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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Jul 10. 2022

'작가'가 직업이 될 수 있을까요?

밀라노에서 보냅니다. 

진아 작가님, 숨이 되는 글에 대한 편지, 잘 받았어요. 

대구에서 밀라노까지는 꽤 먼 거리인데 이렇게 빨리 답장을 보내시다니요. 한동안은 내 차례가 돌아오지 않겠구나.... 하고 방심하고 있었는데, 빠른우편으로 날아온 답장에 당황했답니다. 

제가 너무 어려운 질문을 던졌던 모양입니다. 작가님의 워킹맘으로서의 일상을 읽다 보니, 죄송한 마음이 들었어요. 이렇게 분주한 분께 일거리를 투척한 것 같아서요. 그래서 이번엔 꽤 오랫동안 숨을 고르며 기다렸답니다. 이 편지가 작가님께 전해지면 작가님은 또다시 고민을 시작하시겠지요. 그래서 이번엔 질문을 자제하려고 합니다. 


작가님의 일상을 보며 저희 셋째 언니를 떠올렸어요. 언니도 워킹맘으로 꽤 오래 살았거든요. 대기업이라는 안정적인 직장이 있었고, 일도 꽤 잘해 팀장도 빨리 되었고, 분기마다 나오는 보너스는 언니를 오랫동안 워킹맘으로 살게 했어요. 다 때려치울까? 고민을 하다가도, 다음 달에 나갈 카드값 때문에 다시 출근을 했었지요. 

그런데 코로나가 터지고, 두 아이가 온라인 수업을 하기 시작하면서 언니는 전쟁 같은 날을 보내야 했어요. 학교에선 계속 전화가 오고, 수업 시간에 게임을 하다 들키고, 학원을 몰래 빠지고.... 

결국 언니는 백기를 들고 말았습니다. 마침 회사에서 명예퇴직 신청을 받고 있었지요. 그렇게 20년 넘게 다닌 회사를 그만두었어요. 

지금은 두 아이의 학원 라이딩과 건강을 위한 러닝,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 위한 '직업 상담사'자격증을 땄답니다. 

"회사를 나오니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

언니는 매번 저에게 이렇게 말해요. 그때마다 전 이렇게 대답합니다. "

20년 넘게 회사 다녔으니, 좀 더 쉬어~ 뭘 그렇게 조급해해. 천천히 준비하면 되지."

하지만 언니는 조급한가 봐요. 그 마음이 조금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회사에 다닐 때는 직장이 곧 직업이 되지요. 저도 한 때는 직장이 있었고, 간호사라는 직업이 있었네요. 그런데 지금은.... 직업이 뭐냐는 질문에 답할 말이 없어요. 사실 '작가'라는 타이틀을 직업으로 내세워도 될까?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왜냐면, 직업이라 함은 그 일로 돈을 벌어먹고살 수 있어야 하니까요. 

저는 최근엔 이런저런 일을 하며 돈을 좀 벌긴 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꾸준히 생기는 것도 아니고, 제가 어디에 소속된 작가도 아니다 보니, 굳이 직업은 아닌 것 같아요. 

이쯤 해서 작가님의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할 것 같네요. 


작가님에겐 숨구멍인 글이 저에겐 어떤 의미냐고 물으셨지요? 

글쎄요..... 이제는 그 의미를 잊어버렸어요. 저도 처음엔 육아와 살림에서 벗어나기 위한 숨구멍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아이들이 좀 커서 손도 덜 가고, 살림도 대충 돌려막기하고 있어서 숨구멍은 아닌 것 같아요. 오히려 넷플릭스나 밀리의 서재가 숨구멍이라 할 수 있고요. 

그렇다고 돈벌이 수단도 아닌 것 같아요. 위에서 말씀드렸다시피, 글을 써서 돈을 많이 벌진 못하니까요. 

