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문 단원은 국어 교사인 제게 늘 마음의 짐 같은 것이었어요. 교육과정 상에서 작문 교육은 문학이나 독서(읽기), 문법과 동등한 비중으로 다루어지지만 실제 현장에서 작문 교육은 대개 찬밥 신세입니다. 화법 교육과 더불어서요. 화법과 작문 교육은 실생활에서 매우 유용하고 중요한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교육 현장에서는 제대로 다루지 않는 영역이기도 합니다. 특히 고등학교 교육에서는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수능이라는 시험 방식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5지선다형으로 출제되는 수능 시험에서 화법과 작문을 제대로 배웠는지 평가하기는 어렵습니다. 제대로 말하고 듣고, 다양한 유형의 말하기 듣기 방식(대화, 토의, 토론, 협상, 면담 등)을 실천하며, 내 생각을 구체적인 근거 또는 사례를 들어 논리적 혹은 감상적으로 표현하는 과정을 5지 선다형 시험으로 평가할 수는 없으니까요. 정말 제대로 말하고 듣는지, 제대로 쓰고 고쳐 쓰는지 알기 위해서는 말하고 듣고 쓰는 활동 그 자체를 평가해야 해야 하는데 말이죠.
실제 수능에서 화법과 작문 영역의 기출문제는 다른 영역에 비해 무척 쉬운 편입니다. 다른 영역처럼 많은 시간을 들여 공부하지 않아도 오답률이 낮은 영역이지요. 그렇다 보니 학생들에게도 교사에게도 화법과 작문은 가볍게 넘어가도 좋은 단원이 되었어요. 문학과 문법, 독서(읽기) 영역에 에너지를 쏟기에도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거든요.
저도 그랬습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요. 5년 전에 아이들과 국어 수업을 할 때만 해도, 화법 단원, 작문 단원이 나오면 적당히 했다는 표시 정도만 남기고 금방 넘어가버렸어요. 특히 작문 단원이 나오면 더 속도를 냈던 것 같아요. 그 당시에는 저 역시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었으니 그래도 별 죄책감을 못 느꼈어요.
글 쓰는 사람으로 살아온 몇 년을 딛고 복직을 했는데, 처음 만난 단원이 작문 단원이었어요. 고백하자면 반가운 마음보다, 막막한 마음이 먼저였습니다. 어떻게 ‘쓰게’ 할지 막막했거든요. 아이들은 글쓰기라고 하면 무조건 거부 반응부터 보일 게 뻔하고(뻔하다고 생각했고), 그렇다고 평가를 앞세워 아이들을 협박(?)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글 쓰는 사람이잖아요. 글 쓰는 사람으로 살면서, 심지어 글쓰기를 권하는 책까지 준비하면서 글쓰기 단원을 넘겨버릴 수는 없는데……, 싶었죠.
아이들에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글쓰기를 할 거라고. 예상대로 아이들에게서 짧고 긴 탄식이 흘러나왔어요. 그리고 곧이어 예상했던 질문이 나왔죠.
“샘, 이거 글쓰기 수행평가예요?”
“아니, 글쓰기 과정에 성실히 참여하는 태도를 관찰했다가 생활기록부에 관련 내용을 기록할 거예요. 결과물의 질을 따져 평가하지는 않습니다. 제 글쓰기 수업의 목표는 여러분이 한 번쯤은 즐거운 마음으로 한 편의 글을 완성해보도록 하는 데 있어요. 여러분이 즐겁고 신나게 글을 썼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은 평가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어요. 박수를 치며 좋아하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글쓰기 주제는 자신의 관심사, 글쓰기 목적은 내 관심사를 소개하기 위해서, 예상 독자의 수준은 우리 반 친구들 정도로 설정했어요. 글을 써온 경험에 비추어보았을 때, 글을 쓰면서 가장 힘든 점이 ‘쓸 게 없는 것’, 즉 글감과 그에 관한 자료가 부족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글감을 충분히 마련할 수 있도록 수업을 설계했습니다.
두 시간에 걸쳐 글감에 관한 자료를 마련했어요. 이 시점에서 달력이 4월로 넘어가면서 마음이 조금 조급해지더군요. 곧 중간고사가 다가오므로, 시험 출제를 대비해서 다른 단원 수업도 해야겠다는 조바심이 들었거든요. 진도 나가기 바쁜 이 시기에 이러고 있어도 되는지 스스로도 확신하지 못한 채 활동을 진행했어요.
패들렛이라는 어플을 사용했는데 정말 좋았습니다!
두 시간에 걸쳐 글감 마련하기가 끝나고, 한 시간 동안 글을 썼습니다. 평가 항목이 아니니 글쓰기에 참여하지 않는 아이가 생기지 않을까 했던 건, 그야말로 쓸데없는 걱정이었어요. 물론 손에 꼽을 정도의 몇몇 아이들이 이탈 조짐을 보였지만, 그래도 거의 모든 아이들이 자기 글을 써냈습니다. 글의 수준은…… 처참한(?) 것부터 기대 이상으로 잘 시작하고 잘 맺은 글까지 다양했어요. 그럼에도 저는 그 처참한 글을 써낸 아이들을 더욱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아마도 그 아이들에게는 그 정도 분량의 글을 써본 것 자체가 처음이었을 겁니다. 말이 되든 안되든, 글쓰기를 한다고 인지하고 제한된 시간 동안 충실히 글을 썼으며, ‘제출’까지 했으니 더할 나위 없습니다.
제 수업의 활동지 가장 아랫부분에는 아이들이 수업에서 배우고 느낀 점을 쓰는 칸이 있습니다. 이번 글쓰기 수업을 마치며 그 부분에 써준 아이들이 수업 소감이 꽤 감동적이었어요.
‘글을 쓰기 전에 글감에 대해 준비를 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 고른 주제였는데 막상 쓰려고 하니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번 기회에 내 관심사에 대해서 더 구체적으로 알아볼 수 있어서 뜻깊었다.’
‘글쓰기 전에 개요를 작성해본 것이 도움이 많이 되었다. 평소에는 글을 쓰면 내용이 왔다 갔다 했는데, 이번에는 개요를 보면서 써서 그런 점이 덜 했다.’
‘쓴 글을 다시 읽어보니 이상한 문장들이 많이 보였다. 쓸 때는 안 보였는데…….’
‘글쓰기를 통해 진로가 더 분명해졌다. 진짜 꼭 00이 되고 싶다.’
제 글쓰기 수업은 절반의 실패와 절반의 성공을 얻었습니다. 여전히 글쓰기를 지도하는 데 서툰 교사인 데다 진도에 대한 부담을 다 내려놓지 못한 탓에, 글감을 잘 배치하는 법이나 다채로운 표현을 쓰는 법, 고쳐 쓰는 법에 대해서는 지도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처참한 결과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스스로 타협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모두 글쓰기에 참여했어요. 자기 관심사를 쓰면서 세 시간 내내 단 한 명도 졸거나 지루해하는 아이가 없었어요.(오히려 자기가 좋아하는 드라마, 연예인, 웹툰, 게임 관련 내용을 수업 시간에 당당히 볼 수 있다고 좋아하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몇몇은 예상 밖의 소감을 써서 저를 감동하게 했고요.
저의 글쓰기 수업은 이번이 마지막이 아닐 테니, 앞으로 조금씩 보완해나간다면 조금 더 좋은 수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감히 기대해 봅니다. 아이들이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삶을 쓰고, 자신의 마음을 쓸 수 있는 그날까지. 아이들과 함께 쓰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