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모르는 아이들이 공부를 하는 이유

by 진아

‘본질적인 나’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전하는 고전수필 ‘수오재기(정약용)’를 배운 후, 아이들과 어떤 활동을 이어가면 좋을까 고민했다. 아이들에게 ‘본질적인 나’라는 개념을 어떻게 전달하면 이해가 쉬울까, 아무리 생각해도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다. 내 경험에 비추어볼 때, ‘본질적인 나’라는 개념을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했던 때는 아이를 낳고 육아에‘만’ 매진하던 때였다.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하고 싶었던 일, 내가 계획했던 일을 송두리째 내려놓고 오직 ‘엄마’로만 살던 때. 정신을 차리고 보면 ‘나’란 존재는 사라지고 ‘엄마’라는 역할만 남아 있던 때. 그때에 이르러서야 ‘본질적인 나’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다.


열일곱, 겨우 17년을 산 아이들에게 ‘본질’을 말하는 건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조금 쉽게 접근해보자고 결론을 내린 후, 아이들에게 제공할 활동지에 '나 자신'을 생각할 수 있는 질문 50개를 담았다. 사소하게는 ‘좋아하는 음식’, ‘좋아하는 과목’, ‘좋아하는 친구’부터,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의 한 장면’, ‘꼭 가보고 싶은 곳’, ‘인상 깊은 장소’를 지나, ‘공부를 하는 이유’와 ‘20대에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죽기 전 자신의 삶을 한 권의 책으로 썼을 때 첫 문장을 뭐라고 쓸지’까지, A4용지 양면을 질문으로 빼곡히 채웠다.


질문의 방향은 오직 하나, ‘나’ 자신이었다.

“질문에 답하는 동안, 오직 ‘나’에 집중해보세요. 평소에 ‘나’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많이 없었을 거예요. 한 시간 동안,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내가 왜 공부를 하는지, 나는 뭘 하며 살고 싶은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오직 ‘나’에 대해서만 생각해보세요. 사실은 시험 문제를 하나 더 맞히는 일보다, ‘나’에 대해 생각해보는 일이 더 중요해요.”


아이들에게 질문지를 나눠주며 이렇게 말했지만, 중간고사를 채 열흘도 남기지 않은 상황이라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고백하자면, ‘시험 문제를 하나 더 맞히는 일보다 나에 대해 생각해보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와닿을지 두렵기도 했다. (고맙게도, 아이들은 열심히 생각하고 열심히 답해주었다.)

“샘, 그냥 공부하는 게 낫겠어요. 진짜 모르겠어요.”


답을 쉽게 쓰는 아이는 한 반에 한두 명도 되지 않았다. 수업 시간이 끝날 때까지, 그러니까 한 시간의 수업을 통으로 할애했음에도 불구하고, 50개의 질문 중 절반에도 답하지 못한 아이들이 수두룩했다. 좋아하는 과자 이름 하나도 쉽게 떠올리지 못하는 아이들이 꽤 많았다. 아이들은 ‘좋아하는 게 없다’고 했다. 좋아하는 음식 하나 쓰는 일도 어려운데, 꿈이 뭔지, 왜 공부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쓸 수 없는 건 당연했다.




'요즘 아이들은 ‘저’밖에 모른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들은 ‘저’도 잘 모른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무엇을 원하는지도, 무엇을 위해 지금을 견디는지도, 지금의 어려움을 어떻게 이겨내야 하는지도, 정말로 모른다.


돌이켜 보면, 내가 학교에 다니던 때에도 비슷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내가 뭘 원하는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그런 고민을 할 시간에 기출문제 한 문제를 더 풀었다. 그래도 지금의 아이들에 비하면 그때의 내가 좀 더 행복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가면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 믿었다. 그 믿음이 비단 나만의 착각은 아니었다. 일종의 사회적 합의였고, 실제로 그랬다. 당시에도 취업난은 심각했고,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도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비난이 있었지만 지금과는 결이 달랐다.


지금의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그때와 비할 수 없을 만큼, 팍팍해졌다.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간다고 해도 취업은 안된다. 그러니 삶이 나아진다는 보장도 없다. 공부를 통해 자아실현을 할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류의 조언은, 보통의 아이들에게 전혀 와닿지 않는 공허한 말일뿐이다.



Q. 공부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엄마한테 혼날까 봐.


질문에 대한 한 아이의 답이 잊히지 않는다. 고교학점제가 시행되고, 아이들은 자신의 흥미와 관심 분야, 진로 분야에 맞추어 과목을 선택해 듣는 세상이 되었다. 학교에서는 열 명 남짓한 아이들을 위해 선택과목을 개설하기도 하고, 그게 불가능한 경우에는 다른 학교에서 개설된 선택과목을 수강할 수 있도록 안내하기도 한다. 그런 걸 보면, 과거에 비해 학생들의 선택권이 엄청나게 확대되었고, 학생들은 저마다의 끼와 소질을 살려 다양한 배움을 경험하며 능동적인 학교생활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보통의 열일곱은, 지극히 평범한 다수의 열일곱들은 여전히 망망대해를 헤매고 있다. 목적지가 어딘지 고민할 새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그저 가라앉지 않으려고.

적어도 혼자 남지는 않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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