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만에 복직을 준비 중입니다.

by 진아

2022년 2월 28일을 기점으로 5년간의 육아휴직이 끝이 난다. 5년간의 휴직 끝에 돌아갈 직장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일과 가정을 함께 지키기 어려운 사회에서, 5년 동안 가정을 돌본 뒤 직장으로 복귀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이다.


아이당 3년간의 육아휴직이 보장되는 덕분에 젖먹이 아이를 떼어놓지 않고 휴직을 이어 할 수 있었다. 내 손으로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재웠다. 실로 엄청난 일이었다. 주변에만 봐도 아이를 낳으면서 자연스럽게 직장을 그만둔 친구들이 숱하고, 일을 그만두지 않더라도 1년쯤 아이를 키우다 복직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나처럼 내리 5년 동안 육아휴직을 쓰는 경우는 흔하지 않았다.


휴직이 길어지자 누군가는 우스갯소리 하듯 ‘돈이 많냐’고 물었다. 외벌이로 아파트 대출금을 감당하며 두 아이를 키울 수 있냐는 질문이었다. 다행히 남편이나 나나 씀씀이가 크지 않았고, 남편은 혼자 버는 돈으로 요모조모 살림을 꾸리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 돈보다 중요한 것은 남편과 나의 가치관이었다. 아이들에게 충분한 돈은 물려주지 못해도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자고 진작부터 마음을 먹었었다. 그래서 지난 5년 내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두 아이를 키웠다.




2주 전에 복직 서류를 제출했다. 그때부터 마음이 복잡했다. 오래 끼고 키운 아이들이라 그런지 떼놓고 나간다니 걱정이 앞섰다. 내년이면 6살이 되는 첫째는 말할 것도 없고, 둘째까지 기저귀도 뗐고 못 하는 말도 없으며 제 밥은 제가 먹고 제 옷도 제가 입는데 괜히 마음이 그랬다. 무슨 일이든 나와 함께 하던 아이들인데, 내년부터는 그러지 못할 거라 생각하니 벌써 가슴이 저릿했다. 나를 애착 인형처럼 끌어안고 자는 둘째는 아침에 일어나서도 꼭 엄마가 안고 거실로 나가 달라고 하는데, 내년이면 아이들이 일어나지도 못한 시간에 출근해야 한다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돌았다.

복잡한 마음을 끌어안은 채, 오늘 복직하게 될 학교에 다녀왔다. 내년도 업무분장에 대한 이야기도 드릴 겸, 인사도 드릴 겸, 겸사겸사해서. 5년 만의 복직이라 그나마 집에서 조금 가까운 학교로 이동할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이전 근무 학교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집에서 1시간 거리인 학교까지 가는데 내년 1년이 더 막막하게 느껴졌다.

아이를 낳기 전의 나는 열정이 차고 넘치는 교사였다. 담임이 학교 업무의 꽃이라고 생각해서 담임을 기피하는 분위기에도 무조건 담임을 하겠다고 나섰다. 수업을 위해 매시간 새로운 활동지를 만들었고, 고등학교에서도 협력학습을 놓지 않았다. 강의식 수업으로 나 혼자 떠드는 수업 대신에 활동식 수업으로 모두가 참여하는 수업을 만들고 싶어서였다. 모두가 하고 싶어 하지 않은 일도 도맡아 했다. 교사 연구회는 물론이고 각종 연수에도 빠지지 않았다. 얼마 전 만난 제자는 내가 써준 생활기록부가 마치 자기에게 쓴 편지처럼 느껴졌다고 말할 만큼, 생활기록부 내용도 한 자 한 자 마음을 다해 썼다.

5년이라는 시간은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더 이상 나는 혼자가 아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도 나를 기다리는 두 아이가 있으며, 두 아이는 여전히 너무나 어리다. 그 말인즉슨 전처럼 일에만 ‘매진’하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두 아이는 언제 아플지 알 수 없고, 코로나 상황에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 언제 갑자기 문을 닫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 몸은 하나인데 학교와 가정이 둘 다 나를 필요로 한다면, 나에게 우선순위는 가정이 될 것이다. 결국 이제는 담임을 맡기 어려울 것이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에너지를 한껏 쏟아 수업을 구성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연구회나 연수는 고사하고, 꼭 해야 할 일에서 실수가 생기지 않도록 모든 에너지를 쏟아야 할 것이다.


내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이미 학교에서는 나의 상황을 알고 있었다. 교감 선생님께서는 “육아시간(단축 근무와 비슷한 개념이다)을 써야 하시나요?”라고 조심스럽게 물으셨고, 그렇다고 답하자 이내 곤란한 표정이 되셨다. 학교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일은 정해져 있고 그 일을 나눠 맡아야 할 교사 정원도 정해져 있는데, 나와 같은 조건의 사람의 복직이 마냥 반갑고 기껍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교감 선생님은 충분히 내 상황과 사정을 고려해보겠다고는 하셨지만 아무것도 장담할 수는 없다고 하셨다. 나 같은 상황의 교사가 어디 나뿐이겠는가. 어린아이를 키우는, 먼 곳에서 출퇴근을 하는 그런 교사가. 결국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을 테니 조금씩 양보하고 때론 누군가가 희생하며 한 해를 또 잘 꾸려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을 피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다만 상황이 여의치 않을 뿐이다. 그 일이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깨는 것이라면 재고해야만 한다.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겠지만, 아마도 그 선을 지키려면 내가 모르는 누군가의 양보와 희생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그게 괴롭다. 나란 존재가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는 존재가 된다는 사실이. 그렇게 자각하게 되는 현실이. 환대받을 수 없는 ‘엄마’의 자리가.

복직 이후에 얼마나 더 자주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할까. 나에게 보장된 법적 휴가가 있어도 그것을 쓰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해야 할까. 내가 휴가를 쓴다면 또 얼마나 많은 동료들에게 민폐를 끼쳐야 할까. 내 일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 나는 또 얼마나 못 자고 못 먹어야 할까.

그나마 아이 키우기 정말로 좋은 직업이라는, 소위 철밥통이라 불리는 나에게도 고민의 무게가 이만큼이니 다른 직업을 가진 엄마들은 어떻게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는 걸까, 싶다. 같은 여자로서 엄마로서, 당신들께 존경의 마음을 놓아드린다. 우리 함께 잘 버텨내자고. 일하는 엄마라는 사실에 죄책감보다 자부심을 가져보자고. 나에게 다짐하듯 당신께도 진심 어린 응원을 전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대낮에 혼자 삼겹살을 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