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아 May 04. 2020

아이들의 눈물 흘릴 권리를 지켜주고 싶다.

감정에 솔직하고 공감에 인색하지 않은 어른으로 자라렴.

쿵!     


“무슨 소리야? 사랑이야?”

“응.. 엄마..”     


사랑이가 거실과 주방 사이에 있는 기둥에 머리를 쿵하고 박았다. 타요 자동차를 타고 놀다가 방향 전환을 잘못한 모양이었다.      


“많이 아파?”

“응. 근데 괜찮아.”

“너 여기 빨갛다. 진짜 세게 부딪힌 것 같은데? 이렇게 아픈데도 울지 않고 참는 거야?”

“나는 이제 4살이니까 안 울어. 참을 수 있어.”     


아이의 이마에 빨간 혹이 올라왔다. 소리로만 들었어도 아주 세게 부딪힌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아이가 울지 않았다. 그리고는 참을 수 있다며 제 머리를 쓰다듬고는 머쓱한 듯 다시 타요 자동차를 타고 옆방으로 사라졌다.           




요즘 들어 종종 사랑이가 눈물을 참는다. 조그만 일에도 눈물을 보이던 아이였다. 스치듯 부딪혀도, 나에게 조금만 혼이 나도 그렇게 울어대던 아이였다. 그런데 사랑이가 눈물을 참는다. 나는 아이가 눈물을 억지로 참는 그 표정을 보는 것이 그렇게 마음이 아프다. 나는 아프고 슬프고 억울하고 속상할 때 아이가 마음껏 울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뚝! 눈물 그쳐. 울지 마.”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아이는 자랄수록 자연스럽게 쏟아지는 눈물을 참는 법을 배워가고 있었다.  

    

사실 넘어진 자리가 아프지만 울지 않는 것은 그만큼 자랐기 때문에, 울지 않고도 아프다는 표현을 할 수 있는 언어가 생겼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억울하고 속상한 일이 생겼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나는 왜 아이가 눈물을 참는 것이 마음이 아픈 건지. 그 울 듯 말 듯한 표정이, 눈에 눈물이 고일 듯 말 듯한데 침 한 번 꿀꺽 삼키고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뒤돌아서서 가버릴 때의 그 뒷모습에 마음이 저릿한다. 어쩌면 그렇게 아이가 커가는 것이 아쉬운 마음인 건지도 모른다.      




누구나 자랄수록 눈물 흘릴 일이 적어진다. 어지간히 슬프지 않고서야, 아프지 않고서야, 기쁘지 않고서야, 감동하지 않고서야 다 큰 어른이 눈물을 보이는 일은 많지 않다. 하지만 나는 눈물 흘리는 어른이 좋다. 작은 일에도 감동해서, 조그만 슬픔에도 공감해서, 사소한 기쁨에도 행복해서 그렇게 울 수 있는 어른이 좋다. 조금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의 기쁨과 슬픔, 행복에 공감하며 함께 눈물 흘릴 수 있는 그런 어른이 좋다.      


내 아이도 그렇게 자랐으면 좋겠다. 더 욕심을 내면 세상 모든 아이들이 그렇게 자랐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를 비롯한 모든 부모들이 아이들의 울 권리를 빼앗지 않았으면 좋겠다. “울지 마. 뚝!”이라는 말 대신 “충분히 울어. 울고 나서 이야기하자.”라고 말할 수 있다면 좋겠다. 나 역시도 분명히 아이가 잘못한 순간인데도 자신이 억울한 듯 우는 아이를 볼 때, 별로 세게 부딪힌 것도 아닌데 세상 서럽게 우는 아이를 볼 때, 그만 울고 뚝 그치라고 말하고 싶은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그럴 때마다 지금 아이의 마음이 어떤지 헤아리려 애쓴다. 아픈 것을, 속상한 마음을, 화나고 억울한 마음을 알아달라는 표현이 바로 눈물인 것을 어쩌겠는가. 힘들어도 기다려주면 울만큼 울고 난 아이는 반드시 대화의 자리에 스스로 온다. 그 시간을 기다려주는 게 쉽지 않지만 “충분히 울어. 네 마음이 진정될 때까지 울어.”라는 말의 힘을 믿는다.


     

그렇게 아이들이 슬프고, 분하고, 아프고, 억울한 감정을 눈물로 충분히 표현해보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았던 아이가 과연 기쁘고 행복할 때, 그리고 감동했을 때 눈물 흘릴 수 있는 어른으로 자랄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지금부터도 아이의 눈물을 지켜주고 싶다. 아이의 울 권리를 지켜주고 싶다.  

    



사랑아, 봄아,

울고 싶을 때는 마음껏 울어. 언제고 울고 싶은 마음이 들 때면 울어도 괜찮아. 우는 건 절대로 나쁘거나 부끄러운 게  아니야.

울고 싶을 땐 언제나 울라는 건, 마음이 여린 어른이 되라는 것이 아니야. 너희가 느끼는 모든 감정을 잘 표현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감정에 잘 공감하는 어른이 되라는 말이란다. 그렇게 감정에 솔직하고 공감에 인색하지 않은 어른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앞으로도 엄마는 너희의 눈물을 존중하는 엄마가 되려고 해. 쉽진 않겠지만 언젠가 너희들이 지금처럼 자주 눈물 흘리지 않을 때가 오더라도, 눈물 흘리는 것을 부끄러워하거나 두려워하지는 않도록 지금 너희의 눈물을 소중히 여길게.♡

매거진의 이전글 지난 육아의 모든 순간들이 녹아있는, 애증의 아기띠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