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직하는 마음

by 진아

오늘 아침의 일상은 평소와 똑같았는데 마음은 평소와 전혀 달랐습니다. 복직을 앞두고 복직예정자 연수와 사전 출근일이 정해지면서, 내일부터는 제가 아이들의 등원을 할 수 없게 되었거든요.

곧 만 5세가 되는 첫째와 갓 만 3세를 지난 둘째를 지난 5년간 단 한 번도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긴 적 없이 키웠습니다. 돌아보니 참 억척스러웠을 만큼, 엄마로서 열심히 살았네요. 가까이 시댁이 있으니 시부모님께나 멀리 있지만 마음은 늘 지척인 친정엄마께 도움을 구할 수도 있었겠지요. 그런데 그걸 못했습니다. 안 했다고 생각했지만 돌아보면 못한 쪽에 더 가까웠어요. 아무리 힘들어도 ‘내 아이들은 내 손으로 돌봐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것이 있었고, ‘내가 돌보아도 이렇게 힘든데 연세 드신 어른들은 얼마나 더 힘드실까’ 싶은 생각도 있었습니다. 어린이집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매일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재우는 일을 오롯이 떠안고 살았습니다.


힘들었다 말했지만, 사실 행복했던 순간이 백만 배쯤은 더 많았어요. 아이가 주는 사랑은 ‘행복하다’라는 단어로 다 표현되지 않는 것들이었습니다.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요. 설명할 수 없는 기쁨, 뿌듯함, 행복감 등이 벅차오른다고 해야 할까요. 감히 ‘이런 행복은 처음이야.’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뭉클한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끝이 나긴 날까 싶던 긴 휴직의 시간 동안, 자주 출근하는 제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깨끗한 옷을 입고, 잘 닦인 구두를 신고, 손질된 머리를 매만지며 차의 운전석에 올라앉는 제 모습을요. 교단에 서서 학생들과 문학작품을 읽고 생각을 나누며,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제 모습도요. 동료 교사들과 학생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수업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신기루처럼 금세 흩어져버렸지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배시시 미소 짓게 되던 모습이었습니다.


그 신기루 같던 꿈은 곧 현실이 되겠지요. 물론 꿈꾸는 것처럼 낭만적일 리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깨끗한 옷, 잘 닦인 구두, 손질된 머리는커녕, 말리지 못한 머리를 털어가며 운동화를 구겨 신고 현관문을 뛰쳐나가야 하는 날이 더 많을 겁니다. 학생들과 문학작품을 나누기는커녕, 생활지도에 찌들어 눈물을 쏟아가며 상담을 해야 할 날들도 많겠지요. 동료 교사와 학생과 수업 이야기는커녕, 적대적 관계가 되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막상 그때가 되면 집에서 아이들과 지지고 볶던 때를 그리워하겠지요?

사실 벌써부터 지나간 시간이 그리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순간이 많습니다. 복직이 까마득했을 때는 그렇게 일을 하러 나가고 싶더니, 막상 복직 날짜가 정해지니 자꾸 마음이 무너져 내립니다. 아이들이 좀 컸다고는 하지만, ‘이 아이들을 두고 내가 일을 하러 가도 될까’ 싶은 마음이 풍선처럼 매일 조금씩 부풀어 오릅니다.



얼마 전부터 탁상 달력에 제가 아침에 일찍 집에서 나서는 날짜를 표시해두고, 매일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사랑아, 봄아, 엄마가 여기 동그라미 한 날짜가 되면 아주 이른 아침에 출근을 해야 해. 너희가 일어났을 때 엄마는 이미 출근을 했을지도 몰라.”

“그럼 우리는 아침에 누구랑 어린이집 가?”

“당분간은 아빠랑 갈 거고, 3월 달부터는 할머니와 함께 갈 거야.”

“엄마는 왜 그렇게 일찍 가야 하는데?”

“엄마 아주 멀리 있는 학교로 가게 되었거든.”


매일 비슷한 말들을 반복하며 하루만큼의 아쉬움과 하루만큼의 슬픔을 차곡차곡 쌓아왔어요. 그리고 어젯밤 잠들기 전,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얘들아, 내일 아침이 우리가 함께 등원할 수 있는 마지막 아침이야. 우리 내일 아침에는 서로 웃을 수 있는 일만 해보자. 짜증도 부리지 말고, 다투지도 말고, 소리도 지르지 말고 처음부터 끝까지 웃으면서 등원하자.”

