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나누고, 마음을 전한, 나의 수업 이야기

by 진아

이번 학기 야심 차게 준비했던 프로젝트 수업이 끝났다. 프로젝트의 주제는 '문학으로 세상보기'였다. 세상을 보는 관점으로 내가 아이들에게 제시한 단어는 '공존'이었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무사히 존재하는 것', '누구도 타인으로부터 고통받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것'. 내가 생각한 공존은 그런 것이었고, 나는 아이들에게 '공존'을 고민해볼 것을 주문했다.


'공존'이라는 거대한 단어를 아이들에게 그냥 맡겼다. 내가 한 일은 아이들에게 양질의 읽기 자료를 제공하고, 생각을 모아볼 수 있는 활동지를 제공하는 일. 그리고 수업 시간을 할애하고 아이들의 말하기와 듣기, 읽기와 쓰기를 독려하는 일. 그뿐이었다.


계획한 12차시가 무사히 끝났다. 12차시, 일주일에 내 수업은 2차시이므로 총 6주간의 대장정이었다. 6주면 한 달 반, 학기의 절반을 우리는 함께 읽고 쓰고 말하고 들으며 수업을 만들어갔다. 그 시간 동안 아이들과 나는 끈끈해졌고, 서로에게 더 깊이 다가갈 수 있었다.




5년 만의 복직, 전과는 많이 달라진 아이들의 분위기, 수업에만 열정을 쏟을 수 없게 된 나의 상황(5년 사이에 미혼에서 애둘맘이 되었으니.)까지. 잘 해낼 수 있을지 두려웠다. 그래서 시작하기까지 무수히 망설였다. 평가와 연결되는 것이기에 허투루 할 수도, 막연히 시작할 수도 없어서 더 겁이 났다. 그래도 시도했다. 아이들과 함께 삶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는 것이 국어수업의 본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무모하게 도전했다.


12차시의 수업이 끝나던 날, 아이들에게 활동 소감을 받았다. 소감을 쓰라고 했지만, 사실 별 기대는 없었다. 활동 과정에서 변수가 많았고, 나는 수시로 미숙했다. 아이들은 눈치채지 못했을지 모르나 활동의 전개가 매끄럽지 않은 차시가 많았고, 활동지의 형태도 어설펐다. 학기초에 냈던 평가 계획은 실제 프로젝트 수업 과정에서 구현하기 어려운 것이 많았지만, 계획을 바꾸려면 학업성적관리위원회를 열고 학교장의 결재를 다시 얻고 정보공시까지 새로 해야 한다는 말에 꾸역꾸역 계획대로 실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더 부족한 점이 많았다. 고백하지면, 스스로는 만족스럽지 않은 수업이었다.


아이들이 소감은, 예상 밖이었다. 한두 줄짜리 수업 소감을 짐작했던 나의 생각을 비웃듯, 아이들의 소감문은 그야말로 감격이고 감동이었다.


책의 내용을 자세히 보고 그 내용에 주인공의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보며 내 인생에 대한 생각을 하는 시간도 가지게 되어 활동지에 행복이라는 단어가 계속 들어갈 만큼 긍정적인 방향으로 삶의 이유를 찾는 등 내 인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5차시 활동에서 1번 문항 '특권'에 대해 글을 작성할 때 나란 사람이 얼마나 좋은 환경에서 살고 있는지를 느꼈다. 마지막으로 소설책 읽기 활동을 하면서 책을 통해 '공존'이라는 단어를 깊게 공부하게 되어서 개인적으로 굉장히 뿌듯하고, 뜻깊었던 활동이라고 생각하였다. 또한 프로젝트 수업과 비슷한 방식으로 '공존'이외 우리가 한번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단어를 주제로 삼아 다시 한 번 이러한 활동을 해보고 싶다.

내용 요약하는 활동에서 선생님께서 적어주신 답변을 보고 많은 것을 느끼고 감동을 받았다. 젤 처음에 나도 주인공과 공존을 못 했다는 것을 느꼈다. 왜냐하면 선생님께서 적어주신 답변 덕분이다. 그리고 마지막 답변에서 선생님께서 불행한 거짓말을 선택하신 이유를 보고 나서 나도 생각이 바뀐 것 같다. 너무 행복을 좇지 않고 살아가는 게 더 마음이 편할 것 같다.. (선생님이랑 3년 동안 계속 같이 수업하고 싶어요ㅜㅜㅠㅠ 제가 더 잘할게영...)

