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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May 08. 2020

너의 사랑스러운 행동은 둘째의 숙명일지도

낮잠을 자다가 봄이와 내가 노는 소리에 깬 사랑이가 대책 없이 울기 시작했다. 제 딴에는 곤히 잘 자고 있었는데 자신의 의지랑 관계없이 잠에서 깼으니 짜증이 날 법도 했다. 아빠 품에 안겨서 소리를 지르다 결국에는 제풀에 꺾여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봄이는 그런 사랑이를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우리 오빠가 왜 울지? 내가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 생각을 하듯이…. 서럽게 울던 사랑이가 갑자기 자신의 애착 이불을 찾기 시작했다. 바깥에서 놀다가 들어오는 길에 잠이 든 터라 사랑이의 머리와 몸, 옷은 온통 먼지 투성이었다. 나와 신랑은 씻고 나서 이불 덮고 다시 자자고 사랑이를 설득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봄이가 총총총 작은 발을 구르며 어디론가 뛰어갔다. 그러더니 사랑이의 이불을 들고 와 내밀며 덮으라는 시늉을 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나와 신랑은 봄이의 그 사랑스러운 행동에 이불이 더러워져도 어쩔 수 없다 싶어서 웃고 말았다.


봄이를 키우면서 사랑이 때와 너무 다른 봄이의 모습에 놀란 적인 한두 번이 아니다. 정말 딸이라서 그런 건지, 둘째라서 그런 건지(보통 여자아이가 남자아이보다, 둘째가 첫째보다 발달 속도가 빠르다고 한다), 둘 다인 건지 봄이는 다른 사람의 행동을 흉내 내는 것도 아주 빠르고, 마음을 읽어내는 공감 능력도 타고난 것 같다.


짝짜꿍, 도리도리, 죔죔, 안녕하는 손인사 등의 행동들은 이미 6-7개월에 완벽하게 해냈다. 11개월 이전에 이미 사랑이가 양치질을 할 때면 꼭 자기도 칫솔을 달라고 해서 칫솔질을 흉내 내고, 사랑이가 양칫물을 받아 입을 헹군 뒤 뱉어낸다고 쪼그리고 앉으면 그 옆에 꼭 같이 쪼그리고 앉아서 물 뱉는 흉내를 냈다.

이도 안났을 때였는데 오빠따라 양칫물 뱉는 중

최근에는 사랑이가 소변보는 모습까지 흉내를 내는 데 그게 얼마나 우스운지, 화장실에 들어가면 꼭 한 번은 아기 변기 앞에 서서는 오빠의 모습을 흉내 내고는 제 할 일을 한다.

딸, 네가 거기서 뭐하니?


밥을 먹을 때도 봄이는 제 밥은 안 먹으려고 하면서 꼭 사랑이 식판에 있는 밥을 숟가락으로 어설프게 떠서는(제대로 뜨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 소리를 내며 사랑이 입에 넣어준다. 반찬은 포크로 여러 번 해보다 잘 안되면 손으로 먹여주기까지 한다. 그만하라고, 오빠는 오빠가 먹는다고 말해도 아직 말귀를 다 못 알아듣는 데다가, 한 번 어떤 일이 꽂히면 그 일은 반드시 해야 하는 아이라 말려지지도 않는다. 안 그래도 혼자 밥 떠먹는 게 너무나 싫은 사랑이는 2살짜리 동생이 떠먹여 주는 밥을 먹고 앉아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기가 차고 어이가 없다. 오빠 밥을 먹여주는 봄이를 기특하다고 해야 하는 건지 그걸 받아먹고 있는 사랑이에게 자기 밥은 자기가 먹는 거라고 가르쳐야 하는 건지……. 그렇게 어이없어하다 보면, 두 아이는 식판 하나를 사이에 두고는 밥을 먹이고 받아먹으며 깔깔거리고 있는 일이 허다하다.


