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여전히 가슴이 뛰는 일

by 진아

저는 올해 고등학교 1학년 ‘국어’ 과목을 담당하게 되었어요. 국어교사이니 국어과목을 담당하는 게 당연하다 생각하시겠지만, 요즘 고등학교 국어 교과에는 ‘국어, 독서, 문학, 화법과 작문, 언어와 매체, 심화 국어, 실용 국어, 고전 읽기 등’ 굉장히 다양한 교과목이 있거든요. 저는 그중에서 1학년에 개설된 ‘국어’ 과목을 가르치게 되었어요. 일주일에 2시간씩 총 8반의 수업을 하게 되어서 주당 16차시의 수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외 동아리 활동(2차시)도 수업에 들어가서 전체 수업 시수는 18차시입니다.)


수요일에 개학(1학년이니 입학)을 해서 본격적인 수업은 수요일 오후부터 시작되었어요. 그렇다 보니 지난주 수업은 대부분 오리엔테이션으로 채워졌어요. 일 년 동안 함께 할 아이들과의 첫 수업. 아이들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무척이나 떨리고 긴장이 되었어요. 5년 만에 아이들 앞에 서는 데다가, 일 년을 함께 할 아이들을 만나는 첫날이라고 생각하니 입이 바짝바짝 마를 만큼 떨리더라고요.


본격적인 수업에 들어가면 저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아요. 이야기를 할 틈이 없거든요. 그래서 '첫 수업에서만큼은 아이들의 호기심을 풀어줄 수 있을 정도로 내 이야기를 해도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준비한 것은 진!진!가!(진짜 진짜 가짜)였어요. 저에 대한 정보를 9개 문장으로 주면서, 그중에 거짓 2개를 숨겨두었어요. 아이들에게 거짓이 무엇일지 찾아보라고 하면 아이들은 저와 (저에 대한 정보를 담은) 문장을 번갈아 쳐다보며 가짜를 추리하죠.


대단히 재밌지는 않지만, 그래도 분위기가 조금은 풀어집니다. 저만큼이나 아이들도 첫 수업(심지어 고등학교 입학 후 첫 국어수업)에 긴장을 했을 테니까요. 거짓을 찾고 나면, 제가 제시한 정보들과 관련된 것에 한해 질문을 하라고 해요. 이때 반마다 분위기가 엄청 다른데, 시끌시끌해지면서 저의 사적 영역을 마구 넘나드는 반이 있는가 하면 서로의 눈치만 보며 고요한 반도 있어요. (고요한 반의 경우에는 포스트잇을 한 장씩 나눠주고 질문을 쓰라고 하면 훨씬 가벼운 분위기가 됩니다.)


시끌벅적한 반의 경우에 무조건 나오는 질문이 나이(아이들은 ‘연세’라고 하더군요. 어쩐지 연세라는 말이 너무 낯설었습니다.)와 연애, 결혼에 관한 것입니다. 예전 같으면 그런 건 답 안 한다고 냉정하게 넘겼을 텐데, 이번에는 “첫 시간에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모두 솔직하게 답해주겠다”라고 공표한 터라, 모두 솔직히 대답해주었습니다. 그 이상의 선을 넘는 아이들은 사실 없었어요. 아이들에게 제 사적 영역을 오픈하고 나면, 아이들이 제게 한 뼘 가까워오는 것을 느낍니다. 확실히, 아이들과 친해지기 위해서는 저를 먼저 열어야 하는 것 같아요.


아이들이 질문은 그다지 창의적이지 못해서(^^;;) 금방 끝이 납니다. 그러면 기다렸다는 듯이, “저도 여러분에게 제 얘기를 했으니, 이제 여러분의 이야기도 들려주세요.”라고 말한 뒤 활동지를 나누어줍니다. 자기소개를 쓰자고 하면 모든 아이들에게서 탄식에 가까운 신음이 흘러나와요. 하지만 제가 나누어준 활동지에는 빈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자기소개를 쓸 자리는 세줄 정도밖에 되지 않아요.



아이들에게 자기소개를 쓰라고 하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저를 호구 조사자로 만듭니다. 가족 관계를 소개하고 출신 (중)학교를 언급하고, 좋아하는 과목 혹은 연예인을 밝히는 정도로 끝이 나죠. 사실 처음 보는 선생님에게 무엇으로 자기를 소개하겠어요. 그래서 좀 다른 방식을 적용해보았습니다.


