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글에 썼듯이(이전글 : 새로운 수업을 계획합니다.), 이번 학기에 꽤 큰 프로젝트 수업을 시도하려 한다. 지난 한 주가 개학 첫 주라 각 반에 모두 안내를 했다. 이제 엎질러진 물이 되었다. 선전포고를 했으므로 실천하는 일만 남았다.
그림책과 기사문, 소설까지, 한 학기 내내 무언가를 읽고 자기 생각을 말하며 동시에 타인의 생각을 듣고, 나아가 자기 생각을 글로 쓰도록 하는 수업. 이런 수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가장 큰 이유는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지난 글에서는 국어 교과의 목표가 그러하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고백하자면 그건 너무 거창한 이야기다. 좀 더 솔직한 이유는 아이들과 의미 있는 독서 시간을 갖고 싶다는 마음(어쩌면 내 욕심) 때문이었다.
고등학생 대부분은 책을 읽지 않는다. (비단 고등학생들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여하튼 고등학생들은 정말로 독서와 거리가 멀다. 독서를 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는 것이 1차적인 이유이고, 2차적인 이유는 고등학생이 되기까지 의미 있는 독서의 경험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애들이 책을 안 읽는다'는 말은 내가 학창 시절에도 듣던 말이었지만, 그래도 그때는 양질의 정보를 대량으로 얻기에 가장 좋은 매체가 책이었기 때문에 책을 아주 멀리하기는 어려웠다. 반에 몇은 '독서'가 취미인 아이들도 꽤 있었고, 하이틴 소설부터 각종 로맨스 소설도 모두 종이책으로 읽던 때였다.
시대가 아주 많이 달라졌다. 책에서 정보를 찾는 이들은 논문을 써야 하는 대학원생 정도가 아닐까, 싶을 만큼 책이 정보를 주는 시대는 지나갔다. 하이틴 소설과 연애소설의 자리는 웹툰과 웹소설에 내어준 지 오래다. 인문, 철학, 예술, 사회, 과학 등 전문 분야에 관한 내용도 유튜브 검색을 통해 얼마든지 양질의 콘텐츠로 접할 수 있다. 이런 시대에 책 읽기는 지나치게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이다. 아니, 그런 것처럼 느껴진다. 결코 그렇지 않은데 말이다.
책을 통해 만나는 세상은 조금 느리다. 천천히 생각하고 느껴야 한다. 책 속으로 난 길을 걸을 때는 꽤 적극적으로 길을 찾아야 한다. 아무도 길을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같은 책을 읽어도 모두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고,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스스로 느껴야 하고,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 한 걸음 한 걸음, 자기 속도대로 걸으며 책 속의 세상을 마주할 때, 비로소 책 속의 이야기가 삶 속에 들어온다.
국어교사로 살게 되었고 앞으로도 그런 행운이 오래 유지된다면, 아이들에게 그런 시간을 선물하고 싶었다. 세상과 만날 매개로 책 한 권 놓아주는 시간, 여유 있게 생각하고 주저 없이 표현할 수 있는 시간, 책 속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로, 의미 있는 삶의 메시지로 전해지는 시간. 어쩌면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할 수능 성적에는 전혀 보탬이 되지 않겠지만, 아이들과 그렇게 의미 있는 독서를 하고 싶었다. 이 경험이 동력이 되어 책을 가까이하는 아이가 한 명이라도 생긴다면 얼마나 기쁠까 기대도 하면서.
지난주에 전체적인 프로젝트 진행과정을 설명했고, 한 반은 그림책과 만나는 시간까지 나아갔다. 프로젝트를 설명할 때만 하더라도 "그림책을 읽는다고요?", "에이, 샘 집에 애들이 읽는 책 아니에요?"라며 무시하던(?) 아이들이었는데, 그림책과 만나는 첫 시간에 보여준 모습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인간의 욕심 때문에 유전자를 변형시켜, 개를 찍어내는 공장의 이야기-63일-를 읽고)
"아오, 이거 뭔데. 샘! 진짜 열받는데요?"
"진짜 섬뜩하다. 불쌍해. 우리가 뭐라고."
"아니, 근데 진짜 이런 데가 있나?"
"있겠지. 인간이 뭔들 못하겠냐."
(장애가 있는 아이가 사람들의 관심을 그리워하는 이야기-위를 봐!-를 읽고)
"아.. 너무 마음 아프다."
"그래도 끝에 사람들이 다들 올려다보잖아."
"얘가 웃는데 나는 왜 눈물이 나냐."
(먹을 것이 없어서 인간 마을로 내려온 북극곰과 그 곰이 위험하다며 해치려는 인간들의 이야기-눈보라-를 읽고)
"아니, 누구 때문에 먹을 게 없어졌는데?'
"그니까. 진짜 어이없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북극곰을 왜 이렇게 싫어하는 거지?"
"위험하다고 생각하니까."
"아니, 위험하게 행동한 건 인간 아니야? 총은 인간이 들었잖아."
아이들의 대화 속에서 고스란히 느껴지는 분노와 슬픔, 상실과 감동, 기쁨과 안도를 이 글에 다 담지 못해 안타깝다. 내가 기대했던 바가 딱 이것이어서 기쁘기도 하다. 그림책은 글로만 이루어진 책보다 훨씬 더 직관적으로 아이들의 머리와 마음을 건드린다. 나는 그림책 수업을 통해, 웬만한 일에는 정서적 동요를 보이지 않는 아이들이 동요하길 바랐다.(십 대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굉장히 민감하지만, 그것을 또래에게 들키는 것을 약간 '수치스럽게' 느낀다. 특히 슬픔이나 감동, 설렘과 안도 등의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데 아주 취약하다.) 아이들이 동요했다. 생각보다 더 많이. 남학생 여학생 할 것 없이, 함께 마음 아파하고 분노했다.
아이들은 그림책을 매개로 이제껏 생각해보지 않은 동물권과 환경, 인간의 욕심과 장애, 인권과 차별 등을 고루 생각해볼 것이다. 생각의 깊이가 얼마나 깊을지는 몰라도, 그 생각의 물꼬를 그림책들이 잘 틔워준 것 같다.
앞으로 12차시의 수업이 남았다. 그림책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이끌어낼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비문학(기사문)과 문학(소설)도 읽어가며 현실의 문제와 우리가 살아갈 방향에 대해 함께 고민할 것이다. 매 수업의 장면마다 인상적인 모습들을 잘 기록해두었다가 아이들에게 선물처럼 전해주어야겠다.
가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왜 이렇게 스스로를 혹사시키면서까지 수업에 몰두하는가.’
사실 답은 굉장히 뻔하다. 그렇게 몰두해서 수업을 준비하는 시간과 실제 수업에서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빛을 마주하는 시간이 너무 좋아서다. 역시, 사람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갑자기 국어 교사로 살 수 있어서, 참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 그림책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나, 수업에서 활용할 만한 그림책이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서 제가 이번 학기 수업에서 활용한 그림책의 목록을 첨부합니다. 그림책 토론 수업과 관련된 많은 책들을 참고해서 선정한 그림책들이라 좋은 책들이 많습니다. 아이가 있으신 분들께서는 아이들과 함께 읽어보셔도 참 좋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