한 번은 그런 일도 있었다. 두 아이가 함께 미끄럼틀 위에서 잘 놀다가 갑자기 무슨 일에 마음이 틀어졌는지 투닥거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몸싸움(?)으로 번져서 서로를 밀고 당기기 시작했다. 두 아이를 떼 놓으며 서로 이렇게 밀고 싸우면 미끄럼틀은 더 이상 탈 수 없다고 엄포를 놓았더니, 두 아이는 누가 더 서러운지 경쟁을 하듯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아직 말귀를 다 못 알아듣는 16개월 봄이에게는 내 말이 큰 의미 없는 말이었겠지만 사랑이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던지, 이내 울음을 그치고 훌쩍거리는 봄이와 달리 사랑이는 시간이 갈수록 더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나는 가만히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앉아 있었는데, 사랑이와 나란히 앉아서 훌쩍거리던 봄이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손수건이 들어있는 수납장 쪽으로 갔다. 그리고 까치발을 들어 손수건 하나를 꺼내더니 자기 코를 한 번 문지른 뒤, 그걸 들고 사랑이에게로 뛰어와 오빠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 아닌가. 손짓이 서투르긴 했지만 분명 오빠의 눈물과 콧물을 닦아주고 있었다. 그러고는 몇 번을 더 손수건 상자에 가서 새 손수건을 가져와 사랑이의 눈물을 닦아주고 내려놓기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사랑이도 마음이 풀렸는지 웃으며 다시 놀기 시작했다. 내 마음은 뭐, 봄이가 처음 손수건을 들고 올 때부터 이미 감동으로 풀어져 있었다.

저 손수건으로 오빠 눈물까지 닦아준 대견한 딸




생각해보면 그렇게 모든 것을 특별히 보여주거나 애써 가르치지 않아도 해내니, 봄이의 새로운 행동들에는 점점 무뎌져서 사랑이 때만큼 격한 감동의 표현을 하지 못했다. 사랑이 때는 처음 뒤집기를 했을 때 눈물까지 흘렸고, 처음 혼자서 소파를 잡고 섰을 때 집이 떠나도록 소리를 질러댔으며, 돌 가까이 되어서 처음 박수를 쳤을 때 그 모습에 너무 놀라 동영상을 찍어두고 캡처를 해서 카톡 프로필에 띄우기까지 했었다. 그런데 봄이는 그 많은 것을 내가 미처 놀랄 틈도 없이, 어느샌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해 버렸다. 어쩌면 놀랄 틈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첫 아이를 키우며 엄마로서 모든 순간이 처음이었던 그때의 나와 달리, 모든 과정을 한 번 거쳐 간 지금의 내게는 봄이의 모습들이 덜 놀라운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두 번째라고 해서 덜 소중하거나, 덜 사랑하는 것은 결코, 절대 아니다.


혹여나 우리 봄이가 자라서 나의 수많은 육아 기록에 자신이 덜 등장하는 것이 서운할까 봐 걱정스러울 때가 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먼저 아이를 낳은 선배들이 말하기를 ‘둘째는 그저 사랑’이라고 했는데 나 역시도 그 말에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미리 겪어보아서 덜 호들갑스러울 뿐, 오히려 둘째라서 더 관대하고 둘째라서 마냥 예쁘게 보일 때가 많다. 첫째 때는 아무것도 몰라서 아이의 아주 작은 행동에도 호들갑스럽게 놀랐던 반면 매사에 서툴러 아이와 나 둘 다 힘들고 서러웠던 적이 많았다. 그와 달리 둘째 때는 그 과정을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고 있어서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에 덜 호들갑스러울지라도, 대체로 익숙한 상황들에 빠르게 대처해 아이도 나도 덜 힘든 순간들이 많았다.


오늘도 봄이는 태어날 때부터 엄마의 사랑을 나눠 가져야 했던 둘째로서의 숙명을 지고, 본능적으로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기 위해 예쁘고 사랑스러운 행동들을 한다. 그리고 그게 뜻대로 안 될 때에는 오빠와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인 듯 오빠보다 더 큰 소리로 울기도 한다. 그게 본능적인 행동으로 느껴지는 것이, 진짜든 내 느낌이든 간에 봄이의 사랑스러운 행동들이 대체로 감동적이지만 아주 가끔은 안쓰럽고 가끔은 눈물겹다.




봄아, 

태어나니 집에 보통내기가 아닌 오빠가 있어서 놀랐지? 엄마 생각엔 그래서 네가 더 빨리 자라는 것 같아. 조금 천천히 가도 되는데 말이야. 어찌 되었든, 엄마는 요즘 네가 보여주는 수만 가지 사랑스러운 행동들 덕분에 이 힘든 시기를 잘 버텨내고 있단다. 엄마는 네가 엄마의 딸이라서 정말로 매일, 매 순간이 감사하고 행복해. 엄마가 우리 봄이, 진심으로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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