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식사 중이었다. 오늘따라 이 아이가 내 아이라는 사실이 너무 고마웠다. 예민하고 까칠한, 그러나 세상 누구보다 예쁘게 웃는 이 아이가, 많고 많은 사람 중에 딱 내게 와주어서 고마웠다. 고맙다고 했더니, 아이는 씩 웃으며 ‘온 마을을 돌아서 엄마를 찾아냈다’고 했다. 다섯 살짜리 아이의 말을 듣다가 울컥하고 말았다.
흔히들 ‘임신을 했다’는 표현과 ‘아이를 가졌다’라는 표현을 동시에 쓴다. 나 역시 뱃속에 새로운 생명이 움트고, 점점 사람의 모습으로 자라나는 동안 ‘아이를 가졌다’고 생각했다. 뱃속의 아이가 마치 나의 소유인 듯.
돌이켜 보면 나는 한 번도 아이를 ‘가져 본’ 적이 없었다. 뱃속에서부터 그랬다.
비록 내 안에서 생을 틔운 아이였지만, 아이는 내 뜻대로 뿌리를 내리지 않았다. 생각지 못한 시기에 나를 ‘찾아’ 왔고, 예측할 수 없던 지독한 입덧으로 자신의 존재를 끝없이 확인시켰다. 예상한 속도대로 자라지 않았고, ‘이쯤이면 세상에 나올 준비를 해야 할 텐데……’라고 생각했을 때 아이는 여전히 거꾸로 앉아 나의 애를 태웠다. (첫째는 막달 직전까지 역아-뱃속에서 머리가 아래로 발이 위로 올라가 있어야 자연분만 시 안전하게 나올 수 있는데, 역아는 머리가 위로 발이 아래로 올라가 있어서 자연분만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였다.)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끝조차 가늠할 수 없었던 진통 끝에 세상에 나왔고, 이후에도 먹는 것, 자는 것, 싸는 것 무엇하나 아이는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한참 머리가 자라고 생각이 크는 요즘, 아이는 여전히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기준이 엄격하고 여러모로 완벽주의자에 가까운 나인지라, 벌써부터 아이가 못마땅한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다.
‘저건 저렇게 하는 게 아닌데.’
‘저런 말투는 나쁜 건데.’
‘저런 행동은 못하게 해야 하는데’
‘저건 예의 없는 표정인데.’
예의를 가르쳐야 하고, 위험한 것은 막아주어야 하며, 질서와 규칙을 인지시켜야 하는 것은 부모로서의 당연한 역할이다. 하지만 가끔은 내가 생각해도 지나칠 때가 있다. ‘가르치는 것’에 초점이 있다기보다는 아이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아 ‘못마땅함을 표현’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아이의 속도를 인정하고 아이가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을 취해야 하는데, 나는 여전히 나의 속도대로 아이를 좌지우지하려 하고 내가 편한 방식대로 아이를 휘두르고 있는 것만 같다.
나는 아이를 가져본 적이 없다. 다만, 아이가 나를 찾아왔을 때, 나의 자리와 시간을 내어준 것일 뿐이다.
내가 아이를 선택한 것이 아니다. 아이가 나를 선택한 것이다. 아이의 선택으로 나는 엄마가 될 수 있었다. 더없이 기쁘고 행복한 엄마가.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한다. 아이가 온 마을을 돌고 돌아 딱 나를 찾아왔을 때, 그때의 감동과 설렘, 그리고 표현하기 어려운 약간의 두려움까지 모두 기억하기를. 아이를 가지려 하지 말고, 아이에게 나를 내어주기를. 나의 마음과 사랑을 온전히 내어, 아이가 많고 많은 엄마들 중에서 딱 '나'를 찾아온 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