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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Apr 24. 2020

지난 육아의 모든 순간들이 녹아있는, 애증의 아기띠여.

고단했지만 행복했던 그때를 기억하며.

2살 터울로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지난 3년 동안 여기저기서 물려받고 직접 사기도 한 육아용품들이 어마어마했다. 늘어날 대로 늘어난 육아용품들을 더 이상은 감당할 수가 없었다.  미니멀까지는 아니더라도 맥시멀 라이프를 추구하지는 았는데... 큰 맘먹고 아이들이 자는 시간에 이것저것 꺼내 버릴 건 버리고 물려줄 건 물려주려고 쌓여있던 육아용품 정리를 시작했다. 


"아직 아기띠는 쓰지?"

"사랑이도 두 돌까지는 썼으니까 봄이도 올해 말까지는 쓰지 않을까?"

"근데 봄이는 아기띠 싫어하잖아."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아직은 아기띠까지 정리할 때는 아닌 것 같아."

"그럼 놔두지 뭐."


나는 하도 많이 써서 여기저기 올이 풀리고 색깔도 바래진 아기띠를 챙겨 식탁의자에 걸쳐놓았다.




우리 집 아기띠로 말할 것 같으면 큰 형님이 조카 아기 때 쓰던 것을 물려주신 건데, 그 조카가 벌써 7살이니  약 7년 정도의 연식이 있는 물건이다. 조카는 아기띠를 많이 안 써서 아주 깨끗한 상태로 물려받았는데, 사랑이는 13개월 때까지 낮잠을 아기띠에 안긴 채로 한두 시간씩 자던 아기라 우리 집에 온 지 딱 일 년 만에 해질 대로 해졌다. 그걸 봄이까지 물려받아 쓰고 있으니 제값을 다하고도 남은 물건이다.

 

사랑이는 13개월까지 낮잠을 누워서 잔 적이 거의 없었다. 아기띠에서 깊은 잠이 들었다 싶어서 눕히면 어떻게 알고는 바로 깨서 울어대는 통에 도저히 쉴 틈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아기띠에 안은 채로 소파에  기대 쉬던 것이 습관이 되어 돌을 지나서까지도 아기띠에 안긴 채로만 자려고 했다. 다행히도 밤잠은 백일 전부터도 누워서 자서 낮잠 정도야 안고 재워준다는 심정으로 그냥 안고 있었다. 그때는 아이가 하나라 낮잠시간에  함께 소파에 앉아서 자거나 쉬더라도 별 문제가 없었기에 그냥 그러려니 했다. 13개월이 지나면서 하루에 낮잠을 한 번만 자게 되자 재울 땐 아기띠에서, 잠이 들면 침대에 눕혀서 재웠다. 그렇게 아기띠로 안아서 재우기를 22개월까지 했으니, 정말 지겹게 매달고 살았다.


그러다 봄이가 태어났고, 사랑이에게는 심각한 퇴행이 왔다. 평상시에도 아기띠에 안아 달라고집을 부려 무려 30개월까지도 가끔이지만 아기띠에 안아주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은 사랑이가 또래보다 많이 작았기 때문이다. 30개월에도 12킬로 내외라 좀 큰 돌아기보다 조금 더 무거운 정도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조금이라도 큰 아기였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봄이는 조리원에서 나오자마자 엄마 껌딱지와 등센서 모드에 돌입한 덕분에 2개월 이전까지는 슬링에 거의 매달려서 나와 한 몸으로 살았고, 2개월이 지나 목을 가누기 시작하면서는 지금의 아기띠에 매달려 살았다. 특히나 사랑이 어린이집 등하원에 매일 동행해야 했고, 심지어 하원길에는 절대로 바로 집에 들어갈 수 없다고 버티며 놀이터 투어를 는 사랑이 덕에 매일 최소 두 시간은 아기띠에 매달려 다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6개월 전후로 낮잠을 누워서 자서 아기띠 사용 시간이 사랑이 때보다 훨씬 적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9개월에 걸음마를 시작하면서 아기띠를 갑갑해하더니 10개월 차부터는 아기띠를 심하게 거부했다. 걸음마 신발의 밑창이 14개월에 닳아버렸으니 얼마나 쫓아다녔는지 알만 하다. 이제 15개월이 된 봄이는 잠이 올 때는 침대로 가자고 나를 이끌고, 밖에 나갈 때는 제 신발을 들고 와 신기라고 한다. 가끔 아기띠에 안으면 얼마나 버둥거리며 빼 달라고 몸부림인지 아기띠를 쓸 일이 없다.


