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선이 다르다구요?

by 진아

다섯 살 사랑이는 하루 종일 논다. 어린이집에서도 집에서도 밖에서도 안에서도 틈 없이 놀고 또 논다. 아마 사랑이가 하루 중 가장 많이 하는 단어를 고르자면, "엄마"와 "아빠" 그리고 "놀자"일 것이다. 다섯 살이 놀고 또 노는 게 당연한 것 같지만, 또 당연하지 않기도 한가 보다.

다섯 살이 놀지 않으면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까.




최근에 길거리에서 나눠주는 샘플 학습지를 받아왔다가 사랑이랑 놀이 삼아해 본 적이 있었다. 의외로 사랑이가 무척 좋아하기에 순수한 호기심으로 학습지 상담을 받아보았다. 학습지를 만드는 회사는 왜 이렇게 많으며, 프로그램은 또 얼마나 다양한지. 가까운 곳에 센터가 있는 학습지 회사에 전화를 걸어 상담 요청을 했더니, 지역 담당자를 연결해주었다. 근처라면 방문 상담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해서 얼떨결에 센터 사무실에 가보았다.


한글, 수학, 영어는 기본이고 독서, 상상력, 창의력, 한자, 과학 등 수많은 프로그램이 있었다. 스마트 매체에 익숙한 아이들을 겨냥한 패드 수업도 많았다. 5세부터 유치원에 입학할 수 있으니 5세는 그렇다 치더라도, 무려 3세부터 할 수 있는 학습지도 있었다. 스티커 붙이기나 크기 길이 등을 비교하여 색칠하는 정도의 활동이었지만, 아무튼 3세부터 할 수 있는 학습지가 따로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나의 상담 목적은 어떤 학습지가 있는지 구경이나 해보자는 것이었는데, 상담센터의 실장님은 적극적인 판촉활동을 펼치셨다. 우리 집에 세 살, 다섯 살 두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시자마자, 순식간에 두 아이의 학습 계획을 세워주셨다. 특히 패드 수업을 강력하게 추천하시며, 3세는 몰라도 5세에는 시작해야 한다는 은근한 압박도 잊지 않으셨다. 많은 아이들이 5세쯤에는 학습지를 시작한다는 말로 엄마의 불안을 자극하는 것도.


고민해보겠다는 말을 남기고 센터를 나섰다. 학습지를 하려는 마음으로 간 것도 아니었으면서, 휘황찬란한 학습지를 보자 슬쩍 욕심이 났다. 선생님은 오시지 않고 학습지만 받아서 내가 직접 사랑이와 해보면 어떨까, 그런 생각도 했다. 스마트폰을 거의 보여주지 않는 터라 패드 수업은 전혀 생각이 없었지만, 학습지만 받는 것은 괜찮을 것도 같았다. 선생님이 오지 않으면 공부하는 것 같지도 않을 텐데……. 나랑 둘이 놀이하듯 하면 재밌지 않을까, 괜스레 마음이 복잡했다.

아파트 단지를 몇 바퀴 돌았다. 걷고 또 걸었다.


지금은 놀이처럼 시작한다고 하더라도, 복직 이후에 그 마음을 유지할 수 있는가.

매주 집 앞에 놓일 학습지를 하루 이틀 미루지 않기 위해 원하지 않는 아이를 자리에 앉히지 않으리라 다짐할 수 있는가.

사랑이의 일과에 학습지를 하는 시간이 추가된다면, 줄어드는 놀이 시간을 채울 다른 방법이 있는가.

한글을, 셈을, 책 읽기를, 상상력을, 창의력을, 꼭 학습지로 접해야 하는가. 그게 최선인가.


생각할수록 답은 분명해졌다. 모든 질문의 답은 하나였다.

“아니다.”


그날 오후, 상담센터의 실장님은 잊지 않고 전화를 하셨다.


“사랑이 어머님, 고민 좀 해보셨어요?”

“아, 네. 고민해봤는데 안 하려구요.”

“(의외라는 듯) 네? 다섯 살 정도면 많이들 하세요. 여섯 살에는 한글 떼는 아이들도 많구요. 이제 슬슬…….”

“많이들 하시겠지만 사랑이에게는 안 맞을 것 같아서요. 다음에 꼭 필요할 때 연락드릴게요.”

“패드 수업은 놀이처럼도 할 수 있고, 어머님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선생님 대신 어머님이 직접 하시면 학습지만 받아보실 수도 있는데요.”

“네. 그런데 학습지를 하면 아이가 충분히 놀지 못할 것 같아서요. 말씀 감사합니다.”





