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부터의 도피』(에리히 프롬)

by 진아
이 책의 주제를 간단히 요약하면, 근대인은 개인에게 안전을 보장해주는 동시에 개인을 속박하던 전 개인주의 사회의 굴레에서는 자유로워졌지만, 개인적 자아의 실현, 즉 개인의 지적·감정적·감각적 잠재력의 표현이라는 적극적 의미에서의 자유는 아직 획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자유는 근대인에게 독립성과 합리성을 가져다주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개인을 고립시키고 그로 말미암아 개인을 불안하고 무력한 존재로 만들었다. 이 고립은 참기 어려운 것이다. 개인이 고립에서 벗어나려면, 자유라는 무거운 부담을 피해 다시 의존과 복종으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인간의 독자성과 개인성에 바탕을 둔 적극적인 자유를 완전히 실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16쪽)


저자가 이미 서문에서 서술한 대로, 이 책의 주제는 위와 같다. 이 한 권을 책을 이 이상 잘 정리할 도리가 없어서 그대로 인용한다. 이 책은 근대에 들어서며 종교와 정치 등에서 자유로워진 개인이 왜 자유를 적극적으로 누리지 못하고 ‘자유로부터 도피’하고자 하는가에 대한 진단이다. 자유로부터 도피하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개인이 자유로부터 도피했을 때 사회에는 어떤 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지(예를 들어 나치즘, 파시즘 등)를 분석하고 있다. 현상에 대한 해결책이 명시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진단 과정에서 개인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실마리 정도는 찾을 수 있다.




고등학교 때까지 학교에서 짜준 시간표대로 하루를 보냈다. 수업 시간과 과목은 정해져 있었고, 그 안에서 나에게 부여된 역할은 수업을 듣고 시험을 치르는 것이 전부였다. 목표는 오직 ‘수능’이었고, 그것을 위해 밤 10시까지 야간 자율학습(야간 타율학습이 더 적절하게 느껴지는 건 왜인지)을 했다. 학교가 끝나면 정문 앞에 학원 버스가 와있었고 버스를 타고 학원까지 실려(?) 가서 다시 정해진 시간표대로 수업을 들었다.


수능이 끝나자 감당할 수 없는 자유가 주어졌다. 학교 일과는 오전 두세 시간이면 끝이 났고, 대입원서를 준비하는 일 외에는 달리 할 일이 없었다. 시험을 준비할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쏟아지던 잠도 오지 않았다. 시간적 자유는 넘치는데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맛있는 것을 먹으러 다니고 노래방과 오락실을 기웃거렸다.


대학 오리엔테이션에 갔더니 당장 시간표를 짜라고 했다. 필수로 들어야 하는 전공과목 두 개와 교양과목 두 개를 제외한 나머진 시간을 직접 채워야 한다고 했다. 교양 과목명을 보는데 눈앞이 아찔했다. 선택지가 너무 많았다. 커리큘럼을 봐도 도무지 뭘 들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결국 나에게 주어진 선택의 자유를 선배들에게 반납했다. 선배들은 자신이 들었던(아마도 선배의 선배가 짜준 시간표대로 들었던) 과목 중에 학점을 잘 주는 수업이나 이동 동선이 짧은 수업, 점심시간 즈음에는 학생식당과 가까운 건물에서 이루어지는 수업 등을 고루 배치해서 시간표를 짜주었다.


1학년은 선배들의 도움으로 어찌어찌 시간표를 짜서 다녔지만, 2학년부터는 그렇기가 어려웠다. 1년쯤 다녀보니 듣고 싶은 교양과목들이 생겼고, 타과 전공 중에도 관심이 생겼다. 하지만 그 관심을 친한 친구들과 맞추기는 어려웠다. 혼자 타과 수업을 들을 용기가 없어서 친구들을 설득하거나, 설득에 실패하면 친구들의 의견을 따르는 쪽으로 결정했다. 수강신청의 전쟁이 끝날 때마다 나와 친구들은 자주 입을 모았다.


“시키는 대로 수업 듣고 시험을 치던 고등학교 때가 편했다!”


우리는 자주 자유로부터 도피했다. ‘안정감’ 때문이었다. 자유를 반납한 대신에 얻은 소속감과 안정감은 달콤했다. 가벼워진 책임의 무게도 한몫했다. 자유에서 도피하는 것을 부끄럽다 생각하지 않았고, 거침없이 자유로운 선택을 하는 친구들에게서 도리어 위화감을 느꼈다.


