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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Apr 16. 2020

아들, 우리 오늘도 데이트할래?

우리의 수다가 먼 훗날에도 이어지기를♡

나는 사랑이와 둘이서 카페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사랑이는 아이스크림, 나는 커피, 각자가 아하는 것을 하나씩 사서는 마주 보고 앉아 재잘재잘 수다 떠는 시간이 참 좋다. 우리는 그것을 데이트라고 부른다.


"사랑아, 우리 오늘 데이트할까?"

"데이트?"

"응!"

"엄마랑 나랑만?"

"그럼~  둘이서만."

"좋아! 나는 아이스크림 먹으면 되겠네!"


오랜만에 둘이서 데이트를 했다. 코로나 때문에 카페에 갈 수는 없어서 커피, 아이스크림, 조각 케이크를 테이크아웃했다. 아파트 지상 주차장에서 꽃나무가 잘 보이는 곳을 찾아 주차를 하고 사랑이를 카시트에서 내려주니, 사랑이가 조수석으로 폴짝 넘어왔다. 우리는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에 커피와 아이스크림, 조각 케이크를 놓았다.

케이크 먹느라 신난 아들

"엄마, 나 생일도 아닌데 엄마가 케이크를 사줬네? 무슨 일이지?"

"그러게. 너가 먹고 싶다고 해서 엄마가 사줬지!"

"우와, 신난다.!"

"이건 엄마랑 너랑 둘만의  비밀이야."

"비밀?"

"그래, 비밀!"


우리는 각자가 좋아하는 것을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아이의 입에서는 이야깃거리가 끊이지 않고 쏟아졌다. 


"엄마, 나 이제 수달 안 무서워"

"너 수달 무섭다고 했었잖아."

"아니야. 이제는 네 살이라 용감해졌어. 그런데 수달 나 안 잡아먹어?"

"응. 수달은 사람 안 잡아먹어."

"저수지에 수달 나오면 좋겠다."

"사랑이 수달 보고 싶구나."

"응, 엄마 수달, 아빠 수달,  오빠 수달, 아기 수달, 네 마리 다 보고 싶어!"

"수달가족이 보고 싶구나."

"근데 엄마, 티라노가 우리 집에 온대."

"정말? 무서워라!"


공룡에 이어 고래, 물개 얘기에 나중에는 만나지 못하고 있는 어린이집 친구들, 외할머니, 어린이날 선물로 받고 싶은 것까지 이야기 소재로 등장했다.

사랑이와의 그런 대화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이야깃거리가 참 좋았다. 장난감 하나 없이도 한참 동안 아이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그렇게 상상과 현실을 오가는 우리의 수다가 차 안의 공기를 따듯하게 데웠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봄날이었다.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을 지도하면서 참 힘들었던 것 중 하나가 대화가 잘 안 되는 아이와 부모님 사이를 중재하는 것이었다. 인생의 큰 고비를 넘어가는 고등학생들에게 부모님은 인생의 멘토가 되어줄 수도 있고 먼저 살아본 사람으로서 꽤 괜찮은 상담자가 되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가르친 고등학생들 중 부모님과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아이는 열에 둘셋이 될까 말까였다. 그나마도 여학생들은 좀 나은 편이나, 남학생들 중에는 부모님과 대화하기를 꺼려하는 아이들이 정말 많았다. 나에게 상담을 요청했던 아이들에게 이런 얘기를 부모님께도 말씀드려보지 그랬냐고 되물으면 대분분의 아이들의 대답은 이랬다.


"엄마한테 이런 얘기하면 쓸데없는 소리 할 시간에 공부나 하라고 할 걸요?"

"샘! 절대로 엄마한테는 말하지 마세요,  어차피 이해도 못해요."

"아빠는 자꾸 자기 얘기만 하고 내 얘긴 안 들어요."


아이들과의 상담 후 부모님들과 상담을 하면 부모님들의 반응은 또 전혀 달랐다.


"애가 그런 생각을 하는 줄은 몰랐어요."

"저는 애랑 얘기를 해보려고 계속 시도하는데요, 애가 말을 안 해요. 말을."

"애가 괜히 하는 소리예요. 집에서는 잘 지내는 걸요?"


안타까웠다. 아이들의 말과 부모님들의 말 사이에 너무나 큰 간극이 느껴졌다. 어떤 세월을 겪으며 그들 사이의 간극이 그렇게 넓어졌을까. 아이들도 부모님에게 의지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고, 부모님들도 아이들을 품고 싶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 간극은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기 어려워 우기도 쉽지 않았다.


아이들은 언젠가는 부모의 품을 떠난다. 그건 진리다. 감사하게도 아이에게 부모가 전부인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는 것을 교직생활을 통해 일찌감치 깨닫게 되었다. 당장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어도 아이들은 부모와의 시간보다 친구들과의 시간이 더 좋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길어야 그 시간은 10년 안팎일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부모의 품을 벗어나더라도 언제고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낼 수 있는, 자신의 이야기라면 어떤 것이든 비난 없이 들어주는 부모의 품이 있다고 믿는 것과 그렇지 않다고 여기는 것의 간극은 실로 엄청난 것이다.




내 아이들도 언젠가는 내 품을 떠나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 나갈 것을 알고 있다.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빨리 그런 시기가 올지도 모른다. 그때 내 아이들이 마음껏 날개를 펼치고 날아가다가도 문득 엄마품이 그리웠다며 내게로 날아와 편히 쉬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훨훨  날다가 무엇을 보았고, 누구를 만났고, 어떤 벽에 부딪혔는지 터놓고 얘기하며 기쁨을 공유하고 아픔을 치유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리고는 다시 하늘 높이 박차고 날아갈 힘을 얻기를, 그렇게 다시 한번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사랑이가 자라  "엄마, 우리 오늘 데이트할래요?"라고 먼저 물어오는 그날까지 나는 아이의 이야기를, 지금처럼 상상과 현실을 오가는 기이한 이야기들일지라도, 정성껏 듣고 즐겁게 대화할 것이다. 사랑이가 내게 먼저 데이트 신청을 하는 날에는 열일을 제쳐두고 사랑이에게로 한달음에 달려가야지! 


그런 날을 기대하며, 오늘도 나는 아이에게 묻는다.


사랑아, 우리 오늘도 데이트할래?




덧붙여,

직 말을 못 하는 우리 봄이와도 재잘재잘 수다 떨 날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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