.
어머, 아이들한테 말하는 내 목소리가 저렇게 다정했다고?
지나간 것은 언제나 한 뼘쯤 낯설고 한 뼘쯤 그립다. 이런 때가 있었네. 이런 때도 있었지. 어떤 장면은 기억 저편에 아스라이 사라졌고, 어떤 장면은 여전히 팔딱거리며 살아있었다. 모두 기억할 수 없어서 찍고 쓰며 남겨둔 기록들을 한참을 보고 또 보았다.
이미 지나간 시간. 결코 돌아갈 수 없는 시간. 그 시간이 살아나 오늘의 일부를 채웠다.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 예뻐서, 못 견디게 사랑스러워서. 그래서였을까. 눈물이 났다. 눈물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흘러간 시간이 그리워서’ 흘리는 눈물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2017년 3월 24일. 사랑이가 태어났다. 그날부터 2021.10.25일. 오늘까지, 4년 7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에 봄이가 태어났고, 덕분에 꿈에 그리던 아들딸을 하나씩 둔 엄마가 되었다. 물론 지난 시간이 모두 행복하지는 않았다. 여전히 아이들과 보내는 일상의 순간에는 버겁고 괴로운 일도 많다. 화가 나고 짜증이 나고 도망치고 싶은 순간들도.
이상한 일이다. 분명히 오늘 아침까지도 투닥거리는 두 아이에게 쓴소리를 했고, 아이들은 “엄마, 나빠!!!”라며 서운함을 표했다. 그런 아이들을 먹이고 씻기고 입히며, 잠시라도 좋으니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지금 이 감정은 무엇인지. 잠시 떨어져 있는 아이들이 이토록 그립다니. 아이들의 살 냄새가 떠올라 뭉클하다니.
아이들은 태어나 만 3년간 저희들이 할 수 있는 효도를 다 한다고 한다. 그 시간의 기억으로 부모는 평생 아이들을 키워낼 수 있는 거라고. 그렇다면 나의 아이들은 이미 제 몫의 효도를 다 했다. 충분히 사랑스러웠고, 더없이 아름다웠다. 사느라 바빠서 아이들이 남겨둔 사랑을 기억 저편에 묻어두었을 뿐, 그 사랑의 기억은 여전히 유효했다.
태어나 첫 3년을 무사히 보낸 두 아이에게 감사한다. 그들의 모든 ‘첫’ 순간에 내가 있었음에도. 함께 웃고 울며 살 부대끼며 살아온 지난 모든 시간에도.
햇살이 눈 부셔서 그런가.
가을바람이 불어서 그런가.
자꾸만 지나간 것이 그립다.
아차. 이 시간도 금세 지나가 버릴 것이다. 아마도 일 년 후의 나는 오늘의 나를 무한히 그리워할지도 모른다. 아니, 필히 그리워할 것이다. 오늘 하루를 더 아름답게 살아내야 할 명분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