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의 기억』 (호원숙)

책 리뷰인 척, 나의 이야기

by 진아

국어교사로 살면서 가장 자주 만나게 되는 작가 중 한 분, 언제나 푸근하게 미소 띤 얼굴로 떠오르는 한 분, 함부로 이름을 써도 되는 건가 싶을 만큼 때론 경외감이 드는 분. 나에게 박완서 작가님은 그런 분이다.

꽤 많은 작품을 남기신 분이라, 왠지 늘 작업실이나 서재에 앉아계셨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분의 부엌 이야기라니. 그것도 무려 따님의 기억 속에 남은 엄마 박완서의 부엌이라니.


이미 할머니가 된 딸이 돌아가신 엄마의 부엌에 대해 담담히 이야기하는 책이다. 엄마 박완서 님의 부엌과 딸인 저자의 부엌이 자연스럽게 교차한다. 박완서 님은 음식도 참 정갈하게 잘하셨던 모양이다. 그 음식을 먹으며 자란 따님 역시 그랬다. 엄마의 부엌을 물려받아 엄마의 레시피를 떠올리며 엄마의 조리도구로 음식을 하는 딸의 모습이라……. 엄마를 그리워하는 딸의 이야기가 애틋했다.


자식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엄마의 음식을 그리워하는 존재인가.


엄마의 치맛자락에 늘 희미하게 배어 있던 음식 냄새는 여지껏 나를 지탱해주는 세상에서 가장 평안하고 안온한 사랑의 힘이 되었다. 이맘때면 나무상자에 든 홍옥을 사놓고 다섯 아이에게 깎아주던 어머니, 그 붉은 사과 껍질이 수북이 쌓여가던 엄마의 치마폭 곁에 둘러앉아 아기새처럼 받아먹던 우리들. 제철에 실컷 먹어야 한다며 순서를 기다리는 아이들을 바라보던 어머니의 눈길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17쪽)

미나리를 다듬으며 거머리를 대담하게 떼어버리던 어머니의 야무졌던 손이 생각난다. 어머니는 다듬고 난 미나리 뿌리를 버리지 않고 예쁜 항아리에 물을 받아 담가 두셨지. 그게 다시 잎이 올라와 겨울의 방 안을 연두색으로 생기 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끊어서 먹기도 했다. 알뜰했던 어머니, 아니 그 시절 엄마들은 다 그러셨지. 뿌리의 생명력을 그냥 버리기가 아까웠던 마음이 읽힌다. (37쪽)

어머니의 발걸음이 생각난다. 엄마의 손을 잡고 같이 갔던 동대문시장의 풍경과 소리와 냄새가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엄마가 눈길을 주었던 맛살을 팔던 아줌마, 돼지 비계를 쇠번철 위에 올려놓고 빈대떡을 부치던 정갈하게 쪽을 찐 할머니들, 엄마를 보고 푸근하고도 반가운 미소를 짓던 아줌마들, 전선줄을 꼬아 만든 시장 바구니, 물건 값을 깎지 않았고 악착스레 더 달라고 하지도 않았던 부드럽고 우아했던 엄마. (115쪽)

읽을수록 나의 기억 속 부엌에 서 있던 두 사람이 차례로 떠올랐다. 처음에는 엄마가 떠오르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내내 외할머니가 생각났다. 유년기, 나의 삼시 세끼를 책임져 주셨던 나의 또 다른 엄마, 우리 외할머니가.




내가 자라던 때에는 배달 음식이라고 해봐야 치킨과 짜장면 정도가 다였다. 그것도 아주 특별한 날에나 먹는 것이었지 지금처럼 하루가 멀다 하고 배달 음식을 먹는 일은 상상도 못 하던 때였다. 엄마는 지금 말로 하면 워킹맘이었기에 일상의 음식들은 대체로 외할머니가 만들어주신 것들이었다.


외할머니는 맏며느리의 역할에 꼭 맞게 손이 크셨다. 무슨 음식을 해도 그 넉넉함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덕분에 가끔 할머니가 곰국을 끓이시면 좀 두려웠다. 작은 부엌을 압도하는 곰솥의 크기에 아찔했다. 저 많은 걸 도대체 누가 다 먹나 싶었다. 그래도 결국에 누군가는 다 먹었지만.

아무튼 할머니의 음식은 언제나 넉넉했다. 할머니의 음식에는 정갈하다는 단어보다 푸근하다는 단어가 어울렸다. 매 끼니마다 항상 꽤 많은 가짓수의 반찬이 올랐는데, 먹든 안 먹든 꼭 그랬다. 손 갈 반찬이 여럿이어야 식구마다 뭐라도 입에 맞는 게 있으리라 생각하셨던 걸까. 아마도 할머니가 지금의 내 식탁을 본다면 혀를 끌끌 차실 것이다. (내 식탁에는 찬-국이나 찌개 포함-이 세 개를 넘기는 일이 없다.) "먹을 게 하나도 없네!" 그러시면서.