대학 때부터 이어진 자유로부터의 도피는 계속되었다. 남들이 해야 하는 일이라고 해서, 모두 다 하는 일이라고 해서 해온 일들을 세 보자면 열 손가락으로도 모자랄 것이다. 덕분에 주변 사람들에게는 대개 칭찬의 대상이었고, 때론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러니 의심하지 않았고, 의심할 이유도 없었다. 그렇게 열심히, 치열하게 살았기에 감히 ‘도피’라는 단어가 내 삶에 적용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못했다.




우리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모든 정력을 소비하고, 대다수 사람들은 이런 행동의 전제, 즉 자기가 정말로 원하는 것을 알고 있다는 전제에 조금도 의문을 품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기가 추구하는 목표가 정말로 자신이 원하는 것인지 어떤지를 생각지 않는다. 학교에 다닐 때는 좋은 성적을 원하고, 어른이 되면 더 많이 출세하고 더 많이 벌고 더 많은 특권을 누리고 더 좋은 차를 사고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 모든 활동에 미친 듯이 열중하다가 잠깐 멈춰 서서 생각하면 이런 의문이 떠오를지 모른다. “만약 내가 이 새 일자리를 얻으면, 내가 더 좋은 이 차를 사면, 내가 이 여행을 하면, 그다음엔 무얼 하지?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 모든 걸 원하는 게 정말로 나일까? 내가 지금 추구하는 목표는 나를 행복하게 해 줄 것으로 생각되지만, 내가 거기에 도달하자마자 나를 피해버리는 것은 아닐까?” 이런 의문은 일단 제기되면 무섭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가의 모든 활동을 떠받치는 토대 그 자체, 즉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느냐고 그 자신에게 묻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이런 성가신 생각을 되도록 빨리 없애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피곤하거나 우울해서 이런 의문에 시달렸다고 느끼고, 그들이 자신의 목표라고 믿는 목표를 계속 추구한다. (273쪽)


최근 몇 년 동안 처음으로 나는 스스로를 의심했고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물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정말로 내가 원하는 삶인가?”


이제 와 사춘기를 맞은 것처럼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고만 여겼다. 어쩌면 근래의 의문은 그동안 도피해왔던 ‘자유’를 정면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삶의 근간을 뒤흔드는 의문 앞에, 두려워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적도 많다. 그냥 살던 대로 살고 싶다고, 누가 시키는 대로 하라는 대로 하며 속 편하게 늙어가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한 번 의식을 파고든 의문은 쉽게 거둬지지 않았다.


우리는 자발적 활동에서 생겨나는 그 자질들만이 자아에 힘을 주고, 그리하여 자아의 본래 모습의 토대를 이룬다. 자발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거나, 진정으로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표현하지 못하거나, 그 결과 타인과 자신에게 가짜 자아를 보여줄 수밖에 없거나 하는 것은 열등감이나 무력감의 근원이다. 우리가 그것을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자기 자신이 아닌 것보다 부끄러운 일은 없고, 우리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고 말하는 것만큼 큰 자부심과 행복을 주는 것도 없다. (282쪽)


책을 덮으며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고 말하는 것,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당연한 자유에서 더 이상은 도피하지 않기를. 누군가의 생각을 따르고, 누군가의 말에 무조건 동조하는 ‘자동인형’ 같은 삶을 끊어내고 적극적 자유를 추구하는 삶의 문으로 들어서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문득 어제저녁 식사시간에 아이들과 나눈 대화가 떠오른다.


“엄마, 나중에 내가 결혼하면 엄마랑 못 살아?”

“결혼을 하면 엄마랑 살지 않고 네가 결혼한 사람과 사는 거지. 그리고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네가 어른이 되면 엄마랑 같이 살지 않을 수 있어.”

“싫어. 엄마랑 같이 살 거야.”

“그래, 그건 그때 가서 얘기하자.”(웃음)


“그런데 사랑아, 결혼을 꼭 할 필요는 없어.”

“엄마랑 아빠는 결혼했잖아.”

“응, 엄마랑 아빠는 결혼을 선택했지만, 사랑이는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어.”

“꼭 안 해도 되는 거야?”

“그럼, 당연하지. 결혼도, 아이를 낳는 일도, 네가 하고 싶은 일도 모두 네가 선택할 수 있어. 충분히 고민하고 생각해서 네가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어. 단, 선택하면 책임져야 해.”

“책임? 그건 뭐야?”

“음... 우리 책 중에 ‘내가 책임질게’ 있지? 오늘은 자기 전에 그 책 읽어보자.”

“응. 엄마!”


아이에게 내가 알려 줘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이제는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다.


‘너의 삶은 너의 것이니,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 단, 선택에 따르는 책임 역시 너의 것이란다. 네게 주어진 자유에서 도망치지 말고, 적극적으로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렴. 때론 불안할지라도 네가 원하는 삶에서 얻을 수 있는 희열을 포기하지 말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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