최근에는 코로나 사태까지 덮쳐 외출할 일조차 없다 보니 아기띠는 안방 안쪽 파우더룸 어딘가에, 혹은 애들 수납장 위에 그냥 던져져 있었다. 당장 별 쓸 일이 없긴 해도 아직은 봄이가 오래 걷지는 못하니 놔두기로 했다만, 사실 그것보다도 아기띠에는 나의 고단했지만 행복했던 육아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서 앞으로도 쉬이 버리기는 어려울 것 같다.




매일 한 몸처럼 붙어서 살았던 그때 그 순간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물건.


허리며 어깨며 안 아픈 곳이 없어서 파스 떼기가 무섭게 새 파스를 붙여야 했지만, 아이의 가슴과 내 가슴이 맞닿아 함께 뛰던 순간들과


젖 냄새와 살 냄새가 섞인, 오로지 아이에게서만 날 수 있는 그 오묘한 냄새가 그득하게 배어서는  허리에 감을 때마다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게 되던 기억들과


두 아이가 아기띠 안에 폭 안겨 때로는 머리를 박고는, 때로는 머리를 젖히고는 깊은 잠에 빠져들어 새근거리던 시간들까지


그 모든 것들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새겨져 있는,  이 애증의 아기띠를 버리긴 정말 쉽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안아주지 않고서는 잠도 자지 못하고 외출도 하지 못하던, 그 작았던 생명체가 이제는 걷고 뛰며 길 위에 혼자 선다. 아기띠와 유모차 대신 킥보드와 자전거를 더 좋아하게 된, 그리고 좋아하게 될 두 아이를 보며, 이렇게 자라고 또 자라 언젠가는 내 품을 완전히 떠날 날을 생각해본다.



아기띠에 매달려 잠만 자던 아가들이                                   언제 자라서 혼자 걷고 뛰는지.


괜히, 아기띠 매고 종일 어깨를 두드리던 지난날이 벌써부터 그리워진다.



* 아기띠 관련 초보 엄마, 아빠께 드리는 팁

- 아기띠는 목을 가눌 수 있을 때부터 사용하시는 게 좋아요. 그전에는 슬링을 사용하는 게 엄마 아빠도 안심이고, 아기도 편해요.

- 아기띠 종류가 정말 많지만 많이 쓰는 건 이유가 있더라구요. 저도 이것저것 많이 써봤지만 제일 유명한 브랜드의 것을 주로 썼어요.  검색해보면 제일 많이 나오는 게 이유가 있더라구요..^^

- 힙시트는 허리에 힘이 들어간 이후에 쓰는 게 좋다고 해서 보통 최소 5개월은 지나야 쓴대요. 저희 아이들은 힙시트는 잘 사용하지 않았어요.

- 아기띠 앞보기도 최소한 5개월쯤은 되어서 목과 허리에 힘이 들어갈 때  하시는 게 좋아요.

- 마지막으로 아기띠로 아기를 업으면 두 손의 자유가 생겨요. 포대기는 여러 번 시도했지만 자꾸 풀려서 힘들었는데(친정엄마는 대충 휘리릭 해도 잘만 하시더라마는..), 아기띠 어부바는 정말 신세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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