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신, 허무하다면.

by 진아

모든 동물은 성교 후에 우울하다.

Post coitum omne animal triste est.


열정적으로 고대하던 순간이 격렬하게 지나가고 나면, 인간은 자기 능력 밖에 있는 더 큰 무엇을 놓치고 말았다는 허무함을 느낀다. (<라틴어 수업> 중)




“나는 요즘 애들 재우고 나면, 별 이유도 없이 허무해. 종일 정신없이 바빴는데도 그러네. 애 둘 챙겨 보내고 집 청소하고 커피 한 잔 마시고 장 봐서 밑반찬 만들고. 그러고 나면 애들 데리러 갈 시간이고 애들 데려와서 간식 챙기고 저녁 챙기고 숙제 봐주고 빨래 돌리고 설거지하고. 그러면 애들 재울 시간이고, 시계를 보면 하루가 다 갔고.”


아이 키우는 엄마들과 대화를 나누다, 누군가 툭 던지듯 내뱉은 말에 갑자기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모두가 한 번쯤은 느껴본 감정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던 이들이 한 마디씩 보탰다.


"그거 우울증의 시초 아닐까?"

"아직 갱년기도 아닌데 우리 왜이러지?"




오직 아이를 키우고 가정을 돌보는 일에 매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나’란 존재는 사라지고 ‘엄마’란 역할만 남았다. 허무할 틈도 없이 바쁘다가도 틈만 나면 허무해졌다. 허무를 채울 길이 없어 맥주를 마셨고, 보란 듯이 허리와 엉덩이에는 군살이 붙었다. 허무함은 더 깊어졌다.

엄마로 살면서 인생의 어느 순간보다 열심히 살았다. 자고 싶은 만큼 자본 적도 없고, 먹고 싶을 때 먹어본 기억도 거의 없다. 내 몫을 소비를 줄여 아이들 몫을 늘였고, 내 시간과 공간을 내어 엄마의 역할을 해냈다. 그러는 동안 품 안에서 커가는 아이들을 보는 것은 더없이 큰 기쁨이었다.


그런데도 자꾸 허무해지는 거였다. 아이들이 자랄수록, 내 손을 조금씩 벗어날수록, 내 도움 없이 해낼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질수록 허무의 깊이가 깊어지는 거였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마음에 기꺼움과 허무함이 공존한다는 사실은 받아들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토록 열심히 살아왔는데, 더할 나위 없이 최선을 다해왔는데. 감히 ‘허무’라니.


모든 동물을 성교 후에 우울하다.

Post coitum omne animal triste est.


라틴어 수업에서 읽은 이 한 문장은 누구의 말보다, 어떤 책보다 큰 위로가 되었다. ‘열정적으로 고대하던 순간이 격렬하게 지나가고 나면, 인간은 자기 능력 밖에 있는 더 큰 무엇을 놓치고 말았다는 허무함을 느낀다.’ 그래서 허무했던 거였구나.


엄마로 사는 동안 ‘나’를 잃어서 허무한 거라 생각했다. ‘나’가 있어야 할 자리까지 ‘엄마’라는 역할에 내어주어서, 그래서 허무한 거라고. 생각의 방향을 바꾸니 ‘허무’가 다르게 읽혔다. 나를 잃어서 허무했다기보다는 그동안 너무 열심히 살아와서 그랬던 거였다.


엄마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했고, 엄마가 되었다. 둘째를 고대했고 감사히도 둘째를 낳았다. 두 아이에게 빈틈없는 사랑을 주고 싶어 잠을 아꼈고, 시간을 쏟았다. 나는 덜 먹어도 아이들은 더 먹였다. 내 몫은 적어도 아이들 몫은 넉넉하게 챙겼다. 참으로 격렬한, 그리고 치열한 5년이었다.


덕분에 두 아이는 아픈 데 없이 잘 자랐고, 세상을 향해 한 발씩 나아가는 중이다. 여전히 아기 같지만, 제 몫을 찾아내고 전에 못하던 것을 해내며 세상과 만나는 중이다. 아직도 두 아이에게는 내 손이 필요하고, 내 마음이 간절하지만 우리는 조금씩 분리될 준비를 하고 있다. 그 사이에서 내가 느낀 ‘허무’함은 최선을 다해 노력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또한 그 달리기 끝에서 느끼는 우울함이나 허망함과 같은 감정들은 결코 부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거기에서 우리는 또 다른 나를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이거다’라고 생각해서 열심히 달려갔다가, 막상 이루고 나서야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은 그게 아니었다는 걸 깨닫기도 합니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에 기뻐하고 슬퍼하는지,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는 달려본 사람만이 압니다. 또 그게 내가 꿈꾸거나 상상했던 것처럼 대단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만큼 불필요한 집착이나 아집을 버릴 수도 있어요. 그만큼 내가 깊어지고 넓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치열하게 달려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공부든 사랑이든, 일이든 무엇이든 간에 그럴 수 있는 뭔가를 만나고 그만큼 노력을 한 다음에 찾아오는 이 우울함을 경험해보기를 바랍니다. 그러고 나면 아마도 또 다른 세계가 여러분 눈앞에 펼쳐질 겁니다. (<라틴어 수업> 137쪽)


오직 엄마로만 살았던 지난 5년을 갈무리하며, 그간 내가 느낀 허무함의 본질을 마주한다. 치열했던 그 시간은 가끔 나를 우울의 문턱으로 데려다 놓았지만, 불행하지는 않았다. 두 생명을 탄생시키고 사람다운 모습으로 길러내는 동안, 전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경험했고 새로운 감정을 마주했다. 왜 허무한가, 왜 우울한가, 끊임없이 고민했고 그러는 사이, 나는 시나브로 깊어지고 넓어졌다.




치열함 뒤에 찾아오는 '허무함', 비단 엄마인 나만 느끼는 감정은 아닐 것이다. 학업의 과정에서, 사회생활 도중에서, 살아가는 동안 드문드문, 누구에게나 찾아드는 감정일 것이다.


혹시 지금 당신의 삶이 ‘허무’하다면,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른 각도에서 삶을 바라보시기를 조심스레 권해드린다. 그동안 정말 열심히 살아왔던 것은 아닌지, 더없이 치열하고 격렬하게 살아낸 것은 아닌지.


어쩌면 당신을 짓누르는 '허무'의 본질은 불행의 출입문이 아니라, 전혀 다른 새 세상의 출입문일지도 모를 일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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