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를 기다리며』(사뮈엘 베케트)

by 진아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가 고도를 기다리는 이야기


『고도를 기다리며』의 줄거리를 정리하자면 이 한 문장이 전부다. 이토록 단순한 이야기가 오래도록 회자되고 고전의 반열에까지 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단순한 플롯에 담긴 의미에 관한 궁금증, 평론가마다 다르게 내어놓는 해석들, 그로써 작품이 작가의 손을 떠나 독자인 우리에게로 온전히 넘어온 듯한 느낌 때문이 아닐까.


작품 속에 끝까지 등장하지 않는 ‘고도’는 과연 누구인가.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왜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는가.
두 사람의 삶에 ‘고도’는 어떤 의미인가.
주인공 외에 포조와 럭키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두 인물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가 기다리는 행위 외에 어떤 행위도 하지 않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길지 않은, 단순한 줄거리의 희곡 한 편을 읽는 동안 수많은 질문들이 생겼다. 두 인물의 일상적이지 않은 행동과 대화를 따라가며 왜 이런 대화를 나누는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에스트라공 : 그만 가자
블라디미르 : 가면 안 되지.
에스트라공 : 왜?
블라디미르 : 고도를 기다려야지
에스트라공 : 참 그렇지


작품 전체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대화를 찾자면 바로 이것이다. 가자-안 되지-왜-고도를 기다려야지-그렇지. 그리고 기다림. 가자-안 되지-왜-고도를 기다려야지-그렇지. 다시 기다림. 뫼비우스의 띠에 갇힌 것처럼 두 사람은 이 대화를 기점으로 다시 원점(기다리는 일)으로 돌아오고 또 돌아온다. 어쩌면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중요한 것은 인물의 행동 하나하나, 대사 하나하나보다는 ‘기다리는 행위’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두 사람의 기다림을 읽고 또 읽다가, ‘과연 고도는 누구일까. 아니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왜 그들은 고도를 찾아 나서지 않는가 생각했다. 기다리는 것만이 유일한 일인 듯, 고도의 소식을 알고 고도의 전갈을 전하러 온 소년을 만나고서도 여전히 기다리기만 하는 두 사람이 의아했다. 고도를 찾지 않고 기다리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는 『고도』에서 어릿광대들을 통해 이 냉혹하고 무질서한 혼돈의 세계를 참을성 있게 견디도록 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겪는 고통의 이유도 모르는 채 기다림과 싸운다. 그래서 그들의 짓거리는 논리도 줄거리도 없이 지리멸렬하다. (작품 해설 중)


이 작품의 문학사적 배경은 전후 실존주의 문학이라고 한다. 허무주의적이고 비극적인 세계 인식을 바탕으로 쓰인 전후 부조리극의 대표작이라고 하니 두 인물의 행위가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비극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했던 실존주의 문학의 특성상, 두 인물에게 기다림이란, 살아가는 방식이자 살아내는 방식 그 자체였을지도 모른다.




포조 : (버럭 화를 내며) 그놈의 시간 얘기를 자꾸 꺼내서 사람을 괴롭히지 좀 말아요! 말끝마다 언제 언제 하고 물어대다니! 당신, 정신 나간 사람 아니야? 그냥 어느 날이라고만 하면 됐지. 여느 날과 같은 어느 날 저놈은 벙어리가 되고 난 장님이 된 거요. 그리고 어느 날엔가는 우리는 귀머거리가 될 테고. 어느 날 우리는 태어났고, 어느 날 우리는 죽을 거요. 어느 같은 날 같은 순간에 말이요. 그만하면 된 것 아니냔 말이오?(더욱 침착해지며) 여자들은 무덤 위에 걸터앉아 아이를 낳는 거지. 해가 잠깐 비추다간 곧 다시 밤이 오는 거요.(그는 끈을 잡아당긴다) 앞으로! (150쪽)


또다른 인물인 포조와 럭키는 ‘고도’를 모른다. 그들에게 어제와 오늘은 모두 ‘그냥 어느 날’ 일뿐이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게 되더라도 상관없다. 어느 날 태어났듯이 어느 날 죽을 따름이다. 그들에게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별다른 의미가 없다.


블라디미르 : (전략) 하지만 문제는 그런 게 아니야. 문제는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가 뭘 해야 하는가를 따져보는 거란 말이다. 우린 다행히도 그걸 알고 있거든. 이 모든 혼돈 속에서도 단 하나 확실한 게 있지. 그건 고도가 오기를 우린 기다리고 있다는 거야.(134쪽)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포조, 럭키와 다르다. 그들의 일상도 별다른 의미가 없는 것 같지만, 그들에게는 ‘고도’가 있다. 기다리는 대상이 있기에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기다리는 행위는 계속된다.


작가가 말하고자 한 ‘고도’의 의미나 ‘기다리는 행위’의 의미를 다 알 수는 없다. 다만 이 작품은 나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졌고, 나는 내 나름의 답을 찾을 뿐이다.


자기만의 ‘고도’가 있는 이는 어찌 되었든 살아갈 힘이 있다.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똑같을지라도 살아갈 이유가 있다. 그렇다면 나의 '고도'는 무엇일까. 꿈, 행복, 목표, 희망, 구원, 미래, 어떤 사람, 어떤 일, 어떤 시간, 어떤 공간.....


과연 나를 살게 하는 '고도'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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