학교에서 단지 진도를 나가고 암기하는, 오직 시험만을 위한 수업이 아닌 정말 학생 개개인을 위한 수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평상시에 생각해 볼 수 없었던 사회 문제, 약자에 대한 차별, 공존, 차이와 이해...와 같은 주제들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고 또 다른 사람들과 생각을 나눠 볼 수 있는 소중하고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중략) 또 선생님께서 학습지를 낸 후 다시 돌려주실 때 짤막한 코멘트를 달아 주셨는데, 그것이 저는 선생님과 함께 생각을 공유하고 또 서로 공감하는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공부도 중요하지만 나는 이런 수업을 하면서 깨닫게 되는 것들이 사람으로서 살면서 더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200명의 활동 소감 중 감동적인 것을 다 뽑아 옮기자면, 브런치에 글을 최소 100개는 써야 할 것이다. 그만큼 아이들은 너무나 귀하고 소중한 소감을 선물로 남겨주었다. 활동 중간에 소설을 읽고 인상 깊은 문장을 옮겨 쓰고 그 문장에 대한 자기 생각을 쓰는 활동을 3차시에 걸쳐서 했는데, 그때 아이들이 마음을 많이 열었던 것 같다. 이 수업에서 내가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차시이기도 했다. 바깥에서 보았을 때는 아이들은 그냥 책을 읽고 교사인 나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이었겠지만, 나는 그때 가장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


200명, 3차시. 총 600개의 생각에 일일이 코멘트를 썼다. 물론 길게 쓰진 못했다. 두세 문장 정도. 아이들마다 인상 깊은 문장이 달랐고, 그 문장마다 펼쳐나가는 생각이 달랐다. 경험도 달랐고, 가치관도 달랐다. 상처도 있었고 행복도 있었다. 코멘트를 쓰겠다 계획한 것은 아니었으나, 아이들의 글을 읽으니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위로가 필요한 아이들이 많았고, 응원이 필요한 아이들도 많았다. 공감을 전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고, 조금은 우려스러운 생각도 있었다.


아이들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아이들 생각을 읽고 코멘트를 썼다. 그렇게 열심히 써서 다음 시간에 곧바로 나누어주었다. 첫 차시에는 '이게 뭐지?' 하는 표정이던 아이들이, 두 번째 차시, 세 번째 차시가 되니 기다렸다는 듯이 활동지를 받자마자 내가 쓴 코멘트부터 찾아 읽었다. 그때 아이들의 눈에 비친 미소를 보았다. 그 미소가 선물 같은 소감이 되어 나에게로 돌아온 것이다.




이 수업을 통해서 내가 가장 크게 얻은 것은, 국어교사로서의 교과적 만족감이 아니다. 사실 처음 수업을 준비할 때 기대한 것은 그런 것이었다. 읽고 쓰는 것이 낯설지 않은 삶으로 이끄는 것. 그게 국어교과의 본질이라 생각했고, 국어교사로서 내가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수업이라고 생각했다. 이 수업을 잘 해내면 국어교사로서 내 몫을 조금은 해내게 되리라 짐작했다.


아이들의 수업 소감을 읽고 또 읽으며 깨달았다. 내가 얻은 것 중 가장 귀한 것은 교과교사로서의 만족감이 아닌, 아이들을 전체가 아닌 '개인'으로 바라보게 된 시선이었다는 것을. 아이들은 어디에도 터놓지 않았던 수많은 사연들을 터놓았고, 그로써 나는 아이들을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사실을. 아마 아이들도 교과적 지식이나 교과적 경험을 너머, 누군가가 자기 이야기를 성실히 들어준다는 믿음, 자기 이야기에 정성껏 반응해준다는 기쁨을 얻었을지도 모르겠다.


12주를 마무리하고 보니 벌써 11월이다. 이만큼 가까워진 아이들과 이별이 가까워지고 있다. 우리의 다정한 교실이 추억의 한 장면으로 남을 날이 다가오고 있다. 괜히 벌써부터 코끝이 시큰하다. 아쉬움에 쓸데없는 말이라도 한 마디 더 걸고 싶은, 11월이 절반이나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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