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 10분쯤 두 아이를 재우러 방에 들어갔는데, 나온 시간은 9시 20분이었다. 두 아이 모두 길어도 40분 안에는 잠이 드는데, 오늘따라 두 배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아이들 잠들고 나서 뭔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면 귀신같이 알고는 더 안 잔다.
부엌 수납장을 열어 아까 찜해둔 누룽지를 꺼냈다. 냄비에 물을 받고 누룽지를 넣어 끓이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넘치지 않도록 냄비 뚜껑을 열어주고 누룽지가 잘 퍼지도록 저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구수한 냄새가 주방과 거실에 퍼졌다. 그릇에 잘 퍼진 누룽지를 담고, 접시에 밑반찬도 가지런히 담았다. 숟가락과 젓가락도 보기 좋게 놓고는 찰칵, 인증사진 한 장을 찍었다. 후후 불어 한 입 떠 넣었더니, 구수함이 입안 가득 퍼지면서 온몸이 뜨끈해졌다.
“맛있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천천히 한 그릇을 다 비웠다.
인생 누룽지에 등극! 한 그릇 뚝딱하는데 딱 25분 걸렸다.
오늘 종일 두 아이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신랑이 임플란트를 하느라 잇몸에 뼈 이식을 했는데 마취가 풀리니 통증이 심해서 진통제를 먹고도 머리까지 아파할 만큼 고통스러워했다. 그 덕에 두 아이는 모두 내 몫이었다. 아이들과 노느라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몰랐는데 갑자기 배고프다는 봄이 덕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해둔 밥이 없어서 밥부터 안치려는데 사랑이가 떡국이 먹고 싶다고 해서 아이들 저녁으로는 떡국을 끓였다. 신랑은 치과에서 받아온 죽을 먹겠다고 했다. 떡국 두 그릇과 식혀 먹을 그릇 두 개를 들고 식탁에 앉았다.
“떡국 먹자.”
“엄마, 이건 엄마 거야?”
“아니, 네 거지.”
사랑이는 식히느라 조금 덜어놓은 접시 말고 제 몫으로 담아둔 접시를 가리키며 물었다. 나는 그때까지 질문의 의도를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그럼 엄마 건?”
“엄마 건 없어. 떡이 사랑이와 봄이 것만큼만 남아있었거든.”
진짜였다. 어떻게 사다 놓은 떡국 떡이 딱 그만큼 남았는지, 그래도 아이들 몫에 딱 맞게 남아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끓여낸 터였다.
“그럼 엄마는 밥 먹어.”
“지금 밥이 없어. 엄마는 나중에 먹을게.”
“밥 없으면 엄마는?”
“엄마는 알아서 먹을 거야.”
“아빠는?”
“아빠는 죽 먹는대.”
“그럼 엄마도 죽 같이 먹으면 되겠네.”
“죽은 아픈 아빠가 먹어야지.”
“아니지. 엄마랑 나눠서 먹어야지.”
“엄마는 나중에 다른 거 먹을게.”
“다른 거 뭐?”
“사랑아, 혹시 엄마가 굶을까 봐 걱정돼서 그래?”
“응. 나 걱정이 돼.”
“아구, 그래도 엄마를 걱정해주는 아들도 있고 감동이다. 엄마 꼭 챙겨 먹을게. ”
뭉클하면서도 묘한 기분이 들었다. 겹쳐지는 장면 이 있었기 때문이다.
친정엄마는 나의 외할머니와 함께 사신다. 할머니 연세가 많으셔서 엄마가 할머니의 수족이 되어드리고 있다. 할머니는 근래에 자꾸 아프셔서 입맛을 자주 잃으시는데, 그 덕에 엄마는 어쩌면 할머니 입맛이 돌아올까 고민하며 늘 새로운 반찬을 만든다. 그러면서 내가 전화로 엄마는 밥 먹었냐고 물으면 밥맛이 없어서 굶었다, 할머니가 안 드신다고 해서 당신도 맥주 한 캔 마셨다고 했다. 그때마다 엄마가 잘 먹어야지 할머니도 챙기지, 엄마는 굶으면서 할머니 걱정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며 엄마를 질책하던 나였다. 그런데 나도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수십 년 후에 나와 아이들이, 지금의 엄마와 나 같은 대화를 하는 모습이 상상되었다.
떡국을 끓이며 아이들 재워놓고 맥주 한 캔에 냉동만두나 에어프라이어에 돌려서 저녁 대신 먹어야지 생각했었는데, 사랑이와의 대화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서 애들을 재우러 들어가기 전, 수납장을 열어 먹을 것이 없나 보다가 그 누룽지를 발견한 것이었다. 애들과 신랑이 잠들고 나면 오랜만에 나를 위해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야겠다고 다짐한 순간이었다.
생각보다 누룽지는 더 맛있었다. 또 참 좋았다. 오랜만에 뜨끈한 음식을 식기 전에 먹는 것도, 뜨거운 음식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천천히 먹게 되는 것도 좋았다. 무엇보다 오로지 나를 위한 것이라 더 좋았다. 그동안은 아이들과 신랑의 삼시 세 끼를 챙기느라 혼자 밥 먹을 일이 생기면 으레 인스턴트 음식이나 커피와 빵, 그것도 아니면 굶기를 선택하던 나였다. 아이 키우는 엄마들이 다 그렇다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합리화하며 나를 방치했다. 요즘 들어 여기저기에 염증이 생기는 이유도 다 그런 식생활에서 오는 것이리라.
내가 엄마를 걱정하면서, 최소한 아이들이 나를 걱정하는 일은 없기를 바랐는데, 가장 기본적인 식생활조차 이토록 엉망이면서 어떻게 아이들을 걱정시키지 않을까 싶었다. 당장에 고작 네 살인 아들이 엄마가 굶을까 봐 걱정이라니.
이제는 좀 다르게 살아봐야겠다. 혼자 밥을 먹더라도 제대로 먹어야겠다. 아이들과 함께 먹는 식사에서도 아이들 먹인다고 나는 대충 먹지 말고, 꼼꼼히 씹어가며 내가 한 음식들을 맛있게 먹어봐야지. 아이들이 덜 먹을까 봐 안달하지 말고, 나부터 잘 먹어야지.
엄마가 되는 일이 그저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나는 과정인가 보다. 돌아보지 않던 나를 돌아보게 되고, 앞만 보고 내달리던 나를 멈춰 서게 하는 일이구나 싶다. 돌아보고 멈춰 서며 조금 더 나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 아이들 앞에 몸도 마음도 건강한 엄마로 새롭게 서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