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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Apr 22. 2020

15개월 딸아이의 매서운 손맛

이것도 추억거리가 되는 날이 오려나.

"아야! 봄아, 제발!"

"아야! 여보, 나 좀 도와줘!"


결국 사랑이랑 놀고 있던 신랑이 출동해, 있는 힘껏 내 머리끄덩이를 잡고 있던 봄이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펴 내게서 봄이를 떨어뜨려놓고서야 전쟁이 끝났다. 봄이 손가락 사이에는 내 긴 머리카락이 어림잡아 보아도 대여섯 개는 끼어있었다.

잡았다, 요녀석! 대여섯 가닥은 뽑혔는데 사진에는                 한 가닥뿐이라니...


"봄아, 엄마 너무 아파. 제발 엄마 머리카락 좀 뜯지 마."


우는 눈으로 사정을 해도 소용이 없다. 15개월 봄이에게 엄마의 머리카락은 그저 재미있는 장난감일 뿐이다. 자아도 형성되지 않은 15개월 아기에게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해달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니 대책 없이 당하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아기들의 힘은 생각보다 엄청 세다. 그 작은 손에서 어떻게 그렇게 센 힘이 나오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봄이는 최근 들어서 내 머리카락 뜯기에 15개월 인생을 건 것 마냥 힘껏 머리카락을 뜯어대고 있다. 그리고는 내가 그만 놓으라고 하면 그게 장난치는 건 줄 알고 더 까르르 넘어간다. 말도 다 못 알아듣는 애를,  일부러 엄마 아프라고 그러는 것도 아닌 애를 혼을 낼 수도 없고.. 그냥 혼자서 눈물을 찔끔할 뿐이다. 신랑은 아무래도 안 되겠다며 머리를 짧게 자르라는데, 자른다고 안 그럴 것도 아니고 그저 이 시기를 지나가는 수밖에 없다.


놀 때에는 머리 뜯기에 매운 손맛을 보여주는 봄이는 잘 때마저도 나를 가만 두지 않는다. 봄이의 잠버릇은 내 눈썹을 만지는 것인데 그것도 살살 만지는 날이 있는가 하면 정말 힘껏 손톱으로 긁거나 꼬집듯이 뜯는 날도 있다. 그런 날은 주로 잠이 쉽게 들지 않는 날이라 속수무책으로 당해야(?)하는 시간도 길어진다. 그래서 눈을 감았다 싶으면 잽싸게 신랑과 자리 바꾸기를 시도하는데 눈썹의 감촉이 다른지 귀신같이 알고 눈을 번쩍 떠서는 다시 더듬더듬 내 눈썹을 찾아내고야 만다. 아주 가끔은 아무리 예쁜 딸내미라도 그 손을 탁 잡아서 치우게 될 만큼 너무 아프다. 치워본들 금세 잠이 와서 낑낑 짜증을 부리며 허공을 헤매는 봄이의 손을 잡아 다시 내 눈썹 위에 얹어줄 수밖에 없지만..




어젯밤에는 잠은 오는 것 같은데 쉽게 잠이 들지 않는지 계속 침대 위를 여기저기로 굴러다녔다. 낮잠을 자지 않아 금방 잠이 든 사랑이까지 깨울까 봐 우리 부부는 노심초사하며 행여나 사랑이 쪽으로 굴러가지 않도록 인간 방어벽이 되어야 했다.  우리가 그러거나 말거나 봄이는 우리의 머리 위로, 몸 위로 막 굴러다녔다. 그래도 꼼짝없이 자는 척을 하며 봄이의 몸부림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는데, 순간 눈앞이 번쩍! 했다. 그렇게 굴러다니다 무릎으로 내 코를 찍어 누른 것이다.


'이런 게 니킥이라는 거구나. '


정말 순간적으로 섬광이 비췄다. 너무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나는데 아기한테 뭐라 할 수도 없고 그저 참는 수밖에 없었다. 코도 얼얼했지만 너무 아프니 순간 기분이 확 상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싶은 충동이 느껴졌다. 하지만 내가 일어나버리면 잠들려고 노력하는 봄이는 그대로 잠이 깨버릴 게 뻔하고 그럼 오늘의 육퇴는 무한정으로 늦어질 것이므로 참아야 했다. 그리고 일어나본들 뭐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구르며 니킥에 누르기, 다시 눈썹 뜯기  저는 전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나와 신랑을 진땀 나게 한 각몸부림치다가 사십 분 만에야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이 시기(15개월) 아기들은 주로 깨물기를 많이 하는데 봄이는 깨물기 대신 뜯기를 선택한 모양이다.  머리카락을 뜯으면서도 너무나 해맑게 웃으며 좋아하니 이것 참.. 다행히(?) 머리카락 뜯기는 오로지 엄마인 나에게만 하는 행동이라, 집에서 제일 머리카락이 긴 엄마가 신기한가 보다 여기는 중이다. 너무 아프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건 다른 사람들에게도 대책 없이 그러면 훈육을 할 수도 없는 시기라 난감할 텐데 그나마도 내게만 그러기 때문이다. 과한 애정표현이라고 여기며 말귀를 다 알아듣는 그날까지 엄마 아프다고, 머리카락은 뜯으면 안 된다고 말해주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 눈썹 뜯기는.... 잠버릇이니 참 더 어렵다.


요즘은 가끔 내 눈썹 대신 자기 눈썹을 만지작거리며        잠을 청하기도 한다. 그건 또 무지 귀엽다.


그래도 뭐 네가 언제까지 뜯겠냐 하며 웃으며 넘어가야지. 언젠가는 봄이와 마주 앉아 네가 엄마 머리카락을 하도 뜯어서 엄마 머리숱이 다 빠졌다고, 네가 눈썹을 뜯는 통에 눈썹 자랄 틈이 없던 때가 있었다고 말해줄 날이 오겠지. 그런 날이 오면 오늘의 이야기도 한낱 추억거리가 될 거다.


그나저나 그런 날만 기다리며 참기에는,

진짜 무진장 아프다....

아우, 힘센 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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