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며 “얘들아, 안녕" 인사부터 건넨다. 어떤 반은 약속이나 한 듯이 우렁차게 “안녕하세요.” 답하지만, 어떤 반은 대꾸조차 없다. 대꾸가 없다고 해서 기분이 상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마스크 속에서 소리 내어 인사하는 것조차 어색해진 코로나 세대의 단면일지도 모르니까. “인사 좀 해주라.”라고 말하면 몇몇 아이들이 어색하게 “안녕하세요.” 인사를 한다.
아이들이 쉬는 시간 동안 흐트러진 자리를 정리하는 동안, 활동지를 나눠주고 노트북을 연결하는 등 수업 기자재를 준비한다. 어느 정도 자리가 정리되면 본격적인 수업을 시작하기 전, 제일 먼저 출석(이름)을 부른다. 올해는 담임교사가 아니다 보니 아이들과 가까워지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애쓰지 않으면 이름을 외우는 날도 기약할 수 없을 만큼 멀어질 것 같았고. 그래서 올해는 적어도 3월 한 달 간만이라도 매 수업 시간마다 이름을 부르기로 했다. 이름을 부를 때 반드시 진한 눈맞춤을 해달라는 부탁도 했다. 마스크를 쓰고 있다 보니 유일하게 마주할 수 있는 눈이 더없이 귀하다. 아이들은 자기 이름이 불리면 약속대로 진하게 눈을 맞춘다. 감사하게도 아직까지 눈을 피하는 아이는 없다.
혼자만의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들의 이름을 차례로 부르고 나면 교실의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다. 쉬는 시간에서부터 이어진 소란함도 잦아들고, 내가 들어오면서 교실에 내려앉은 약간의 긴장감도 풀어진다. 적어도 한 번 이름을 부르고 시작한 터라, 수업을 하는 동안에 몇몇 이름은 뇌리에 남아 있기도 한다. 그 이름을 기억했다가 나중에 한 번쯤 불러주면 생각보다 아이들이 꽤 놀라며 좋아한다. 수업이 끝남과 동시에 잊힐지라도, 자꾸 부르다 보면 언젠가는 기억에 남으리라 생각하며 자꾸 불러준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만 하더라도 번호를 부르는 선생님이 많았다. 지금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학급당 인원수가 많았던 시절이니, 담임 선생님이 아니고서야 수업에서 만나는 아이들의 이름을 외우는 것이 불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는 학생이었으니, 선생님들의 사정을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다만 번호로 부르시던 선생님보다(아마 그 선생님은 나를 부르려고 번호를 부르신 게 아니었을 것이다. 내가 그 번호의 학생이었을 뿐.), 이름으로 부르시던 선생님을 믿고 따랐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신규 발령을 받았던 학교는 아주 작은 학교였다. 학년당 4학급뿐이라 3개 학년이라고 해도 12 학급뿐이었다. 그때는 전담하던 학년의 아이들뿐만 아니라, 복도를 지나다니며 자주 마주치는 다른 학년 아이들의 이름까지 외웠더랬다. 신규교사의 열정도 한몫했을 테고, 결혼 전이라 모든 에너지가 학교로 쏟아지던 때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의 학교에 발령을 받았던 첫해에 고등학교 1학년을 맡았었다. 당시에는 11개 반이었는데, 무슨 열정이었던지 아님 그런 쪽으로 재주가 있었던 건지, 학년실에서 11개 반 아이들의 이름을 가장 빨리 외운 교사가 되었다. 아마도 ‘국어’는 수업 시수가 가장 많은 과목이다 보니, 다른 과목 선생님들에 비해 아이들을 자주 만나서 그랬던 것 같다. 아무튼 아이들을 이름을 빨리 외우자 아이들의 특성이 더 분명히 눈에 들어왔다. 수업도 좀 더 빨리 수월해졌었다.
5년 만에 복직을 해서 아이들을 만난다. 전과 달리 가정이 생겼고, 학교에 쏟을 에너지는 그만큼 줄어들었다. 담임을 맡지 않으니 학년실(그 학년 담임교사가 모여있는 교무실)에서 근무하지 않아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동료 교사도 없다. 그런데다 아이들과는 마스크에 얼굴을 절반 이상 감춘 채 서로를 마주한다. 사정이 이러하니 아이들의 이름과 얼굴을 연결시키기가 생각보다 더 어려울 것 같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중략)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꽃, 김춘수)
그럼에도 노력 중이다.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기 위해. 이름을 불러주면, 꽃이 된다는 시인의 말에 기대어서. 아이들에게는 내가, 나에게는 아이들이 잊히지 않는 하나의 의미로 기억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