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라는 세계』(김소영)

by 진아

섬세하고 다정하다. 친절하고 따스하다. 권위적이지 않고 권위 있다.

『어린이라는 세계』에서 받은 느낌이다. 어린이 책 편집자로 오래 일하다 지금은 어린이 독서 교실의 선생님인 저자가 그린 어린이라는 세계. 그 세계는 결코 작지 않았고, 얕지 않았다.

지난 5년 동안, 아이를 낳고 키우며 얻은 귀한 깨달음들이 있다.


아이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아이는 그 자체로 이미 온전한 존재다.

부모(혹은 어른)와 아이의 관계는 결코 일방적일 수 없다.

아이의 몸이 작다고 해서 마음까지 작은 것은 아니다. (때론, 아니 꽤 자주 아이의 마음이 어른의 그것보다 더 넓다.)

부모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보다 아이가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이 때론 더 깊다.

아이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지만 대체로 이미 다 알고 있다.

어른이 아이에게 배울 점이 더 많다.


내가 5년간 몸소 깨달은 바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책이었다. 부모의 시선이 아닌, 제삼자의 시선으로 그린 책이라 신선했고 덕분에 더 설득력이 있었다. ‘내가 키워보니 그렇더라’가 아니라, 진심으로 아이들과 소통하며 어린이의 세계를 들여다보려는 노력을 기울인 ‘어른’의 이야기라 더욱 와닿았다.


아이를 키우며, 세상이 얼마나 어린이들에게 가혹한지 자주 느꼈다. 가장 안전해야 할 스쿨존에서 교통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노 키즈존이라는 이름으로 어린이를 대놓고 거부하는 식당과 카페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범죄가 끊이지 않고. 어린이라는 세계를 가까이에서 마주하기 전에는 미처 관심 두지 않았던 일들이었다. 엄마가 되고 보니, 이 험한 세상에 과연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이 옳은 선택이었나 되묻게 되는 일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아이를 둘이나 낳았고, 두 아이 모두 이제 제법 어린이 테가 난다. 두 아이가 아기에서 어린이로 자라는 동안, 아마도 알게 모르게 이 책의 저자와 같은 따스한 어른들을 많이 만났을 것이다. 어린이의 세계를 인정하고, 어린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대해주는 고마운 어른들을. 엄마인 나조차도 가끔은 잊게 되는 그 마음을 주는 어른들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그랬기에 오늘 이 순간까지 무사히 두 아이를 잘 키워낼 수 있었으리라.


이 사회에 저자와 같은 ‘진짜 어른’이 많아지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어린이를 대상화하지 않고, 온전한 존재로 대접하는 어른. 어린이와 함께 하며 더 나은 어른으로 성장하는 어른. 어린이의 마음에 쉽게 감동하고, 어린이와 우정을 나누며, 어린이에게 배우기를 주저하지 않는 어른. 한때는 우리도 모두 어린이였음을 잊지 않는 어른.

참 어른스러운, 그런 어른.




어린이의 허세는 진지하고 낙관적이다. 그래서 멋있다. 결정적으로 그 허세 때문에 하윤이가 옥스퍼드(또는 케임브리지)에 갈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바다 건너까지 유학을 가겠는가. 어린이의 ‘부풀리기’는 하나의 선언이다. ‘여기까지 자라겠다’고 하는 선언.(28쪽)

어린이는 착하다. 착한 마음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어른인 내가 할 일은 ‘착한 어린이’가 마음 놓고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나쁜 어른을 응징하는 착한 어른이 되겠다. 머리에 불이 붙고 속이 시커메질지라도 포기하지 않겠다. 이상한 일이다. 책은 내가 어린이보다 많이 읽었을 텐데, 어떻게 된 게 매번 어린이한테 배운다.(37쪽)

하지만 모든 무서운 일이 가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가, 청소년이, 어른이 ‘여성’이기 때문에 무서워하게 되는 그 많은 일들이 모두 그렇다. 그런 무서움은 아무런 가치가 없을 뿐 아니라 세상을 좀먹고 무너뜨린다. 우리는 어린이가, 여성이 안전을 위협받는 세상에서 살게 할 수 없다.(53쪽)

어린이를 ‘열 살’로 본다고 해도 3학년은 3학년이다. 그래도 나는 되도록 학년 대신 나이로 생각하고 싶다. 그러면 어린이의 성장을 조금 더 넓은 의미에서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몇 학년’ 대신 어린이 자신을 기준으로 이전보다 나아갔는지 뒷걸음쳤는지 살피려고, 성취나 완수보다 과정을 한 번 더 격려하려고, 양이나 점수로 드러나지 않는 성장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나 자신이 다짐하게 된다. 그럴 때 어린이를 더 잘 도울 수 있다.(79쪽)

사람들이 각자 자기 방식으로 살아가는 우주는 활기차다. 서로 달라서 생기는 들쭉날쭉함이야말로 사무적으로 보일 만큼 안정적인 질서다. 그런 우주 속에서 살아간다는 게 나는 안심이 된다. 우주가 우리 모두를 품을 수 있을 만큼 넓다는 사실도. (92쪽)

어린이와 나 사이의 우정에 대해서는 더 생각해 봐야겠지만, 사랑에 대해서는 답이 이미 나와 있다는 것이다. 내가 사훈이니 뭐니 하며 재는 동안에 사랑은 이미 흐르고 있었다. 어린이로부터 내 쪽으로. 더 많은 쪽에서 필요한 쪽으로.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내 마음에 사랑이 고여 있을 리가 없다. 모두 너무 보고 싶다.(157쪽)

어린이에게 존댓말을 써 보면 자기 목소리가 얼마나 어른스럽게 들리는지 알게 된다. 의외로 반말을 쓸 때보다 대화의 분위기도 훨씬 부드러워진다. 어린이를 존중한다는 의지가 명확히 표현되는 순간, 어른의 여유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기 때문이다.(194쪽)

사회가, 국가가 부당한 말을 할 때 우리는 반대말을 찾으면 안 된다. 옳은 말을 찾아야 한다. 우리가 사회에 할 수 있는 말, 해야 하는 말은 여성을 도구로 보지 말라는 것이고, 아이를 낳고 키우기 좋은 세상을 만들라는 것이다. 우리 각자의 성별이나 자녀가 있고 없고가 기준이 될 수 없다. 우리가 어린이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은 어린이 스스로 그렇게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약자에게 안전한 세상은 결국 모두에게 안전한 세상이다. 우리 중 누가 언제 약자가 될지 모른다. 우리는 힘을 합쳐야 한다. 나는 그것이 결국 개인을 지키는 일이라고 믿는다.(2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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