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나잇 라이브러리』(매트 헤이그)

by 진아

“밤 12시, 죽기 바로 전에만 열리는 마법의 도서관에서 인생의 두 번째 기회를 드립니다.”


죽기 직전, 삶의 공간도 죽음의 공간도 아닌 중간의 어느 곳에 당신 삶의 모든 시나리오가 담긴 도서관이 있다. 살면서 후회했던 모든 일이 담긴 책, ‘후회의 책’을 열어 본 뒤, 후회했던 일들을 돌이켜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 지금 당신에게 떠오르는 후회의 순간은 어떤 순간인가? 그 순간으로 돌아가 전혀 다른 선택을 한 삶을 살 수 있다면 당신은 그렇게 하겠는가?




주인공 노라는 세상에서 자신이 더는 쓸모없다는 생각을 하고 평소 먹던 항우울제를 과다 복용한 뒤(아마도 자살기도였으리라),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자정의 도서관)에서 깨어난다. 그곳에는 학창 시절 유일하게 의지했던 도서관 사서 엘름이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책은 노라의 수만 가지 인생 시나리오이며, 노라는 지금과 전혀 다른 삶 속으로 들어가 볼 수 있다. 그 삶에서 충분한 만족감과 안정감을 느낀다면 자정의 도서관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반드시 다시 돌아올 것이다. 노라는 수없이 많은 후회의 순간을 되돌아가 자신의 삶이었을지도 모르는 낯선 삶을 살아본다.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선택의 순간을 맞이한다. 어떤 선택은 만족할 만한 결과를 가져오고, 어떤 선택은 후회로 물든 결과를 맞이하게 한다. 지금까지 해온 많은 선택 중 되돌리고 싶은 것들이 한두 개일까. 사소한 선택과 결정의 순간들까지 곱씹어가자면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미 해버린 선택과 결정은 단 하나도 뒤엎을 수 없다. 시간을 돌이켜 다시 선택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전에 못한 선택을 뒤늦게 한다고 해도 처음에 그 선택을 했을 때와는 다른 결과를 맞이할 가능성이 크다. 선택과 결정의 순간에는 타이밍이 있고, 그 순간에 선택을 했다면 우리에게 남은 일은 최선을 다해 그 삶을 사는 것뿐이다.


“살아봐야만 배울 수 있어.”


엘름이 노라에게 가장 자주 한 말이었다. 살아보지 않고서는 배울 수 없다. 살아봐야 후회할 일인지, 끝내는 행복으로 남을 일인지 알 수 있다. 선택했다면 애써야 하고, 애썼다면 돌아온 결과가 어떠하든 담담히 받아들일 용기도 필요하다.


노라는 자신이 원했던 삶이라 확신할 만한 삶을 찾아냈지만, 결국 다시 자정의 도서관으로 돌아오고 만다. 그는 그 삶에 머물고 싶다고, 다시 자정의 도서관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기도까지 했지만 끝내 돌아온다. 그 삶은 진짜 자신의 삶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절망과 좌절뿐이라 생각했던 자신의 이전 삶은 온전히 자신의 삶이었으나, 완벽한 듯 보이는 새로운 삶에는 공백이 너무 많았다. 새로운 삶 속에 남으려 하면 할수록 이전의 삶은 흐려졌고, 그 결과 노라의 자정의 도서관은 무너져 내렸다. 무너지는 도서관 서가 아래에서 엘름은 노라에게 모든 책이 불타버리더라도, 단 한 권의 책은 남아 있을 거라고. 그 책은 아직 쓰이지 않았으며 이제부터는 네(노라)가 그 책을 써 내려가야 한다고 말한다. 노라는 첫 문장을 써내고, 꿈에서 깨어나듯 현실로 돌아온다.


나는 살아 있다.

