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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Aug 08. 2022

기적과도 같은, 시절인연(時節因緣).

작가님들, 8월의 휴가를 잘 보내고 계신가요.


저는 지난주에 아이들과 제주에 다녀왔습니다. 태풍의 한복판에 제주 땅을 밟았지만, 감사하게도 여행 마지막 날에는 푸른 하늘을 마주할 수 있었어요. 오랜만에 글쓰기도, 출판도 모두 잊고 잘 즐기다 돌아왔습니다.

가는 날과 오는 날의 하늘이 이렇게 달랐습니다.


지금 선량 작가님은 베네치아로 가고 계시겠군요. 베네치아와 피렌체에서 휴가를 보내신다는 말씀에 얼마나 부러웠는지요. 인생은 멀리서 보면 언제나 희극이라, 이곳에서 바라보는 작가님의 삶은 말 그대로 ‘여행’처럼 느껴집니다.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요.


읽는인간 작가님은 한국에 오셨지요. (우린 같은 하늘 아래에서도 쉽게 만날 수가 없군요.) 3년 만에 친정 식구들과 만나는 기분은 어떤 기분인지, 잘 그려지지 않습니다. 매일 친정엄마와 통화를 하고,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한 시간 만에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사는 저로서는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일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그리움의 깊이는 얼마나 깊을 것이며, 못다 나눈 마음은 얼마나 많을까요.      


저는 이제 곧 개학을 합니다. 고등학교의 여름 방학은 너무도 짧아서 금세 개학이네요. 방학 동안 해야 할 일도, 하고 싶었던 일도 많았는데 이렇게 금방 지나가버렸어요. 그래도 작가님들과 함께 쓰는 원고의 1차 퇴고까지는 마무리하고 개학을 맞이할 수 있어서 다행스럽습니다. (가을이 지나가기 전에 출간은 되겠지요?^^) 사실 너무 많은 일과 계획 속에 파묻혀 사느라 무엇 하나도 끝을 보지 못할까 두려웠습니다. 작가님들과 함께 하지 않았다면 결코 해내지 못했을 일이었어요. 참 감사한 일입니다.      




작가님들은 ‘인연’을 믿으시나요? ‘인연’은 불교 용어이기도 한데요, 인(因)이 어떤 일이 일어나는 직접적인 원인이라면, 연(緣)은 간접적이고 외부적인 조건을 일컫는다고 해요. 곧 인연이란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힘과 그를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힘을 아우르는 말이 되지요.      


저는 인연을 믿습니다. 아주 맹신하는 편이에요. 살다 보면, 어떻게 이 사람과 이 장소와 이 시간과 닿았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는데요. 그런 순간을 설명하는데 ‘인연’이라는 단어만큼이나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했어요. 작가님들과의 만남, 그리고 함께 한 모든 시간 역시 제게는 귀한 ‘인연’입니다.   

   

작가님들과의 인연을 떠올려 보면 ‘인’과 ‘연’이 그렇게 꼭 맞아 들어갈 수 있었을까 싶을 만큼 놀랍습니다. 당시의 저는 혼자 쓰는 글에서 함께 쓰는 글로 제 글쓰기 세계를 확장해나가려고 꿈틀대던 때였어요. 혼자 좋아서 쓰던 일기장, 혼자 뿌듯했던 브런치의 글쓰기 세계를 넘어 누군가와 소통하는 글을 쓰고 싶던 때였지요. 그래서 제 이야기를 담은 책의 출판을 준비 중이었고, 다른 사람과 닿는 글을 쓰고 싶어 작가님들이 운영하시던 ‘인스타친구들’이라는 매거진에 투고도 했었습니다. 저의 간절함이 바로 ‘인’이었어요.

 

그것만으로 저희가 이렇게 엮어질 수는 없었겠지요. 그때 작가님들은 같이 매거진을 운영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던 때였어요. 두 분 모두 해외 생활을 하시면서 글쓰기에 관해 이야기할 대상이 간절하던 때기도 하셨을 겁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저희 세 사람의 결이 잘 맞아 들었어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제가 어찌할 수 없었던, 이것은 ‘연’이었겠지요.


인과 연이 마치 꼭 맞는 톱니바퀴를 만난 듯 맞물려 돌아가서 저희는 ‘인연’이 되었습니다. 요즘은 ‘시절인연’이라는 단어도 많이 쓰더군요. 모든 현상은 그에 맞는 시기가 되어야 일어난다는 뜻으로요. 그러고 보면 저희의 인연도 ‘시절인연’이네요. 1년만 먼저 만났어도, 혹은 1년만 늦게 만났어도 저희가 이만큼 끈끈하게 이어져, 이토록 많은 일들을 함께 할 수 있었을까요.

     



요즘 ‘시’를 테마로 하는 원고 작업을 하다 보니 부쩍 시를 많이 읽게 되는데요. 이 시를 작가님들께 선물하고 싶습니다.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저녁에’, 김광섭     


전 세계 80억 가까운 사람 중에, 사는 곳도, 나이도, 직업도 다른 두 분과 이렇게 인연이 닿았다는 것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어마어마한 일 같습니다. 수많은 사람 중에 서로가 서로를 딱 알아차리는 일, 이런 게 기적이 아닐까요. 매일의 일상은 그저 그러하지만, 일상의 순간에는 기적이 숨어 있었네요. 작가님들 덕분에 세상에 여전히 ‘기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여실히 느낍니다.      


오늘의 편지는 어쩌다 보니 연애편지 같군요. 작가님들을 생각하면 이상하게 자꾸 마음을 고백하고 싶어서 큰일입니다. 언제나 함께 해주셔서, 혼자라면 할 수 없는 일들을 자꾸만 해낼 수 있도록 부추겨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기적처럼, 빛나는 휴가 보내시기를.

휴가의 끝자락에는 좀 더 가벼워지시기를.

끝으로 우리의 시절인연이 시절에 머무르지 않고 영원을 바라보기를.      


(입추를 갓 지났지만) 여전히 여름의 한가운데를 지나는 대구에서, 진아 드림.



선량, 읽는인간, 진아.


밀라노, 도쿄, 대구.

서로 다른 곳에 사는 세 사람이 글쓰기로 만났습니다. 사는 이야기부터 글쓰기 이야기까지 주제를 넘나들며 편지를 주고받습니다. 지극히 사적인 편지라는 형식을 취하지만, 저희가 주고받는 이야기를 통해 위로와 공감이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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