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이나 일흔쯤 되었을 때 나는 지금보다 좀 더 유연한 몸을 가지고(요가를 해야 한다) 더 부지런히 집안을 돌보고(청소를 이틀 이상은 미루지 말아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몇 가지 채소, 그러니까 토마토나 가지, 오이와 당근 따위를 직접 키워 먹고(마당이 필요하다) 집 안팎의 아름다운 존재들을 돌보고(시골로 내려가 살고 싶다) 아침저녁으로 산책을 하고 나면 돌아와 짤막한 글을 한 편씩 쓰고(꾸준히 써야 한다, 꾸준히) 지금보다 많은 질문과 답을 알기(그러기 위해서 좋은 글을 더 많이 읽고) 그러나 겸손하고(다 안다고 착각하지 말고) 더 많은 세상의 이치를 이해하고(모르는 건 미루지 말고 부지런히 배우고) 그래서 내 삶에 속한 이들이 함께 나눌 작은 기쁨이 많기를(가까운 이들에게 인색하게 굴지 말고 잘하자) 바란다. 그러니 나에게 노련이란 상실의 의미이기보다 완성의 의미다.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
그래서 마침내 내 삶이 한 줄의 아름다움 유언이고 유산이 되기를 바란다. (208쪽)
그럼에도 나를 어딘가로 움직이게 하고, 다시 설 수 있도록 일으켜 주었던 말들은 언제나 나를 잡아끄는 말이 나니라 나를 안아주는 말이었다.(20쪽)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경험, 결과를 담보하지 않는 순수한 몰입, 외부의 반응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 이것이 삽질의 조건이다. 실컷 빠져들 만큼 재밌다는 점이 놀이하고도 닮았다. 이게 얼마나 재미있는지는 직접 해봐야 안다. 구경꾼은 절대로 그 맛을 알 수 없다.(30쪽)
언젠가 나도 내가 스며들고 싶은 그런 완벽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찾을 수 있을까. 하스카프의 인생은 자신의 바람대로 완성되었다. 고작 벽이나 되려고 집도 가족도 다 떠난 거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이렇게 되물을 수 있겠다. 사는 동안 그 속에 스며들고 싶다고, 하나가 되고 싶다고 간절히 느낄 만큼 완전한 것을 만나본 적이 있느냐고. 그런 것을 찾을 수 있다면 그만한 기쁨은 없을 것 같다.(43쪽)
세상 끝은 어딜까. 지도상의 가장 먼 곳은 아닐 것이다. 세상 끝에는 타인들이 있다. 타인의 마음에 닿는 일이야말로 어쩌면 세상 가장 먼 곳까지 가보는 일이다. 우리가 문학을 통해 느끼는 감동의 기저에는 언제나 하나의 질문이 있다.
‘나는 너를 이해할 수 있는가?’
나는 스스로 고독하게 살기를 선택했다. 내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서 조금 외롭게 보내고 있다. 외롭기 때문에 자유롭고 고요하며 느슨하게 흘러가는 시간은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나를 지키고 채워준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세상과 연결된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세상 속에서 내가 무엇이 되고 어떤 것을 해낼 수 있는지도 알고 싶다. 그러기 위해 읽고 쓴다. (51쪽)
관계에 대해 생각할 때 나는 사람 인人자를 떠올린다. 홀로 설 수 없어서 기댄 두 사람의 형상을 빗대어 만들었다는 이 글자를 보면 궁금하다. 삶의 기본값은 ‘함께’인가. 그러기에 인생은 너무 길고 각자의 삶은 너무나 다르지 않은가. 서로 어깨를 두르거나 손을 잡고 함께 걸어도 좋지만 우선은 혼자 잘 서야 하지 않는가. 나에게 사람인의 두 획은 넓게 벌린 발이다. 씩씩하게 걸어가는 한 사람의 다리 말이다. 우리는 각자의 길을 걷다가 가끔은 누군가를 만나 함께 걷거나 서로의 손을 잡아줄 수 있다. 그런 시간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나도 안다. 그러나 기왕이면 혼자서도 잘 걷는 길이면 좋겠다. 좋은 사람들이 어딘가에서 나타났다가 또 어딘가로 사라지더라도, 우선은 혼자서, 두 발로, 씩씩하게 걷고 싶다.(70쪽)
여전히 나는 작은 것을 발견하는 데에는 소질이 없다. 그래서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우리가 먼 세계에서 떠밀려 온 저마다의 섬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섬에 아직 내가 찾지 못한 작고 아름다운 것들이 숨어 있다는 것을. 부디 작은 것들을 지켜주는 신들이 내가 그것을 찾아낼 때까지 떠나지 않고 내 곁에 머물러주기를 바랄 뿐이다.(94쪽)
‘우리’ 밖에 있는 존재들은 쉽게 배척된다. 울타리 밖에 있는 이들의 상처나 억울함, 슬픔과 죽음은 공동체 구성원에게 고려의 대상이 아닐 때가 많다. ‘우리’의 안과 밖을 구분하는 담은 견고하고 높아서 일단 한 번 만들어지고 나면 좀처럼 허물 수가 없다. 그러니 방법은 하나뿐이다. 누군가 문을 여는 것.(142쪽)
그래도 속절없이 마음이 무너지면 나는 세상에 구멍이 있다고 큰소리로 말하는 이야기들을 읽는다. 괜찮다고 말하지 않는 이야기들, 너무 쉽게 타협하지 않는 이야기들 말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든다. 나에게 이 종이비행기들이 없었더라면 얼마나 외롭고 슬펐을지, 괜찮지 않아도 괜찮을 수 있는 마음을 가지기가 얼마나 어려웠을지 말이다.((164쪽)
두 그림책 모두 마지막 세 장면에서 작가는 글을 생략하고 그림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이야기의 결말은 두 주인공이 선택한 삶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가 빠진 동그라미는 콧등에 나비를 목말 태우고 가다가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사라진다. 작은 동그라미는 저만치 앞서가던 큰 동그라미를 만나고 둘은 나란히 구르다가 사라진다. 어떤 삶은 빈틈에서 완성된다. 누군가에게 함께란 각자의 속도로 나란히 굴러가는 일이다.(174쪽)
노인이 된다는 건 가진 것들 가운데 많은 것, 건강이나 직장, 돈, 열정, 꿈, 가능성이나 희망 따위를 잃어가는 일일 것이다. 관계에서마저 점점 수축과 상실이 반복된다. 그럼에도 내가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그건 노년에나 가서야 가능하지 않을까. 더 유연한 사람, 덜 편협한 사람, 더 성실한 사람, 덜 후회하는 사람, 더 지혜로운 사람.(20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