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긴밤』(루리)-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작품

by 진아

태어나다.

살아가다.


이 단순하고 당연한 순리에서 벗어난 이들. 코끼리 고아원에서 태어난 흰바위코뿔소와 어미 잃은 알에서 태어난 어린 펭귄, 둘이 함께 보낸 긴긴밤들. 악몽의 시간을 딛고 살아남은 기적.

『긴긴밤』은 기적의 이야기이다.


『긴긴밤』은 태어났으니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하나의 존재가 태어나고 살아남는 데에는 수많은 이들의 삶이 연결되어 있음을.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귀한 존재이며, 살아남기 위해 부단히 애써야 함을 깨닫게 해 준 책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남았다. 세상에 마지막 남은 하나가 되었지만 복수를 할 수 없는 흰바위코뿔소와 불운한 검은 점이 박힌 알에서 목숨을 빚지고 태어난 어린 펭귄이었지만, 우리는 긴긴밤을 넘어, 그렇게 살아남았다. (104쪽)


“노든, 나는 누구예요?”
“너는 너지.”
“그게 아니라, 바다에 가서, 여행을 떠나고, 그래서 다른 펭귄들을 만나게 되면, 그 펭귄들 속에서 나는 누구인 거예요? 아무리 많은 코뿔소가 있어도, 노든은 노든이잖아요. 나도 이름이 있으면 좋겠어요. 나중에 노든이 나를 만나러 오면, 다 똑같이 생긴 펭귄들 속에서 나를 찾기 어렵잖아요. 노든이 내 이름을 부르면 내가 대답할 수 있게, 나한테도 이름이 있으면 좋겠어요.”
“날 믿어. 이름을 가져서 좋을 거 하나도 없어. 나도 이름이 없었을 때가 훨씬 행복했어. 게다가 코뿔소가 키운 펭귄인데, 내가 너를 찾아내지 못할 리가 없지. 이름이 없어도 네 냄새, 말투, 걸음걸이만으로 너를 충분히 알 수 있으니까 걱정 마.”


자신에게도 이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어린 펭귄의 말에, 노든은 이름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자신도 이름이 있기 전이 더 행복했다며, 이름 같은 게 없어도 너의 말투, 걸음걸이, 냄새만으로 너를 찾아낼 수 있다며.


흰바위코뿔소에게 ‘노든’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들은 인간이었다. 총을 맞고 쓰러져 있던 코뿔소를 발견하고 동물원으로 데려온 인간들이 그에게 ‘노든’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그들은 ‘노든’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울타리 안에 가두었다.


노든은 이름이 없던 때가 확실히 더 행복했다. 코끼리 고아원에서 태어났지만 어른 코끼리들의 사랑으로 무럭무럭 자라던 때, 고아원에서 바깥세상으로 나오기로 결심했던 때, 세상에서 아내 코뿔소를 만나 사랑을 나누고 딸을 낳아 행복을 가꾸던 때, 그때의 노든은 스스로의 삶을 스스로 선택했고 그 선택은 행복으로 이어졌다. 아내와 딸이 인간의 총에 맞아 죽던 날 밤, 노든은 쓰러진 채로 동물원으로 왔고 이름을 얻으면서 불행해졌다.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던 공간(동물원)에서 노든은 함께 지내던 코뿔소(앙가부)와 탈출을 시도했지만 전쟁으로 뜻하지 않게 앙가부가 죽었다. 절망의 순간에 펭귄 치쿠(알을 품어준 펭귄)를 만나고 둘은 동물원을 탈출했다. 노든은 치쿠를 통해 알에 얽힌 이야기를 듣게 되고, 치쿠가 죽은 뒤에는 알에서 태어난 어린 펭귄과 긴긴밤을 함께 했다. 아내와 딸을 죽은 인간들에게 복수를 하는 것만이 유일한 꿈이었던 노든은 어린 펭귄을 돌보며 복수의 꿈을 접었다. 대신 어린 펭귄이 바다를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왔다.