신념을 지키는 일에는 잦은 유혹이 따른다. 그것이 아이의 교육에 관한 일일 때는 더 쉽게 팔랑귀가 된다. 겨우 다섯 살인 사랑이의 친구 중에 누군가는 벌써 숫자를 백 단위까지 읽는 아이도, 한 자릿수 더하기를 하는 아이도 있다. 한글 자음과 모음을 구분할 줄 알거나, 자음 모음의 이름을 줄줄 읊는 아이도 있다. 알파벳을 읽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영어 단어를 보고 소리 내어 읽는 아이도, 가벼운 영어회화를 하는 아이도 있다. 학습지 선생님과 일주일에 한두 번 공부를 하는 아이도 있고, 5세부터 유치원에 다닌 아이들은 이미 유치원에서 기본적인 학습 활동을 시작하기도 했다.


사랑이는,

한글 자음 모음이나 통글자를 읽을 줄은 몰라도 제 이름을 따라 써보려 애쓴다.

전보다 훨씬 다양한 색깔을 이용해 색칠 놀이를 한다.

어린이집에서 배운 동요의 가사를 잊지 않고 기억했다가 집에 와서 불러 준다. (최근에 도라지꽃이라는 노래를 불러주던데, 내가 알던 도라지꽃이 아니었다. 노래가 너무 좋아서 따라 부르다가 혼났다. 가사 틀린다고...)

색종이를 세모나 네모 모양으로 반 접을 때 선에 잘 맞추어 접는다. 간단한 비행기 접기 정도는 보여주면 곧잘 따라 한다.

음절의 의미를 인지하고 ‘000 자로 시작되는 말은’ 노래를 부르면, 몇 단어를 찾아낸다.(바바바 자로 시작되는 말은, 바다, 바지 ♪♬)

동음이의어를 곧잘 찾는다. (“엄마, 우리 몸에도 배가 있고, 먹는 배도 있고, 물에서 타는 배도 있네”)

매일 밤 잠들기 전 책을 예닐곱 권을 읽는다.

잠들기 전 20분 정도 어린이집에서 친구들과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한다.

등원 준비를 할 때 스스로 오늘 입을 옷을 찾아와 다 입는다.

어린이집에서 가장 친한 친구가 있지만, 놀이를 할 때 두루두루 어울린다.

정해진 규칙을 잘 지키고 친구들에게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감기에 걸리지만 않는다면) 매일 하원 후에 놀이터에서 한두 시간씩 자유롭게 논다. (도토리 줍기, 비비탄 줍기,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술래잡기, 얼음땡, 신발 멀리 던지기, 킥보드 타기……)



무엇을 더 바란단 말인가. 다섯 살이, 이토록 잘 자라고 있는 너에게.




누군가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출발선이 달라.”


영어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과 일반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

5세에 이미 한글을 뗀 아이들과 7세까지도 한글을 못 뗀 아이들.

유치원을 마치고 학원에 가는 아이들과 놀이터에 가는 아이들.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잡고 공부를 시킨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


출발선이 다르다고 했다. 부모로서의 역할이 마치 정해진 출발선에 아이들을 잘 세워주는 거라는 듯이.


출발선이 있다면 목적지가 있을 것이다. 출발선이 다름을 걱정한다는 것은, 같은 목적지를 두었을 때만 유효한 말이다. 목적지는 어디인가. 특목고? 소위 말하는 일류 대학? 좋은 직장?


좋은 학교, 좋은 직장이 정말 삶의 목표일까. 누구나 원해야 하고 이루어야 하는 꿈이어야 할까. 그렇다면 '좋은'의 기준은 무엇일까. 서울대에 가면 행복해질까. 의사가 되면 행복한 삶이 보장될까. 그렇다 하더라도 모두가 그것을 목표로 살아가는 것이 과연 타당한 일일까. 적어도 나의 판단으로는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나의 기준에서 출발선이 다르다는 말은 틀렸다.


아이는 태어나는 순간, 자기만의 출발선에서 이미 생을 시작했다. 속도는 상관없다. 제가 버거운 순간에는 쉬어갈 것이고, 뛰고 싶은 순간에는 달려 나갈 것이다. 나의 역할은 의심 없이 기다려주는 것이다. 자기 생의 출발선에서 이미 출발한 아이를 애써 다른 출발선 앞에 데려다 놓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는 저마다의 고유한 삶이 있다. 나의 두 아이가 자신만의 고유한 삶을 살아가기를. 누군가와 비교하며 자신을 높이고 낮추지 않기를. 스스로의 삶을 사랑하며 자기만의 속도를 잃지 않고 뚜벅뚜벅 생의 한가운데로 걸어 나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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