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고등학생들이 하나의 시험을 치는 날

by 진아

지난 3월 24일 목요일은 전국의 고등학생들이 일시에 모의고사를 치른 날입니다. 정확히는 ‘전국연합학력평가’를 치렀지요. 전국의 고1, 고2, 고3 학생들의 학력(학업능력)을 한 줄로 세워 등급을 내는 시험입니다. (‘전국 학생들을 한 줄로 세운다’라고 표현하니 너무 잔인한 듯 들리지만, 사실이 그러합니다. 그래서 한때는 이 시험에 대한 거부 운동도 있었지만 어쩐지 요즘은 당연히 치러야 하는 시험으로 자리 잡은 듯해요.)


저는 올해 고1 아이들의 수업을 맡다 보니 아무래도 학력평가에 대한 긴장감은 덜했습니다. 고3을 맡으면서 학력평가를 치렀다면 기분이 좀 달랐을 것 같아요. 아무튼 저는 그랬지만, 고1 아이들은 입학 후 처음 치르는 시험이라 꽤 긴장을 하는 듯했어요. 시험 치기 며칠 전부터 시험에 대해 질문하는 아이들이 종종 있었거든요.

시험 당일, 너무 오랜만에 모의고사 감독을 치르니 헷갈리는 것이 많았습니다. 입시 제도에서 학생 선택의 폭이 넓어지다 보니 시험지도 많아졌고, 그만큼 답지도 많아졌어요. 각 시간에는 해당 과목만 응시해야 하고, 한 반에 서로 다른 선택과목을 치는 아이들이 섞여 있기도 하지요. 국어에도 선택과목(화법과 작문, 언어와 매체)이 있고, 사회탐구와 과학탐구 영역은 선택과목 수가 어마어마합니다. 아! 물론 이건 고2, 고3 학생들에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오랜만에 시험 감독을 하는데 그런 상황이었다면 정말 정신이 쏙 빠졌을 것 같아요. 다행히 저는 고1 시험 감독이라 전 과목이 공통 영역의 시험인 덕분에 한 시름을 덜었습니다.

1교시 국어영역 시험에 감독으로 들어갔더니 그래도 대부분의 아이들이 꽤 열심히 시험을 치르고 있더라고요. 아이들을 둘러보고 있는데, 시계를 본다고 고개를 든 아이들 몇과 눈이 마주쳤어요. 아이들은 눈꼬리를 축 늘어뜨리며, 원망도 아닌 것이, 탄식도 아닌 것이, 아무튼 복잡 미묘한 눈빛을 보냈어요.(제가 국어교사라 그랬겠지요. 쌤, 이 시험 뭐예요... 그런 눈빛이었습니다.) 눈빛으로 응원을 전할 수 있을까 잠시 고민하다 마스크 위로 드러난 부분이 눈뿐이라, 두 눈에 힘을 잔뜩 주고 아이들의 눈을 바라보았어요. 그러면 아이들은 하나같이 씨익 웃으며(마스크에 가려져 입은 못 보았지만, 분명히 눈은 웃고 있었지요.) 다시 고개를 숙였습니다.


2교시 수학 영역은 시험을 치르는 아이들도 감독을 하는 교사들도 제일 고역스러운 시간이에요. 우리나라에 수포자가 많다는 것을 몸소 실감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수학 시험은 100분인데, 시험 문제는 30문제예요. 사실 제대로 수학 공부를 한 아이들에게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죠. 한 문제를 푸는데 3분 정도만 소요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몇 년을 지켜본 바로는, 꼭 그렇지 않더라고요. 대부분, 정말 대부분의 아이들은 100분이라는 시간을 엄청 지루한 영화의 러닝타임처럼 느껴요.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수학 영역 시험 시간의 뒷 시간에 들어갔더니 아이들이 이미 2/3는 꿈나라로 가버린 후였어요.


3교시 영어 영역은 유일하게 듣기 영역이 있는 시험이다 보니, 시작 시간부터 학생도 교사도 조금은 긴장을 합니다. 교사는 혹시라도 방송 상태가 나쁠까 봐, 학생들은 한 번만 들려주는 듣기 내용을 놓칠세라 긴장감이 높지요. 이때는 작은 소음도 아이들의 시험에 방해가 될 수 있기에 정말 꼼짝없이 가만히 서있어야 해요. 아이들도 모두 조심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20분의 듣기 평가가 끝나고 나면 남은 시간이 길지 않은 데다가, 영어 영역은 한국사 영역과 더불어 절대평가를 실시하는 영역이라 대체로 충실히 푸는 것 같았어요. 누군가와 비교 관점에서 등급을 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 치른 점수 그대로 평가받는 것이니 그래도 해 볼만 하지요.


4교시 탐구 영역은 학생도 교사도 가장 정신없는 시간입니다. 특히 고2, 고3이면 선택과목을 골라야 하고, 시험지 뭉치에서 자신이 선택한 과목의 시험지를 골라내야 하며, 선택 과목 시간에는 해당 과목 이외의 시험지를 절대로 봐서는 안됩니다. 이런저런 주의 사항이 많은 데다 시험지 뭉치의 양도 어마어마해서 실제 수능에서도 가장 실수하기 쉬운 시간이기도 하죠. 다행히 저는 고1 감독이라 탐구 영역 시간이 여유로웠습니다. 탐구 영역은 한국사 영역, 사회탐구 영역, 과학탐구 영역으로 이루어지는데, 고1은 사회탐구와 과학탐구에서 과목을 선택하지 않고 통합사회, 통합과학을 치릅니다. 아이들은 중학교 때 배운 사회와 과학 내용을 최대한 기억해내서 쳐야 하는데, 이게 쉽지가 않죠.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시험 시작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뻗어 버렸습니다...^^;;


감독을 하다가 문득 교실 뒤쪽 벽에 걸려 있는 ‘급훈’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반의 급훈은 ‘밥은 먹고 다니자’였어요. 올해 아이들이 새로 정한 것인지, 작년 선배들 것을 그대로 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그 급훈이 계속 마음에 남더라구요.


결국에 우리가 하는 많은 일이 ‘밥’을 먹기 위한 일이 아닐까요. 말 그대로 먹고살기 위해서, 먹고살 길을 만들기 위해서 이토록 치열하게 살고 있는 건 아닐까요. 물론 어떤 일을 하면서 느끼는 성취와 보람, 그것을 위해 치열하게 살기도 하죠. 하지만 기본적으로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는 해결됐을 때야 비로소 성취와 보람을 바랄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사는 게 너무 곤궁하면 성취와 보람은커녕, 당장 다음 끼니를 고민하는 것도 버거울 테니까요.


새벽같이 일어나 학교에 오는 아이들, 하루 종일 수업을 듣고(때론 졸고, 때론 자고, 때론 멍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가끔은 평가를 위해 종일 굽은 어깨 한 번 펴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며. 이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먹고사는 일이 조금은 덜 고단했으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능력만큼 인정받고, 실력으로 승부 걸고, 실패에도 조금은 관대하며, 성장을 지지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이면 좋겠다는, 어쩌면 과대망상 같은 꿈도 꿔보았습니다.


첫 시험을 치르느라 고생한 전국의 고등학생들을 격려해주세요. 정말로 고생했거든요.

얘들아, 고생했어! 그러니, 내일도 꼭 밥은 먹고 학교에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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