이름을 갖고 싶다는 어린 펭귄에게 이름 따위 필요 없다고 말하는 노든의 말, 그 말은 나에게 ‘타인이 규정지은 나’라는 존재에 매이지 말라는 의미로 읽혔다. 네 말투, 걸음걸이, 냄새 그것이 바로 ‘너’라는 말은, 나란 존재 자체가 지닌 것들이 곧 ‘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누군가에 의해서 규정될 수 없는, 오직 스스로 가꾸고 지켜내야 하는 존재라고.




이 작품은 ‘나로 살아간다는 것’의 고통과 두려움, 환희를 단순하지만 깊이 있게 보여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평안한 삶을 박차고 나와 긴긴밤 속으로 들어간 노든, 세상의 전부였던 노든을 떠나 깊고 검푸른 자신의 바다로 들어가는 펭귄의 모습은 어린이 독자들에게 큰 울림으로 남을 것이다.(심사평 중)


‘나로 살아간다는 것’은 아름답지만은 않다. 행복하지만도 않다. 평안과는 더더욱 거리가 멀다. 누군가가 정해준 틀 안에서 짜인 시간표대로 살아가는 것은 어쩌면 삶을 가장 쉽게 사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고민할 것도, 생각할 것도 없이 주는 대로 먹고 하라는 대로 하는 삶은 무료할지 몰라도 평안을 보장받을 수 있다. 동물원의 동물들처럼.


나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틀을 벗어나야 한다. 짜인 시간표를 거부해야 한다. 삶의 반경을 스스로 설정해야 한다. 나만의 초원을 나만의 바다를 찾아 나서야 한다. 그에 고통과 두려움이 따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결국은 선택이다. 틀 안에 남을 것인가. 틀 밖으로 나아갈 것인가. 코끼리 고아원에서 바깥세상으로 나아갔으며, 동물원의 울타리에서 탈출한 노든. 노든의 곁을 떠나 자신만의 바다를 찾아 나선 어린 펭귄. 둘의 긴긴밤을 오래 기억해야겠다. 악몽의 밤이기도 했지만,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했던 그 긴긴밤을.

긴긴밤의 끝에는 반드시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고, 새날이 밝아온다는 사실까지도.



“하지만 너에게는 궁금한 것들이 있잖아. 네 눈을 보면 알아. 지금 가지 않으면 영영 못 가. 직접 가서 그 답을 찾아내지 않으면 영영 모를 거야. 더 넓은 세상으로 가. 네가 떠난 건 슬픈 일이지만 우리는 괜찮을 거야. 우리가 너를 만나서 다행이었던 것처럼, 바깥세상에 있을 또 다른 누군가도 너를 만나서 다행이라고 여기게 될 거야.”(15쪽)

“훌륭한 코끼리는 후회를 많이 하지. 덕분에 다음 날은 전날보다 더 나은 코끼리가 될 수 있는 거야. 나도 예전 일들을 수없이 돌이켜 보고는 해. 그러면 후회스러운 일들이 떠오르지. 하지만 말이야. 내가 절대로 후회하지 않는 것들도 있어. 그때 바깥세상으로 나온 것도 후회하지 않는 몇 안 되는 일들 중 하나야.”(18쪽)

“그런데 포기할 수가 없어. 왜냐면 그들 덕분에 살아남은 거잖아. 그들의 몫까지 살아야 하는 거잖아. 그러니까 안간힘을 써서, 죽을힘을 다해서 살아남아야 해.”(81쪽)

“그치만 나한테는 노든밖에 없단 말이에요.”
“나도 그래.”
눈을 떨구고 있던 노든이 대답했다.
그때 노든의 대답이 얼마나 기적적인 것이었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것이 다른 우리가 서로밖에 없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그때는 몰랐었다. (94쪽)

“다른 펭귄들도 노든처럼 나를 알아봐 줄까요?”
“누구든 너를 좋아하게 되면, 네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어. 아마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너를 관찰하겠지. 하지만 점점 너를 좋아하게 되어서 너를 눈여겨보게 되고, 네가 가까이 있으면 어떤 냄새가 나는지 알게 될 거고, 네가 걸을 때는 어떤 소리가 나는지에도 귀 기울이게 될 거야. 그게 바로 너야.”(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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