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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Apr 06. 2020

빨래는 세탁기가, 밥은 밥솥이 한다고요?

끝도 없는 집안일에 지친 엄마, 혹은 아빠들에게 보내는 위로

27살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독립을 했다.  대학원을 마치고 큰 시험을 준비하면서 늦은 나이에 기숙사 생활을 일 년간 했었는데 그게 내 생애 첫 번째 독립이었다. 그래 봐야 기숙사 생활이니 내가 해야 하는 집안일은 별로 없었다. 2인 1실의 기숙사 방은 청소할 것도 없이 좁았기에 내 책상과 옷장 정리 정도가 다였고, 빨래를 가끔 하긴 했지만 그 양이 얼마 되지  않아 주말에 집에 싸들고 가서 해올 때가 많았으므로 내 일처럼 느끼지 않았다. 식사는 기숙사 식당에서 했고, 식단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교내 식당이나 근처 식당을 이용했으므로 그 역시 내가 해야 할 집안일의 목록에는 없었다.




다행히 그 해에 시험에 합격해서 이듬해에는 제대로 된 독립을 했다. 다른 도시로 취직을 하게 되어 원룸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룸 생활은 기숙사 생활과는 급이 달랐다. 혼자 사는 살림인데도 벗어놓은 옷가지에 개지 못한 빨래들로 금방 집이 어질러졌고, 음식을 해 먹어야 하니 설거지가 생기고 음식물 쓰레기가 쌓였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은 몇 개 안 되는 창문을 다 열고 구석구석 대청소를 해야 했고, 냉동실에 얼려둔 음식물쓰레기를 주기적으로 비워야 했다. 빨래는 제때 개서 제자리에 넣어야 했고, 설거지를 해둔 그릇은 물이 빠지면 수납장에 넣어야 했다. 그래야만 엄마 밑에 살 때랑 비슷한 모습의 집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점점 귀차니즘이 발동해 밥은 웬만하면 사 먹고 들어가고 빨래는 모을 때까지 모아서 하고 대청소도 한 주쯤은 건너뛰고 대충 미니 청소기로 머리카락이나 주우며 최소한의 집안일만 하며 살게 되었다. 그래도 혼자 살림이라 크게 표시가 안 났다.




신혼 때는 신랑과 당신은 이것 나는 저것, 집안일을 칼로 무 자르듯 딱딱 나눠서 최대한 공평하게 하려고 했다. 맞벌이를 하다 보니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식구가 둘 뿐인 데다 집안일에 동원될 수 있는 가용인력도 둘이니 집안일로 크게 스트레스받을 일이 없었다.


그런데 진짜 집안일의 시작은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였다.


일단 빨래가 미친 듯이 늘었다. 출산 전에 주변에서 아기를 낳고 나면 빨래가 많아진다는 말은 들었지만 상상초월이었다. 손수건과 수건, 아이가  수시로 벗어내는 옷만 해도 매일 아기 세탁기를 따로 돌려야 할 만큼 어마어마했다. 그런데 아이를 먹이고 씻기다 보니 어른 옷도 만만치 않게 버리게 되어 그것까지 더해졌다. 견디다 못해 건조기를 샀다. 빨래를 널고 걷는 수고로움은 덜어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빨래라는 집안일이 내게서 소거된 것은 아니었다.

4인 가족의 하루치 빨래라니, 믿을 수가 없다.


아이가 삼시 세 끼를 먹고 간식까지 먹기 시작하면서는 식사 준비부터 설거지까지 전보다 열 배 이상의 시간과 에너지가 들었다.  아이가 다 먹은 후 쪼그리고 앉아 음식물로 어질러진 바닥을 닦는 일도 추가되었다. 아이의 놀잇감은 또 왜 그리 많으며, 아이들은 왜 그걸 엎고, 쏟고, 붓는 놀이를 좋아하는지... 놀고 난 뒤 거실과 놀이방 정리만 해도 진이 빠지는 날들이 많았다.

왜 그러니 정말.. 보지도 않는 책을 왜 다 꺼내놓았니..
국수를 먹은 건지, 버린 건지..


둘째가 생긴 이후로 집안일이 몇 배로 더 많아진 것은 더 말할 것이 없었다. 그나마도 벗어났던 젖병 소독에 빨대컵까지 씻어야 하니 쉴 틈이 없었다. 그 와중에 코로나 사태까지 엎어져 아이들은 온종일 집에서 '먹고 놀고 어지르고 흘리고 쏟고 묻히고'의 반복이었다. 빨래는 전과 비교도 안될 만큼 늘었고, 심지어 종일 집에서 놀다 보니 이불에까지 뭘 잔뜩 묻혀놔서 전보다 이불 빨래도 자주 해야 했다. 온 창문에는 글라스펜으로 그린 그림들이고 바닥 곳곳에는  스티커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삼시 세 끼를 집에서 해결하니 하루에 밥을 기본 2번은 안쳐야 하고 반찬도 끼니마다 하나씩은 다른 것을 내어놓으려니 머리가 아팠다.


결국 스스로와 적당히 타협하지 않고는 집안일에 치여 내가 먼저 쓰러질 것 같았다. 빨래는 갤 수 있을 땐 개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필요할 때마다 건조기에서 꺼내 쓰기로 했다. 신랑이 사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지만 사지 않고 버텼던 식기세척기를 두말없이 설치했다. 기본 반찬은 사다 먹고 청소는 틈날 때마다 청소기를 돌리는 정도로 만족하기로 했다. 글라스펜으로 그려놓은 그림들은 작품처럼 감상하기로 했고 스티커도 계속 보니 귀엽다고 스스로를 세뇌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나는 쉴 틈이 없을까.


빨래가 건조기에서 나오기까지 모든 과정에 사람 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젖은 옷을 벗기고 세탁기에 넣고 세제를 넣고 돌린 후 건조기에 넣는 모든 과정에 내 손이 필요하다. 식기세척기도 밥솥도 청소기도 모든 가전제품이 돌아가기까지, 또 돌아가고 난 뒤에는 나의 손이 필요하다. 그래도 그런 거 없던 시절에 비하면 정말 편한 세상이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나는 그런 세상에는 안 살아봤으니 모르겠다.




지금 당신이 욕실 수납장을 열었는데 가지런히 개어진 수건이 있다면, 그 수건 한 장 한 장에 누군가의 수고가 녹아있음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싱크대 선반에 물기 빠진 그릇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다면 ,

식탁 위가 반질반질 닦여있다면,

창틀이 하얗고 깨끗하다면,

종 선반 위, 가전제품 위에 만져지는 먼지가 없다면,

때가 되면 칙칙칙 밥솥에서 밥이 되어가는 소리가 들려온다면,


그 또한 누군가의 시간과 에너지로 이루어진 일임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말하지 않고 내세우지 않는 그 수고로움들이 모여 당신들의 삶이 한결 윤택하게 유지되고 있음을 결코 잊지 않기를.



더불어 보이지 않는 수고로움을 모두 감수하는, 집안일의 최전선에 서있는 나를 비롯한 이 땅의 모든 엄마, 혹은 아빠들에게 진심을 가득 담아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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