노라의 삶에서 달라진 것은 없었다. 항우울제를 과다 복용한 채로 거실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사랑하던 고양이는 여전히 죽은 뒤였으며, 쓰러지기 전과 마찬가지로 직장에서 해고된 상태였다. 변화한 것은 오직 ‘노라’ 자신이었다. 수많은 삶을 다시 살아본 후에 노라가 얻은 것은 ‘나는 살아 있다’는 선명한 현실감각이었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삶은 소설이 아니다.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의 순간은 자주 찾아오고, 그 순간마다 우리는 선택해야만 한다. 선택하지 않은 삶을 살아볼 기회는 없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는 우리에게 ‘다른 삶을 살아봐도 별 것 없다. 다른 삶에도 나쁜 점이 있으니 그냥 현실에 충실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충분히 행복한 선택지도 있었지만, 결국에 현실로 돌아온다는 것이 핵심이다.


더 나은 삶이 존재했다 하더라도, 그 삶은 결코 내 삶이 아니라는 것. 선택의 순간에 이미 그 삶은 내 삶과 관계없는 다른 삶이 되었다는 것. 내 삶은 오직 지금, 오늘, 여기, 이곳에만 존재한다는 것.


후회의 순간을 곱씹으며 읽었으나, 결국 내게 남은 것도 단 하나의 감각이다.


‘나는 살아 있다.’

‘지금, 여기에 나란 존재로 선명히 살아 있다.’





노라는 삶의 목적을,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찾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하다못해 이틀 전처럼 배너지 씨를 대신해 약국에서 약을 타오는 사소한 목적조차 없었다. 노라는 노숙자에게 돈을 주려다가 돈이 한 푼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34쪽)

“삶과 죽음 사이에는 도서관이 있단다.” 그녀가 말했다. “그 도서관에는 서가가 끝없이 이어져 있어. 거기 꽂힌 책에는 네가 살 수도 있었던 삶을 살아볼 기회가 담겨 있지. 네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떻게 달라졌을지 볼 수 있는 기회인 거야. 후회하는 일을 되돌릴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하나라도 다른 선택을 해보겠니?”(49쪽)

“넌 선택은 할 수 있지만 결과까지 선택할 수는 없다는 걸. 하지만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건 좋은 선택이었어. 단지 결과가 바람직하지 않았을 뿐이지.”(123쪽)

죽고 싶지 않았다. 그게 문제였다. 죽음 앞에 서면 삶은 훨씬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삶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데 어떻게 자정의 도서관으로 돌아갈 수 있겠는가? 마냥 무서워할 게 아니라 이 삶에 실망해야 다른 책을 펼쳐볼 수 있다.(192쪽)

“전 그냥 삶을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노라가 부루퉁하게 말했다.
“삶을 이해할 필요 없다. 그냥 살면 돼.”(312쪽)

‘죽고 싶지 않아.’
노라는 더 노력해야 했다. 늘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삶을 원해야 했다. 이 도서관이 그녀의 일부이듯, 다른 인생도 그녀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다른 삶에서 느꼈던 감정을 모두 느끼지 못할 수는 있지만 그녀에게는 능력이 있었다. 올림픽 메달리스트, 여행가, 와이너리 대표, 록스타, 지구를 살리는 빙하학자, 케임브리지 대학 졸업생, 엄마, 혹은 그 외의 백만 가지 사람이 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놓쳤을지 몰라도 노라는 어떤 면에서 여전히 그런 사람이었다. 그들은 모두 그녀였다. 그녀는 그 모든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었고, 한때는 그 사살이 우울하다고 생각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자극이 되었다. 왜냐하면 이제는 마음먹고 노력하면 자신이 해낼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이다. 또한 그녀가 살았던 삶에는 나름대로 타당성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중략) 노라는 잠재력 덩어리였다.(380쪽)

하지만 모든 게 달라졌다.
모든 게 달라진 이유는 이젠 그녀가 단지 다른 사람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상 속 완벽한 딸이나 동생, 애인, 아내, 엄마, 직원, 혹은 무언가가 되는 데서 유일한 성취감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그저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목표만 생각하며 자신만 책임지면 그만이었다.(400쪽)

노라는 자신이 블랙홀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녀는 화산이었다. 그리고 화산처럼 그녀는 자신에게서 달아날 수 없었다. 거기 남아서 그 황무지를 돌봐야 했다.
자기 자신 안에 숲을 가꿀 수 있었다.(4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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