아이들은 제 말에 ‘엄마 출근하는 거 싫다, 어린이집 안 갈 거다, 엄마랑 같이 가고 싶다……’며 울먹이다 겨우 잠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른 새벽 눈이 떠졌지만, 거실로 나가고 싶지 않아서 제 양쪽에서 잠든 아이들을 번갈아 토닥였습니다. 조금씩 뒤척이던 아이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동시에 제 양쪽 팔을 꼭 잡더니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꼼짝없이 아이들에게 결박되어 꼬박 한 시간을 더 누워 있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지나간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갔습니다.


아이들을 처음 만났던 그 순간부터, 밤잠을 설쳐가며 새벽 수유를 하던 때, 잠들지 못하는 아이를 안고 업어 어르고 달래던 새벽, 아이들이 처음으로 뒤집고 걷고 뛰던 찰나들, “엄마”하고 부르던 첫 목소리, 까꿍 소리에도 까르르 넘어가게 웃던 모습들, 매일 아침 같이 눈뜨고 같이 먹고 같이 놀던 그 순간의 마디마디까지.

한 시간쯤 지나 차례로 잠에서 깬 두 아이를 한 번씩 안아주고 거실로 나와 아침을 먹었습니다. 평소에는 얼른 먹자, 골고루 먹자, 잔소리가 난무하는 아침 식사시간이지만 오늘 아침만은 그러지 말자 다짐했습니다. 덜 먹으면 덜 먹는 대로, 늦으면 늦는 대로 웃으며 식사를 마쳤습니다.


“엄마, 내일 아침에는 엄마 없어?”

“응. 아마도. 엄마가 일찍 나가야 해서 어쩌면 너희들이 일어나기 전에 나갈지도 몰라. 엄마가 살짝 깨워서 인사하고 나갈까?”

“응, 그러면 좋겠어. 인사도 하고 한 번 꼭 안아주고.”

“그래, 그러자. 그럴게. 꼭.”


아이도 내일이면 이 시간에 엄마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손가락을 걸어 약속했고, 평소 같지만 평소와는 다른 아침을 보냈습니다. 이제 스스로 양치도 하고 세수도 하고 옷도 챙겨 입는 두 아이를 보며, 괜히 자꾸 눈물이 날 것만 같아 차가운 물을 몇 잔이나 들이켰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고 등원을 하는 아이들의 뒤를 따르며 이미 지나간, 숱한 아침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어떤 날은 함께 손을 잡고 걸었고 어떤 날은 달리기 시합을 했습니다. 어떤 날은 비가 와서 우산을 나눠 썼고 어떤 날은 바람이 심해 웨건을 태운 채 달려야 했습니다. 어떤 날은 킥보드를 타고 멀어지는 아이들을 뒤에서 따르며 걸었고 어떤 날은 자전거를 탄 아이들 옆에서 “따르르따르릉 비켜나세요~” 노래를 부르며 달렸습니다. 그렇게 함께 하던 등원 길이 별안간 모두 애틋해졌습니다. 그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이만큼 자라난 아이들을 바라보니 애틋함은 사랑으로, 사랑은 뭉클함으로, 뭉클함은 아쉬움으로 마음을 가득 채웠습니다.

어린이집 입구에 도착해서 두 아이를 차례로 꽉 안아주었습니다. 아이들은 여느 때와 같이 씩씩하게 어린이집에 들어갔고, 저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모든 것이 여느 때와 같은데 마음은 왜 이렇게 휘청이는지.


제가 없는 아침 시간에도 아이들은 잘해나가겠지요. 저와 함께 투닥거리던 그 시간들이 아이들의 마음에 모두 남아 있을 테니. 너무너무 잘해나갈 겁니다. 아이들을 믿고, 이제 저도 제 삶 속으로 다시 뚜벅뚜벅 걸어가려 합니다.


오직 ‘엄마’로만 살았던 그 시간 동안, 아이를 키웠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더 많이 자란 것은 저였습니다. 조금 더 나은 어른이 되려고 애썼고,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참 다행입니다. 멈춰있다 생각했던 시간 동안, 사실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었음을 이제라도 깨달을 수 있어서요.


아이들의 등원 길에는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지만,

열심히 사는 엄마가 되어 아이들의 인생길에 좋은 길잡이가 되어주고 싶습니다.

그것이 남은 제 생의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목표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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