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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May 06. 2020

네가 붙여준 밴드 하나에 가득 담긴 너의 마음, 사랑.

사랑이를 키우는 내내 내가 가장 많은 마음을 쏟은 부분은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는 것이었다. 달리 줄 것이 없어서 아이에게 나의 시간과 마음을 모두 내어주며 돌아오는 아이의 마음을 끊임없이 읽어주었다.  아이의 언어가 생기기 이전까지는 울음과 몸짓으로만 표현되던 아이의 마음마저도 내 말로 바꾸어 읽어주려고 노력했다. 사실 가끔은 내 노력에 스스로 지쳐서 버럭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아이의 필요를 외면한 적도 있었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왔고, 4살이 된 첫째는 이제 가끔 나의 마음을 먼저 읽어주기도 한다.




요즘 들어 나에게 가장 힘든 일은 아이들을 먹이는 일이다. 두 아이 모두 밥 먹기를 싫어하는 터라 매일 삼시 세 끼마다 전쟁이 따로 없다. 그런데다 혼자 밥을 먹을 의지가 전혀 없는 4살 사랑이를 스스로 먹게 하려니 더 진이 빠진다. 떠먹여 주면 금방이지만 자꾸 그렇게 버릇을 들이면 안 되니 어떻게든 스스로 먹게 하려는데 그러다 보니 아이는 밥을 앞에 두고 내내 딴짓만 한다.


어제 아침식사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식탁 앞에 네 식구가 둘러앉긴 했으나, 봄이는 계속 다른 곳으로 도망가며 장난을 치고 사랑이는 손에 장난감을 들고 앉아 끊임없이 딴소리만 늘어놓고 있었다. 점점 화가 기 시작했다. 이성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오직 내 식사에만 집중했다. 말이 안 통하는 봄이는 이미 포기했고, 사랑이에게는 신랑이 밥 안 먹고 장난칠 거면 치우겠다고 했더니 그제야 사랑이는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나는 무심하게 밥 먹으라고 한마디를 하고는 다시 내 식사에 집중했다.


"엄마?"

"응, 왜?"

"엄마 화났어?"

".."

"엄마 속상해?"

"사랑아, 엄마는 지금 사랑이가 밥 먹는 시간인데 계속 장난치고 밥 안 먹으니까 솔직히 화도 나고 속상하기도 해."

"...."


보이지 않는 레이저를 힘껏 쏘고 있던 내 눈을 지그시 쳐다보는 사랑이의 눈길이 느껴졌다. 또 내가 화가 났다고 했으니 저가 더 길길이 날뛰며 소리를 지르겠구나 생각했다. 지금까지는 대개 그랬으니까. 그런데 사랑이 입에서 의외의 말이 툭,  나왔다.


"엄마, 미안해요."


그리고는 제 몸보다 무겁게 느껴지는 숟가락을 들더니 밥을 한 숟가락 가득 떠올려 제 입으로 가져갔다. 순간  말할 수 없이 묘한 기분이 들었다. 엄마의 마음을 살필 수 있을 만큼 자랐구나 싶은 대견함,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졌구나 싶은 기특함, 그리고 괜히 아침부터 너무 눈에 힘을 주고 아이를 쳐다본 것은 아닌가 싶은 미안함까지...


그리고 나서 생각해보니 최근 들어 부쩍 사랑이가 "엄마, 속상해? 엄마 화났어? 엄마 왜 기분이 안 좋아?"라고 물어보는 일이 잦았다. 예민하고 활동적인 아이들, 그것도 엄마 껌딱지인 아이들과 24시간 붙어 지내면서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친 요즘, 내 표정이나 말투가 딱딱하게 느껴진 순간이 많았나 보다. 아직 너무 어린 봄이와 달리 이제 엄마의 기분과 마음을 바로 읽어낼 만큼 자란 사랑이에게는 매번 그게 마음 쓰이는 일이었던 것이다.




저녁때가 되어 아이들과 잘 준비를 하는데 왼쪽 세 번째 손가락이 엄청 쓰라렸다. 그제야 손을 보니 꽤 깊이 베인 자국이 있었다. 그렇게 베이고는 몰랐다는 게 더 신기할 지경이었다.


"사랑아, 엄마 손가락 다쳤다."

"어디? 보자, 보자. 엄마, 많이 아파? 아빠, 엄마 손가락 다쳤대요!"

"그러게 좀 따갑네. 언제 베였지?"

"엄마 어떡해. 내가 약 발라줄게!"

"그럼 사랑이가 밴드도 붙여줄래?"

"응!"


비상약 상자를 꺼내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내 손가락 위에 후시딘을 바르고는 밴드를 꺼내 이렇게 붙이면 되는 거냐몇 번이나 시뮬레이션을 하고는 조심스럽게 밴드를 붙여주었다. 엉망으로 붙일 것을 예상했는데 너무 정확하고 예쁘게 잘 붙였다. 아이를 꼭 안아주며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




자기 마음도 아직 정확하게 말로 다 표현 못하는 어린아이가 벌써 내 마음을 읽고, 내 아픔을 걱정한다. 그런 순간들마다 너무 힘들어서 주저앉고만 싶었던 지난 3년을 다 보상받는 기분이 든다.


작은 밴드 하나에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득 담아준 우리 아들, 엄마의 속상한 마음과 아픈 손가락을 어루만져주어서 정말 고마워. 그리고 엄마가 자꾸 화내고 눈에 힘을 주며 너를 쳐다봐도 언제나 변함없이 엄마가 제일 좋다고, 사랑한다고 말해주어서 정말 정말 고마워.

엄마도 너를 언제나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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