명예를 위한 걸까요? 하지만 그것도 아닌 것 같아요. 유명해지고 싶었다면 지금보다 더 열심히 나를 알리려고 애를 썼겠지요. 유튜브도 열심히 하면서요. 그런데 그럴만한 에너지는 부족합니다. 

그러게요... 전 정말 왜 글을 쓰고 있을까요? 


사실 저는 글을 진짜 잘 쓰고 싶어요. 저는 흙수저 출신 작가니까요. 

한참 글을 써서 투고할 때, "세상엔 국문학과 출신, 문예창작학과 출신의 작가가 참 많다. 그들은 대학에서 공부를 했고, 글공부를 계속 한 사람이다. 그러니 작가가 되려면 글공부를 해야 한다."라는 말을 들었어요. 저는 그 말을 듣고 좌절했었답니다. 저는 글렀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어찌나 오기가 생기던지요. 

저는 악동뮤지션을 좋아합니다. 그 이유는 정규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자신들만의 확실한 색깔의 음악을 하기 때문이에요. 물론 그 아이들에겐 재능도 있었겠지만, 학교나 학원이 아닌 가정에서 배운 기타와 노래가 그 아이들을 좀 더 자유롭게 음악을 할 수 있게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런 작가가 되고 싶어요. 대학에서 배운 적도 없고, 글쓰기 강의나 책 쓰기 특강을 들어본 적도 없지만, 혼자서 맨땅에 헤딩하듯 공부한 글공부가, 좋은 글을 쓰고 싶어서 계속 쓴 글이, 나만의 색깔을 만들어주기를 바랐지요. 

그런데 아직도 먼 것 같아요. 먼저 글을 써달라는 곳이 없는 걸 보면요. 


제가 무료로 이런저런 일을 했던 이유는, 글을 계속 쓰기 위함이었어요. 

저는 작가님처럼 직장에 다니는 것이 아니라서 매번 새로운 글감이 생기지 않거든요. 해외에 살긴 하지만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다 보니, 쓸 말이 없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이런저런 일들을 벌였어요. 그게 하나의 글감이 되기를 바라면서요. 

지금은 글감을 위해 벌인 일들 덕분에 많은 사람들과 인연이 되었지요. 그분들이 모두 제 독자라고 생각하면, 허투루 대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 이 글의 제목 "작가가 직업이 될 수 있을까요?"를 쓰고 있는데 옆에 있던 아들아이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당연히 되지, 작가도 직업 아니야? 엄마가 작가잖아." 

직업이 되려면 먹고살 수 있는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건, 우리 어른들의 편협한 사고였나 봅니다.


저는 제 아이의 눈에 비친 그런 작가가 되고 싶어서 오늘도 글을 쓰는 모양입니다. 

언젠간 내 아이가 어른이 되어 제 책을 읽겠지요? 

적어도 내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을 문장을 남기고 싶습니다. 


저에게 글은 어떤 의미일까요?

이젠 더 이상 의미 같은 건 중요하지 않을 것 같아요. 


답장을 받으려면 그래도 질문을 하나쯤 던져야 할 것 같은데, 이번엔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너무 빨리 답장하지 마셔요. 

작가님들이 요즘 얼마나 바쁜지 다 알고 있으니까요. 

그래도 바쁜 와중에 숨구멍이 필요하시다면, 편지 보내주세요. 


오늘은 브런치에 두 편이나 글을 썼어요. 

7월 말까지 저희 책의 원고를 퇴고해야 하는데, 이렇게 딴짓만 하고 있으니..... 어쩌지요? 

해야 할 일은 하기 싫고, 정작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은 이렇게 하고 있으니. 

나이가 들어도 의무감으로 하는 일은 하기 싫은 모양입니다. 


밀라노에서 선량 드림. 



밀라노에서 선량, 

대구에서 진아, 

도쿄에서 읽는 인간 

서로 다른 곳에 사는 세 사람이 글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주로 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지만, 곳곳에 엄마와 아내와 여자로 살아가는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저희가 나누는 편지를 통해 위로와 공감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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