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무사히 잘 보냈다는 안도감과 다음날 아이들이 등원한 후 주말 내내 한 번도 펴보지 못한 책들을 읽을 생각에 들뜬 마음이 교차하던 그때.
낮잠을 건너뛴 아이들을 일찍 재운 뒤, 남편과 피자 한 판을 시켜놓고 배달을 기다리던 그 순간.
바로 그 타이밍에.
안방에서 격한 기침 소리와 함께 울음소리가 울렸다. 깜짝 놀라 방문을 열어보니, 봄이가 앉은 채로 거친 기침을 뱉으며 울고 있었다. 기침 소리를 자세히 들어보니 잠결에 콧물이 목 뒤로 넘어가서 갑자기 기침이 나온 것 같았다. 놀란 봄이를 안심시키고 따듯한 물을 한 모금 마시게 한 뒤 자리에 눕혔으나, 아이는 많이 놀랐는지 쉽게 다시 잠들지 못했다. 결국 아이를 안고 거실로 나와 별도 보고 달도 보고, 그래도 안 되어서 아기 때 쓰던 아기띠까지 꺼내 품에 안아주었다. 그제야 조금 진정이 되는지 다시 누워서 잘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아이를 눕히고 곁에 누워 조금 토닥거렸더니 이내 다시 새근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사이 배달된 피자는 식을 대로 식어 아무런 맛이 없었으나, 왠지 긴 밤이 될 것 같아 억지로 두 조각을 밀어 넣었다. 급하게 양치질을 하고 나오니 봄이가 좀 전과 똑같이 기침을 하다 깨서 울고 있었다. 오직 '엄마'만 찾아대는 아이를 안고 나와 다시 물을 한 모금 먹이고, 그러니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해서 화장실에 데려갔다 나온 뒤 아기띠에 안아 진정시켰다. 아이를 다시 재운 뒤, 오늘 밤 몇 번이나 더 이렇게 깨게 될까 생각하며 이른 잠을 청했다.
각오했던 대로, 봄이는 밤새 세 번을 더 그렇게 울면서 깼다. 때마다 아이를 안고 거실로 나왔고 약간 진정시킨 후에 다시 자리에 눕혔다. 아침이 되어 아이의 상태를 보니 기침도 콧물도 밤새 심해져 있었다. 일요일 오전에 맑은 콧물이 아주 약간 나오긴 했어도 종일 괜찮았는데 밤 중에 이렇게 급격히 상태가 나빠지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누룽지를 묽게 끓여 두 아이의 아침을 먹인 후, 첫째 사랑이를 등원시키고 바로 소아과에 갔다. 평소와 달리 의사의 청진이 꽤 길어졌다. 배와 등을 차례로 청진한 의사는 오른쪽 폐 소리가 좋지 않다며, 기관지염에 폐렴 증상이 조금 있으니 열이 나는지 잘 체크하라고 했다. 혹시라도 탈수가 오지 않도록 잘 먹이고 푹 쉬게 하라는 말도 덧붙였다.
의사의 우려 섞인 말이 무색할 만큼, 집으로 돌아온 봄이는 잘 먹고 잘 놀았다. 거친 기침을 뱉을 때마다 마음이 무너져 내렸지만 아이 스스로 잘 이겨내고 있으리라 믿었다. 오랜만에 엄마와 집, 장난감, 블록까지 모든 것을 독차지한 아이는 도리어 아픈 것을 즐기는 듯 보였다.
“엄마, 오늘 아파서 어린이집 안 가니까 너무 좋다.”
“오빠 없으니까 좋다. 편안해.”
“엄마랑 둘이 있으니 행복해.”
“엄마 너무 보고 싶어. 얼굴 좀 보자.” (잘 놀다가 갑자기 눈을 마주치며)
“엄마, 내가 예쁘게 해 줄게. 예쁘게 하자.” (흘러내려온 내 앞머리는 쓸어 넘기며)
스치듯 하는 말들마다 얼마나 마음이 아린지. 봄이에게 오늘의 휴식은 몸을 다스리는 시간이기도 했겠지만, 마음을 다스리는 시간 같기도 했다. 주말 내내 펼쳐보지 못한 책들이 식탁 한 편에 잔뜩 쌓여있었고 쓰지 못한 글들도 머릿속에 가득했으나, 오늘 나의 역할은 ‘엄마’ 하나로 한정 짓기로 했다.
봄이와 둘이서 색칠놀이를 하고,
봄이와 둘이서 점심식사를 준비하고,
봄이와 둘이서 소꿉놀이를 하고,
봄이와 둘이서 꼭 끌어안고,
봄이와 둘이서 사랑한다고 말하고.
겨우 네 시간쯤이었지만, 봄이와 살을 맞대고 마음을 어루만졌다. 오후가 되자 콧물은 여전히 줄줄 흘렀지만, 기침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잘 먹고 푹 쉬며 약도 챙겨 먹어서였겠지만 왠지 오전 내내 저와 나 둘이서 나눈 마음이 한몫했을 것 같았다. 그랬으면 좋겠다는 바람인지도 모르지만.
낮잠조차 자지 않고 잘 놀던 봄이는 여덟 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꿈나라로 갔다. 오늘 밤은 또 어떨지 모르지만, 잠들기 전 컨디션만 생각했을 때는 어제보다는 나으리라. 잠든 아이의 작은 몸에 이불을 살짝 덮어주고 조용히 거실로 나와 식탁에 앉았다. 못 읽은 책도 읽고 오늘의 마음도 기록하기 위해서. 그러고 보니 '엄마'로 한정시키려던 역할 계획이 봄이의 이른 수면 시간 덕분에 다시 '나'로 확장되었다.
‘엄마’의 삶은 나의 삶을 내 계획대로 살 수 없게 할 때가 많다.
아이들은 예측하지 못하는 순간에 아프고 다치고 울고, 때마다 엄마를 필요로 한다.
역설적이게도, 그래서 엄마라는 삶은 축복이기도 하다.
나를 필요로 하는 아이들 곁에 머무른 날이면, 아이들은 필시 덜 아프고 덜 울고 덜 힘들어한다. 나란 인간의 필요를 가장 확실하게 느끼게 해주는 존재가 바로 아이들이다.
계획이 모두 틀어진 월요일, 아마도 이번 주의 계획을 통째 다음 주로 미뤄야 할지도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