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낮에 혼자 삼겹살을 구웠다.

by 진아

언젠가부터 점심은 대충 때우는 끼니가 되었다. 학교에서 근무할 때만 하더라도 점심은 가장 잘 챙겨 먹는 한 끼였다. 갓 지은 밥에 따뜻한 국, 세 가지 이상의 반찬이 매일 다르게 제공되는 급식은 그야말로 최고의 한 끼였다. (모든 학교 급식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휴직 전 근무하던 학교는 급식이 참 잘 나오는 학교였다.) 대단한 반찬이 아니더라도 갓 만든 음식은 온기만으로도 군침이 돌았다. 심지어 그것을 매일 점심때마다 받을 수 있었다니. 영양사 선생님, 조리사님 이제와 새삼 모두 감사합니다!




첫째가 9개월에 접어들면서 출산휴가를 썼다. 신랑이 출근하고 혼자 남은 집에서 만삭의 몸으로 점심을 챙겨 먹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도 그때는 뱃속의 아이를 생각하며 잘 먹으려고 노력했다. 새 반찬을 만들지는 못해도 따스히 지은 밥과 냉장고 속 밑반찬을 골고루 챙겨 먹었다. 그러다 첫 아이를 낳고 두세 시간 간격으로 먹고 자는 아이를 돌보면서 점심은 없는 끼니가 되었다. 중간중간 허기가 질 때마다 손에 잡히는 것들을 먹었다. 빵, 과자, 과일 등이 대부분이었다.

첫째가 15개월이 되었을 때 둘째를 임신했고 갑작스럽게 6개월 복직을 하게 되었다. 다시 시작한 학교생활은 따뜻한 점심을 보장해주었다. 첫째를 봐주기 위해 친정엄마가 우리 집에 몇 달간 머무른 덕분에 삼시 세끼를 잘 먹었다. 그러나 둘째의 출산 즈음 학교는 다시 휴직에 들어갔고, 엄마는 친정으로 내려갔으며, 나의 점심은 다시 일상에서 사라졌다.


대충 때우는 것도 하다 보니 익숙해져 한 끼를 제대로 먹지 않아도 별 아쉬움이 없었다. 오히려 주말이 되어 삼시 세끼를 챙겨 먹는 것이 속에 부담이 될 정도였다.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몸의 허기가 아니라 마음에 허기가 지기 시작한 것이다.


나를 돌보지 않는 내 마음에 허기가 졌다.




요리를 못하지만, 어떻게든 애를 써서 두 아이와 남편의 식사를 준비했다. 주말이면 끼니마다 하나라도 매번 다른 찬을 만들었다. 서툰 요리 실력에 주방이 엉망이 되더라도 식구들의 끼니를 거르게 하지 않으려 때가 되면 냉장고를 뒤지고 가스레인지에 불을 켰다. 따뜻한 요리가 제일 맛있는 요리라는 생각에 냉장고에 들어간 반찬은 가능한 한 다시 내지 않았다. 아침에 끓인 국이 남아 있어도 점심에는 새 찌개를 끓였다.


그러다 월요일이 되어 두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고 남편이 출근을 하고 나면 두어 시간쯤 버티다 라면을 끓였다. 냉동실에 남아 있는 호빵을 데워 먹거나 떡을 녹여 먹었다. 어떤 때는 그조차 귀찮아서 커피 몇 잔을 연이어 마시는 것으로 점심을 때우기도 했다. 아주 가끔 밥솥에 밥이 남아 있으면 냉장고에 넣어둔 반찬을 꺼내 밥을 먹긴 했지만, 밥이 없을 때 새 밥을 하는 일은 결코 없었다. 혼자 먹는 끼니에 그다지 열정을 쏟고 싶지 않았던 건지, 그럴 에너지조차 없었던 건지.

며칠 전 점심, 그날도 어김없이 라면을 끓이려고 꺼내는데 문득 전날도 라면을 먹었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전전날은 점심에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몇 년을 그래 왔는데, 왜 갑자기 그게 서러웠는지 모르겠다. 글에는 나를 사랑한다고, 나를 아낀다고, 나를 생각한다고 잘도 쓰면서 내 몸은 완전히 방치하고 있었다. 혼자 먹는데 새 밥은 무슨, 혼자 먹는데 반찬은 무슨, 혼자 먹는데 대충 먹으면 되지 요리는 무슨……. 오래도록 해온 그 생각에 균열이 일어났다.

한 번 일어난 마음의 허기는 몸의 허기와 비할 수 없을 만큼 강력했다.


그날 점심,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나를 위해 대낮에 삼겹살을 구웠다. 그 삼겹살은 아이들을 등원시켜놓고 저녁 장을 보러 갔다가, 삼겹살을 특히 좋아하는 첫째 아이를 위해 사둔 것이었다. 냉장고에 들어있는 고기를 보는 순간, 오늘 점심은 좀 제대로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있는 집안에 고기 냄새가 퍼지니 기분이 묘했다.


삼겹살에 상추쌈에 볶은 김치까지. 아주 오랜만에 제대로 된 점심식사를 했다. 대충 때우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천천히, 꼭꼭 씹어 먹었다. 대충 먹었으면 설거지거리도 거의 없었을 텐데, 제대로 먹은 덕분에 설거지거리도 꽤 쌓였다.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집안 가득한 고기 냄새를 빼기 위해 창문을 열었더니 찬 공기가 훅 밀려 들어왔다. 찬바람을 맞으며 식기세척기를 돌리고 물걸레질을 했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 몰려왔다.

혼자 먹는 점심을 제대로 챙겨 먹었다고, 겨우 나에게 밥 한 끼 해 먹였다고, 나를 대접한 느낌이 들었다. 허기졌던 마음에 포만감이 들었다.


그날 이후, 자주 점심때 새 음식을 준비했다. 굴 미역국을 끓였고, 김치찌개를 끓였다. 고기를 구웠고 만두를 삶았다. 하는 사람도 나, 먹을 사람도 나. 여전히 가끔은 귀찮은 마음에 라면 봉지를 집어 들지만, 횟수는 현저히 줄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몰랐다. 대충 먹어도 나를 소홀히 한다는 느낌이 없었고, 잘 챙겨 먹어도 나를 대접한다는 생각이 없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보니 확실한 비교 대상이 생겼다. 남편과 아이를 챙기는 내 마음과 나를 챙기는 내 마음 사이에 간극이 너무 컸다. 나를 돌보지 않는 마음에는 내가 가족들을 돌보는 것처럼 가족들이 나를 돌봐주기를 바라는 욕심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나를 돌보는 일은 나에게 부여된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는 것을. 나는 마지막까지 변하지 않을 나란 존재의 보호자임을.


우리가 이렇게 생에 한 번뿐인 눈부신 반짝임들을 놓치지 말았으면 좋겠다. 우리 앞에서 연주되는 생의 아름다움을 경험할 이 순간은 오직 한 번 뿐이니, 세상이 목말라하는 것들을 찾기 위해 부디 유행이나 대세를 따라가지 않기를. 다만 자기 안의 목마름을 세상의 목마름과 합치시킬 수 있도록 끊임없이 나의 열정과 세상의 허기를 일치시키는 마음공부를 게을리하지 말기를.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정여울)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생에 한 번뿐인 12월 10일의 점심 식사를 준비해야지. 마음공부하는 심정으로 냄비에 물을 올리고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야지.


그래서 오늘 점심에는 뭘 해 먹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