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어 수업』(한동일)

by 진아

<부제 : 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아주 가끔, 정말 드물게, 그런 책을 만날 때가 있다. 책장을 넘기는 게 아까운 책. 남은 페이지가 얼마 없을 때 아쉬움이 왈칵 밀려드는 책. 구절구절이 마음의 후미진 곳까지 가닿는 책. 나만 알았음 싶다가도 세상 모든 사람이 읽었음 싶은 책.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나누고 싶은 책. 다 읽고 나면 한동안 멍해져 그 책 생각만 나는 책. 표지만 봐도 얼마간은 진한 위로가 전해지는 책.


『라틴어 수업』이 그런 책이었다. 올해의 끝자락, 더없이 고마운 『라틴어 수업』이 나에게 왔다.



워낙 여러 사람에게 추천을 받은 책이었지만, 제목 때문에 쉽게 펼쳐보지 못하고 있었다. ‘라틴어’도 모자라 심지어 ‘수업’이라니. 미루고 미루다 결국 한 해가 저무는 12월이 되어서야 책을 펼칠 용기를 내었다. ‘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이라는 부제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내년이면, 아니 며칠 뒷면 서른아홉이 된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삼십 대를 갈무리하고 사십 대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해라 그런지, 삶에 대한 생각이 어느때보다 진지해진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될 것 같았다. ‘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이란 어떤 삶일까, 그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라틴어는 사실상 ‘사어(死語)’이다. 더 이상 쓰지 않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럽을 비롯한 서양의 교육 문화에서는 여전히 라틴어 학습이 강조된다. 라틴어는 서양 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모든 언어의 토대가 되며, 그 안에는 수많은 나라의 역사와 문화, 법, 가치관 등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실용성의 측면에서 보자면 라틴어 수업은 가치가 없다. 그러나 『라틴어 수업』을 통해 접한 라틴어에는 실용성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있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어떤 삶이 좋은 삶인가. 어떤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진정으로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 살면서 마주하게 되는 거대한 질문들. 답하지 않아도 먹고사는 데는 별문제가 없는 질문들. 그러나 답하려 애쓰면, 반드시 조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질문들. 라틴어 수업은 그런 질문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서게 하는 수업이었다.


지금 삶에 부대끼는 당신께.

방향을 잃고 흔들리는 당신께.

앞으로의 삶을 고민하는 당신께.

지나간 삶에 매여 옴짝달싹 못하는 당신께.

더 나은 삶을 꿈꾸는 당신께.


고루 추천해드리고 싶은 책이다. 나만큼의 울림을 받으실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꼭 권해드리고 싶은 책이다.




오래 되뇌고 싶은 라틴어 문장들.


NON SCHOLAE, SED VITAE DISCIMUS.

(논 스콜레, 세드 비때 디시무스)

우리는 학교를 위해서가 아니라, 인생을 위해서 공부한다.

물론 잘 먹고 잘 살겠다는 꿈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공부한 사람의 포부는 좀 더 크고 넓은 차원의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만 생각하기보다 더 많은 사람, 더 넓은 세계의 행복을 위해 자기 능력이 쓰일 수 있도록 하겠다는, 한 차원 높은 가치를 추구했으면 좋겠습니다. 배운 사람이 못 배운 사람과 달라야 하는 지점은 배움을 나 혼자 잘 살기 위해 쓰느냐 나눔으로 승화시키느냐 하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57쪽)


Summa cum laude

(숨마 쿰 라우데 : 라틴어의 성적 구분 중 ‘최우등’)

무엇보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타인의 객관적인 평가가 나를 ‘숨마 쿰 라우데’라고 하지 않아도 우리는 ‘숨마 쿰 라우데’라는 존재감으로 공부해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가 스스로 낮추지 않아도 세상은 여러 모로 우리는 위축되게 하고 보잘것없게 만드니까요. 그런 가운데 우리 자신마저 스스로를 보잘것없는 존재로 대한다면 어느 누가 나를 존중해주겠습니까? dfl는 이미 스스로에, 또 무언가에 ‘숨마 쿰 라우데’입니다.(74쪽)


Post coitum omne animal triste est.

(포스트 코이툼 옴네 아니말 트리스테 에스트.)

모든 동물은 성교 후에 우울하다.

오늘날 이 명문을 우리 일상과 접목하면 “인간이 원하고 목표하던 사회적 지위나 명망을 취한 뒤 느끼는 감정은 만족이 아니라 우울함이다”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열정적으로 고대하던 순간이 격렬하게 지나가고 나면 인간은 허무함을 느낍니다. (중략)
저는 여러분이 이런 우울을 느끼게 되는 위치까지 올라가 그 감정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공부를 해보지 않은 사람이 “공부, 그거 별거 아니야”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성공과 실패를 해보지 않은 사람이 그것에 대해 논한다면 그 말에 무게가 실릴까요?(136쪽)


Verumtamen oportet me hodie et cras et sequenti die ambulare.

(베룸타멘 오포르테트 메 호디에 에트 크라스 에트 세쿠엔티 디에 암불라레.)

사실은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계속해서 내 길을 가야 한다.

여러분은 자기 자신의 길을 잃지 않고 잘 가고 있습니까?
그 길을 걸으며 무엇을 생각합니까?
그 길 위에 지치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 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243쪽)


Vulnerant omnes, ultima necat.

(불네란트 옴메스, 울티마 네카트.)

모든 사람은 상처만 주다가 종국에는 죽는다.

“모든 사람은 상처만 주다가 종국에는 죽는다.” 인간은 정말 타인에게 상처만 주다가 가는 걸까요? 제가 누군가로부터 상처 받고 온 어느 날 밤에 제가 상처 받은 내용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처음엔 제게 상처 준 사람에게 마음속 깊이 화를 내고 분노했어요. 그의 무례함에 섭섭한 감정을 넘어 치욕을 느끼기도 했고요. 하지만 시간이 흘러 다시 생각해보았습니다. ‘그가 과연 나에게 상처를 주었나?’ 하고요. (중략)
오늘날 우리 사회는 마치 폭발 직전의 폭주 기관차처럼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하지만 삶에는 간이역 같은 휴게소가 필요합니다. 제 경우에는 상처가 오히려 그런 간이역 같은 휴게소가 되어 주었습니다. 멈춰 서서 제 안을 들여다보게 해 주었으니까요. 그래도 때로는 ‘이 간이역 그만 좀 나왔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합니다. 아픈 건 아픈 거니까요. 그렇지 않나요? 이 간이역을 지나고 또 지만 제가 닿을 종착역도 어디쯤인가 있을 겁니다.
오늘 여러분이 잠시 머문 간이역은 어디인가요? 그곳은 어떤 풍경을 가지고 있나요?(2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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