활동지에 ‘밸런스 게임’ 항목을 열다섯 개 넣었어요. 아이들의 취향을 알 수 있는 것들로요. 밸런스 게임은 두 가지의 극단적인 것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게임이에요. 아이들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면서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게 됩니다. 거기서 끝나면 자기소개라 하기 어려우니, 그중에서 진심으로 선택한(‘고를 게 없어서 아무거나 찍었거나, 둘 다 좋아서 아무거나 찍었거나’를 제외한) 항목을 세 가지 이상 고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엮어서 자기소개 글을 쓰라고 했어요.


아이들이 생각보다 더 진지하게 선택을 해서 놀랐고, 여학생과 남학생의 구분 없이 모두 세 줄을 꽉꽉 채워서 자기소개를 써줘서 더 놀랐어요. 제가 예시를 써두고 그것을 참고하라고 했더니, 대부분의 아이들이 잘 써주었더라고요. 아이들이 사각사각 연필 움직이는 소리만 내며 무언가를 쓰고 있는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집중할 수 있도록 음악을 틀어주었는데, 그 음악을 들으며 아이들이 열심히 쓰는 모습을 보니 소름이 돋았어요. ‘아, 예쁘다’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소개를 다 쓴 뒤에는 앞으로의 국어수업에 대한 안내도 해주었습니다. 제가 가장 강조한 것은 제 수업의 브랜드명이라고 할 수 있는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국어수업’을 만들어가자는 거였어요. 제가 앞에서 아무리 많은 것들을 설명한다 해도 아이들은 그걸 다 가져가지 못해요. 아마 극소수의 아이들만이 제 수업을 ‘따라’ 오겠죠. 저는 그런 수업은 할 자신이 없습니다. 일단 수업에서 엎어지는 아이들을 보는 것 자체가 너무 괴로워요. 사지(死地)에 누군가를 두고 도망치는 기분이 들거든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부탁했습니다. 우리 ‘함께’ 가자고요. 모르는 것은 묻고 아는 것은 알려주면서 함께 배워가면 훨씬 더 많이 배울 수 있다고요. 어떤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해주기도 했고, 어떤 아이들은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기도 했어요. 아마 어떤 아이들은 불만을 가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 앞으로는 아이들에게 부탁을 하기도 해야겠지만, 아이들을 설득해야 할 순간도 많을 거예요. 입시라는 제도는 결국 내가 먼저 달려가야 하고, 나 혼자라도 뛰어가야 하는 거라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함께’ 가자니요. 아이들, 특히 상위권 아이들에게는 황당무계한 말이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믿어요. 성적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함께 가면 더 많이 배울 수 있다는 것을요. 학교는 수능시험 점수를 높이기 위한 입시학원과는 달라야 한다는 것도요.




한 시간 수업을 끝내고 교실 문을 열고 나올 때에서야 몸의 긴장이 풀렸습니다. 그걸 지난주에만 여덟 번을 했어요.(1반부터 8반까지요.) 같은 수업을 하고 또 하는 데도 반마다 분위기도 다른 데다, 모두 새로운 아이들이라 그런지 그렇게 긴장이 되더라고요. 그래도 여덟 번의 오리엔테이션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다음 주부터는 본격적인 수업에 들어갑니다. 처음 수업하게 된 단원이 ‘화법(말하기, 듣기)과 작문(쓰기)’ 단원인 터라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해요. 화법과 작문은 아이들의 성취 결과를 눈으로 확인하기가 참 어렵거든요. 단원을 잘 배우고 나면 좀 더 잘 말하게 되어야 하고 잘 쓰게 되어야 하는데, 이건 실천적인 부분이라 참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도 이 아이들과 함께라면 재밌게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니, 잘하고 싶습니다.




활동지 마지막에 ‘국어수업에 바라는 점(혹은 걱정스러운 점)’을 써달라고 했더니 참 많은 아이들이 ‘국어를 잘 못해서 걱정이다’라고 써주었더라고요. 사실 ‘국어’를 못하는 사람은 없어요. 우리는 모두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는 화자들이고, 일상생활에서 말하고 듣고 읽고 쓰는 일에 어려움이 없어요. 정확한 문법을 배우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대부분 알고 있고요. 아이들이 ‘국어를 못한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 ‘국어 시험을 잘 못 친다는 것’이죠. 제가 아이들의 시험 성적을 올려줄 수는 없습니다. 시험은 아이들 스스로 노력하고 애써서 만든 각자의 결과물이니까요. 하지만 아이들이 국어 시간을 즐겁게 느끼고 가치 있게 생각하도록 노력할 수는 있을 것 같아요. 그게 제가 생각하는 국어교사의 진짜 역할인 것 같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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