할머니는 아귀찜이나 탕수육, 해물누룽지탕 같은 특식도 척척 만들어주셨는데, 어느 식당에서 파는 것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맛있었다. 아낌없이 넣은 재료와 양념 덕분이었는지, 딸처럼 키운 두 손녀의 입에 넣어주실 생각으로 사랑을 듬뿍 넣었던 덕분이었는지, 파는 음식에 감히 비할 수가 없었다.


특히 할머니표 김장 김치는 사라진 입맛도 단번에 돌아오게 하는 마법 같은 맛이었다. 할머니가 김장을 하시는 날이면 얼른 소금에 절여둔 배추의 숨이 죽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다 할머니가 거침없는 손길로 배추를 한 장 한 장 펴가며 붉은 양념을 바르고 속재료를 그득히 넣으실 때면 근처를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진아, 맛 함 봐라.”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할머니 곁으로 쪼르르 달려가면, 할머니는 배추의 속살 중에서도 가장 안쪽에 붙은 노랗고 연한 속살에 양념을 척척 발라 도르르 감아 내 입안에 쏘옥 넣어주셨다. 매운 것을 좋아하셨던 할아버지 덕분에 우리 집 고춧가루는 어느 집보다 매웠다. 쓰읍, 쓰읍 얼얼한 입안에서 아린 매운맛을 느끼면서도 맛보기를 멈출 수 없었다. 입안을 가득 채웠던 김치를 꼭꼭 씹어 넘기고서야 찬물 한 모금을 마셨다. 그리고는 다시 아기새가 되어 할머니 곁에 입을 벌리고 앉곤 했다.

김장을 했던 날이면 어김없이 수육을 삶기도 했을 텐데, 내 기억 속에는 그 장면이 없다. 오직 압력밥솥에 갓 지은 흰쌀밥에 갓 담은 김장 김치를 얹어 먹었던 기억만 선명하다. 할머니는 김장 김치는 칼을 대면 맛이 없다며 꼭 손으로 찢어먹어야 한다고 하셨다. 할머니는 나와 동생이 밥 한 공기를 다 비울 때까지 앞에 앉아 김치를 쭈욱 쭈욱 찢어주셨다. 먹는 것에 별다른 흥미가 없던 나였지만 김장날에는 밥을 두 공기씩 먹었던 기억이 난다.




며칠 전 가을비라기엔 꽤 많은 비가 오더니, 갑자기 바람이 매서워졌다. 냉동실을 열자 친정엄마가 손질해서 보내준 오징어가 보였다. 마트에 들러 무를 하나 사 왔다. 아이들이 먹기 좋은 크기로 무를 썰고 오징어를 썰었다. 내 취향대로라면 얼큰한 오징어 뭇국을 끓이고 싶지만, 잠시 내 취향은 미뤄두기로 했다.


다시가 우러난 물에 무만 넣어 끓이는 데도 이미 온 집안이 달큰한 향기와 온기로 가득 찼다. 오징어와 다진 마늘을 넣고 한소끔 끓인 뒤 간을 봤더니 약간 심심했지만 괜찮았다. 세 살 다섯 살 꼬마들이 먹을 거라 조금 심심하게 하는 게 좋겠다 싶어 소금을 아주 약간만 더 넣었다. 아이들이 돌아오자마자 짠, 하고 맛을 보일 생각에 벌써 가슴이 두근거린다.


음식을 잘하지도 못하고, 잘하고 싶은 욕심도 별로 없다. 그런데도 아이들이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것을 보면 말할 수 없는 충족감이 든다. 어른들이 말씀하신, ‘안 먹어도 배부른’ 마음을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워낙 요리에 관심이 없다 보니 할 줄 아는 음식도 몇 없는데, 가끔가다 아이들이 “엄마, 이거 진짜 맛있다. 다음에 또 해줘!” 그러면 당장 요리 학원이라도 등록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그 한 마디를 위해 오늘도 부엌을 서성였던 거겠지.


아이들의 말도 말이지만, 아마 엄마와 외할머니가 만들어주셨던 수많은 음식에 대한 기억들이 내 안에서 피와 살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와 외할머니가 부엌에 서서 음식을 하시던 뒷모습이 여전히 따스하게 남아 있어서, ‘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의 기억’으로 남아 있어서, 나 역시 이 부엌을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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